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줄넘기 연습을 시키고 있는데
처음 이틀은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 포기하고 싶었다. 어쩜 그렇게 줄과 몸이
사사건건 엇박자가 날 수 있는지.
내일 당장 음악줄넘기 학원에 등록하러
달려가고 싶었다.
그래도 아이는 포기할 줄을 모른다.
자꾸 걸려 넘어지면서도 먼저 그만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안되니까
울음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게 보이는데도
끝까지 정해진 양을 해냈다.
그리고 3일째 저녁,
단 몇 번 만에 두 발 모두 넘기는 데 성공했다.
이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어제는 한 발만 넘기는 것까지 포함해서
겨우 다섯 개를 성공했기에
오늘은 출발도 좋고 해서 목표를 스무 개로 잡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금방 목표를 달성했다.
자신감이 붙은 아이는 더 하고 싶다고 졸랐다.
조건을 하나 더 붙였다.
10, 20, 30, 40, 이런 숫자는
무조건 두 발 모두 넘겨야 인정하는 걸로.
그렇게 계속 30개, 50개 목표를 높여가다가
결국 100개를 성공했다.
짜릿한 성취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더하겠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 데리고 올라왔다.
이틀 뒤 다시 줄넘기를 했다.
지난번 보다 두 발 다 넘는 횟수가 확연히 늘었다.
그 다음날 또 줄넘기를 하러 나왔다.
이젠 한 발만 넘는 것보다 두 발 모두 넘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엇보다 100개가 너무 금방 끝나버렸다.
아이는 아쉬운지 200개까지 하겠다고 했다.
쉬었다가 하라는 대도
바로 하고 싶다고 우겨서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이는데도
기어코 200개를 하고야 말았다.
성취감이라는 게 이렇게 강력할 줄이야!
힘들어도 자꾸 하고 싶고 재밌어서 죽겠는,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가 요즘 종이접기 할 때도
그런 모습이 자주 엿보인다.
하원하고 오면
가방 정리하고 TV 앞으로 달려가던 녀석이
이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종이접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줄넘기하자고 불러내지 않으면
자기 전까지 묵묵히 앉아 종이를 접고 오리고 붙이고
장인이 따로 없다.
어제 며칠 동안 공들이던 작품을 완성하고는
기쁨에 겨워 안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과
그 노력 끝에, 자기가 봐도 이렇게 멋진 로봇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아이는 이해력이나 암기력이 특출 나지는 않다.
오히려 조금 느린 편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한글을 가르칠 때는
우리 아이도 제법 똑똑하지 않을까라는
엄마들이 한 번쯤은 마음속에 품는 기대 때문에
내 눈이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특성을 제대로 바라보기보다는
불안한 마음에 휩싸여 ‘난독증’을 수시로 검색했다.
‘방금 알려준 글자인데 이걸 왜 인식을 못하지?‘
‘인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가?’
‘OO는 친구들 이름만 보고 한글을 떼었다는데 얘는 한글 수업도 받으면서 왜 이렇게 글자 인식을 못하지?’
친구 딸들과 비교가 되면서
아이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가르치면서 자꾸 화가 났다.
‘대체 몇 번을 알려 주는건데 왜 모르는 거야.’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싸늘해진 공기와 엄마의 험악한 표정,
날카로운 목소리가 무얼 말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자기도 모르니까 답답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래도 아이는 그만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언제나 묵묵하게 정해진 양을 해냈다.
처음 종이접기를 가르칠 때도 그랬다.
꾸깃꾸깃 접으면 멋지게 만들 수가 없다고
선을 반듯하게 내도록 연습시켰다.
마음대로 안되니까 짜증이 나는데도
아이는 작은 손으로 힘겹게 색종이의 끝을 맞춰가며 꾹꾹 눌러 선을 냈다.
제대로 선이 날 때까지 다시 하고 또다시 했다.
최근에서야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도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남들보다 이해를 빨리 하거나 잘 외우지는
못한다는 걸.
그래도 이젠 우리 둘 다 믿고 있다.
아이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원하는 건 뭐든 결국엔 배울 수 있다고.
한글을 배울 때도 그랬고,
종이접기를 배울 때도 그랬고,
이번에 줄넘기를 배울 때도 그랬다.
오늘도 아이가 줄넘기 200개를 성공했다.
그것도 두 발로 온전히 넘은 걸로만.
아이에게 말했다.
“너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알아? 그건 바로 끈기야.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근성. 뭔가를
배울 때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능력이야. 넌 그걸 가지고 있어. 그래서 뭐든 결국에는 해낼 수 있어. “
“아… 맞아. 종이접이 처음에 진짜 못했는데. 엄청 우스꽝스러워. “
“처음엔 원래 다 그런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잖아. 그럼 좋은 거 아냐?”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 유리한 것도 맞고. 근데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아? “
“끝까지 해내는 거? “
“맞아. 처음에는 엄마랑 너 중에 누가 더 종이접기
잘했어? “
“엄마. 근데 지금은 내가 더 잘하잖아. “
“왜 그런 거 같아?”
“그거야 당연히 엄마는 종이접기 열심히 안 하잖아.”
“맞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꾸준히,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소용없어. 처음엔 느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엔 해내는 거야.
[발명가의 비밀]에서 에디슨이 포드한테 알려준 비법이 뭐였지? “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라.”
“맞아. 그래서 맨날 사고만 치고 실패만 하던 에디슨과 포드가 결국엔 멋진 걸 해냈잖아.”
“난 실패 안 하고 싶어. 한 번에 하면 좋잖아. “
“뭐든 처음 배울 땐 실패를 안 할 수가 없어. 오히려 실패를 많이 할수록 좋아.”
“왜, 난 한 번에 성공하고 싶어. 실패따윈 필요 없어. “
“에디슨은 실패가 엄청 중요하다고 했어. 실패가 쓸모없는 게 아니라, 실패하면서 안 되는 방법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거라고. 그렇게 지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되는 방법이 뭔지 찾을 수 있겠지? “
엄마가 아무리 말해도, 아이는 여전히 실패가 싫다.
사실 나도 싫은 건 마찬가지다.
그러함에도 아이에게 실패를 부추기는 건,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실패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 영혼을 갉아먹는 기생충이 될 수도 있고
나를 더 현명하고 단단하게 해주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빠른 이해력과 특출 난 암기력을 타고나지 못했지만
다행히 우리 아이에게는
자꾸 실패해서 속상하고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근성이 있다.
요즘 아이를 보고 있으면
다시 [Grit]이라는 책이 떠오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