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일기를 쓰는 아들.
원격으로 조종해 본다.
“ㄷ, ㄱ 이런 거 거꾸로 쓰지 말고 제대로 써. 잘 모르겠으면 앞에 있는 책 참고하고.”
언제쯤, ”네, 엄마. “ 소리를 한 번에 들을 수 있을까?
“저기요, 아직 그림도 다 안 그렀거든요. 쓸려면 아직 멀었거든요.”
깐족거리는 저 말투가 거슬렸지만,
지금 잡도리를 해봤자 파국이다.
일단 일기를 끝내는 게 먼저다.
일기장을 던져놓고 또 커튼뒤로 숨었다.
엄마 말을 기억한 건지, 오늘 그냥 컨디션이 좋은 건지
ㄷ과 ㄲ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서있었다.
원래는 마지막 문장에 ‘너워서했다’라고 쓰여있었는데
아들에게 이건 고치라고 했다.
누워서 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골을 넣어서 기분이 어땠다는 건지,
고쳐 쓰라고 했다.
자기가 혼자 엄~~ 청 힘들게 썼는데 고쳐야 한다며
툴툴대면서도 금방 수정해 왔다.
전혀 존재하지 않는 띄어쓰기와 심지어 소리와도 일치하지 않는 요상한 단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인을 새긴다.
일단 자유롭게 쓰도록 내버려 두자.
정확하게 쓰는 건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 시작하자고
애써 흐린 눈으로 글자를 쳐다본다.
목요일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요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과 스포츠클럽에서 축구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집에 온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는 아직도 흥분과 열기가 남아있다.
어제는 코치님이 그러셨다.
“OO가 축구를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해요.”
아이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매일 축구하러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축구하고 온 날은 신나게 누가 골을 넣었는지,
자기가 몇 골을 넣었는지 한참을 들떠서 떠들어댔다. 그리고 열정에 비해 그리 잘하지는 못할 거란 것도.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라 그네 타는 것도 엄마의 특훈을 받아 겨우 익혔다.
멀리서 보던 남편이
누가 보면 콩쥐 계모인 줄 알겠다고 놀려댔다.
그럴 땐 정말 내편인지 남의 편인지 분간이 안된다.
아이가 유독 자주 이야기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S는 체격도 호리호리하고 재빠르게 생겼는데
역시나 축구도 아주 잘하는 듯했다.
“엄마, 오늘도 S가 있는 팀이 이겼어요. S가 있는 팀이 거의 맨날 이길걸요?! S가 축구를 제일 잘해요.”
아이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있고
해맑고 무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친구의 재능을 저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니.
친구에 대한 질투도, 자신에 대한 수치심도 없다.
순백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유리병에 담아두고 싶었다. 언젠가는 아이에게도 분명 타인에 대한 질투와
자괴감으로 몸서리를 치게 될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
조금 있다가 아이가 또 말을 꺼냈다.
“엄마는 옐로 카드야.”
“엄마가 왜?”
“응 그건 엄마가 종이접기 안 해주니까. “
“종이 접기는 네가 직접 해야지. 근데 너도 축구할 때 옐로 카드 받은 적 있어?”
“나? 없지.”
“너 코치님 말씀은 엄청 잘 듣는구나?”
“응. 근데 K는 옐로 카드를 몇 개씩 받아.”
“왜? 규칙을 안 지켜서?”
“응. 그리고 친구들을 자꾸 때리거든. 그래서 아무도 같은 팀 안 한다고 해서 혼자 한 적도 있어. 때려서 친구들이 싫어해. 누가 같은 팀을 하고 싶겠어. “
“너도 K 싫어해?”
아이는 잠시 침묵했다.
“K가 너도 때렸어?”
“나도 때리고 다 때리지. 나도 K가 싫어. 그래서 나도 사실 같은 팀 안하려고 했어.”
아이가 K를 싫어하냐는 물음에 침묵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유치원 친구 중에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으면
양보하라고 막무가내로 그네를 잡고 흔드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과격하게 행동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아이는 다른 친구한테는 양보해도
그 친구한테는 양보하기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이 놀고 싶은데
표현하는 법이 서툴러서 그런 거라고
싫어할 것까진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친구를 싫어한다고 하면,
엄마가 실망할까 봐 걱정했을 수도 있고
적어도 잔소리 폭격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말을 아낀 것 같았다.
그래서 더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그냥 잘 맞지 않는 사람을 차고 넘치게 만난다.
그럴 땐 거리를 유지하고 안 부딪치는 게 상책이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이상,
일대일의 관계에선 선을 긋는다고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그게 한 명 대 다수의 관계가 되면
양상이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따돌림’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냥 그 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거리를 두는 것뿐인데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졸지에
그 한 명은 고립된다.
모두가 편을 먹고 일부러 따돌린 게 아닌데도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수 있다.
학급 담임을 하며 마주하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한 명을 따돌릴 의도가 없다.
그저 그 아이와 거리를 두고 싶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말을 기분 나쁘게 톡톡 쏘아붙이는
아이들이 있다.
어쩔 땐 잘 씻지 않아
옆에만 가도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아이에게 살갑게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건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로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도 역시
아이의 인간관계이다.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달려져야 하는
고도의 기술을
상처주기도 하고 , 때론 필연적으로 상처받기도 하며
아이 스스로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워야만 한다.
엄마로서 나는 단 하나의 원칙만을 가르쳐 주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밖에.
“네가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도 소중한 존재야. 너를 존중해 주는 사람을 만나. 물론 너도 상대방을 존중해줘야 해. 그 누구도 너를 함부로 대하게 두지 마. 그리고 너 역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