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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Feb 13. 2018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ㅡ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문학동네


<결정적인 순간>

사월 어느 날, 누군가 내 뇌 속에 흐르는 전류를 차단했다.

고속전철을 타러 달려가던 길 갑자기 발작이 일어났다. 그 후 뭔가가 달라졌다. 나는 불안했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 날 발작이 아니라 죽었다면 내가 놓쳤던 것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발작은 이 대답을 찾기 위한 신호였다.

그리고 나는 프란츠를 만났다. 그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았지만, 거대한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뼈대 아래 서 있는 내 옆에 프란츠가 나타났다. 프란츠는 말했다.

“아름다운 동물이군요.”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나는 대답했다.

“그렇죠. 아름다운 동물이죠.”

그 순간,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천사들의 목소리가 노래 불렀다. 아름다운 동물이군요. 프란츠의 말은 신탁처럼 들렸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브라키오사우르스>

프란츠를 만나기 전, 나는 브라키오사우르스를 사랑했다.

나는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며 원시시대 동물뼈대를 연구했다. 박물관에는 높이 12미터에 길이가 23미터나 되는 브라키오사우르스 뼈대가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뼈 클립들로 만들어놓은 그의 아름다운 눈을 들여다보며 고요한 기도와 예배를 바쳤다. 나는 그를 받드는 여사제였다.  

매일 아침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발아래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프란츠를 만났으므로.        



<프란츠>

프란츠가 내 뺨을 쓸어내린 후로 나는 망각하기 시작했다.

프란츠를 만나기 전 알았던 남자들을 잊고, 내 몸에 그들이 닿았던 것을 잊고, 나 자신을 잊고, 프란츠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모두 잊었다. 내게 인생의 의미는 명료하다. 프란츠를 만나기 위한 것.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유도, 매일 아침 브라키오사우르스 앞에서 예배드린 이유도, 이전까지의 인생이 불행했던 이유도 프란츠가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프란츠는 떠났고, 프란츠가 떠난 뒤 나는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프란츠가 두고 간 안경을 써서 내 시력을 망가뜨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누웠던 침대 시트를 빨지 않고 가끔 펼쳐보면서.

프란츠가 떠난 지 삼십년이나 사십년이 지났고, 내 나이는 백 살이거나 아흔 살이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기이한 시대>

나는 기이한 시대를 살았다.

박물관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베를린 장벽이 있었다. 3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 그 장벽이 내가 일생을 바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내게서 빼앗아갔다. 나는 공룡의 흔적을 찾아 몬테나나 뉴저지, 코네티컷 밸리에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매사츠세츠 주 사우스해들리에 있는, 기이한 종류의 새 발자국이 있는 플리니 무디의 정원에 가보고 싶었다. 프란츠를 만나기 전까지 내 가장 큰 열망은 그곳이었다. 하지만 장벽이 내 모든 열망을 가로막았다.

기이한 시대가 끝났을 때, 나는 프란츠를 만났다. 베를린 장벽이 없었다면 프란츠는 이십년이나 이십오 년 더 일찍 나를 만났을 것이다. 그의 아내가 프란츠를 차지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프란츠가 나를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내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이 뒤틀렸다. 나는 프란츠 외에 모든 것을 놓았다. 남편과 딸, 사랑하는 브라키오사우르스와 플리니 무디의 정원에 대한 열망까지. 내 친구 에밀레는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묘지에 묻히기 위해 사랑을 배신하고 남은 삶을 바쳤다. 청춘의 사랑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가던 행복한 여자 카린은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고통에 빠졌다. 세월이 흘러 남편이 돌아오자 카린은 그를 받아들였다.

무너진 장벽이 우리 삶을 바꿔놓았다. 장벽이 무너진 건 신호였다. 체념하며 살아갈 것인가, 좌절을 대가로 치르고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선택은 이전 삶의 방식에 달려있었다. 되는대로 세월을 보냈는가, 강렬하게 자유를 기다리고 있었는가. 나는 프란츠를 만났고, 내 의도대로 살아가는 두 번째 인생을 선택했다. 재앙 같은 좌절을 대가로 치르고.      


    

<의도대로 사는 삶>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던 몇십 년 동안 나는 생활원칙을 세우고 질서를 구축하고 살았다. 부조리한 시대에 대한 반사작용으로서의 원칙과 질서였다.

나와 남편과 딸은 한 집에 살았다. 우리는 거북 여덟 마리를 키웠다. 딸에게 동생을 낳아주지 않은 대가로 키우게 된 거북이었다. 나는 나를 번식시키는 일에 혐오감을 느꼈다. 딸은 내게 화를 내며 두 번째 임신을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딸은 일고여덟 마리의 고양이를 데려왔다. 남편이 동물 털 알레르기로 다른 집을 구해 혼자 살겠다고 하자 딸애는 고양이를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거북들을 데려왔다. 우리는 거북을 혐오했다. 딸이 다른 나라로 떠난 뒤에도 거북은 남았다.

프란츠를 만난 직후, 거북들이 사라졌다. 남편도 내 인생 밖으로 물러났다. 남편은 그가 가고 싶어 했던 폼페이로 갔을 것이다. 남편 역시 이전의 삶을 버리고 의도대로 사는 두 번째 인생을 택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은밀한 동경의 상태를 품고 있었고, 장벽이 무너진 시대변화를 기점으로 동경을 현실로 바꿨다. 장벽이 서 있던 몇십 년,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을 때, 나는 삶을 의도대로 살지 못했다. 혐오를 견디면서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살았다. 장벽이 무너지고, 급작스런 시대변화가 우리를 휩쓸고, 프란츠를 만나면서 내 삶은 달라졌다. 프란츠가 아니었다 해도 거의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사는 삶으로. 프란츠와의 사랑을 반추하며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 나는 내 의도로 이 삶을 선택했다.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

나는 멸종한 독거성 동물 브라키오사우르스를 사랑했다. 브라키오사우르스는 부조리하고 잔혹하고 기이한 시대에 내가 높은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상징이었다. 프란츠는 개미를 연구했다. 나는 독거성 동물인 브라키오사우르스, 프란츠는 무리를 지어야 살아갈 수 있는 개미였다. 나는 혼자 살다 사멸하는 삶을 선택했고, 프란츠는 가족에게로 돌아가 법칙의 힘을 따르는 삶을 선택했다.

사랑은 ‘우리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자연’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는 이것을 길들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또한 사랑은 ‘감옥을 부수고 나온 종신형 죄수’이다. 감옥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를 부수고 나온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신형 죄수는 짧은 자유의 시간 동안 미쳐 날뛰며 약속과 불행으로 우리를 밀어 넣으며 괴롭힌다.

사람이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뿐이다. 그리고 사랑은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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