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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Nov 26. 2024

사누르에서 보낸 두 달, 숙소 편(1)

Pondok Ayu(폰독 아유)


https://maps.app.goo.gl/v7ijwvnH3W3ZNSxs8?g_st=com.google.maps.preview.copy

무턱대고 28박을 예약한 첫 번째 숙소. 내가 이곳에 와 본 적도 없이 28박을 예약했다는 말을 듣고 호주 아주머니가  “So brave!”라고 엄지 척을 할 만큼 무모한 결단이긴 했다. 이토록 충동적이지만, 모든 숙소를 거의 10개월 전에 예약할 정도로 계획적인 사람이 바로 나다. 나름 가성비 숙소로 인기가 있어서, 꼭 이 숙소에 묵고 싶다면 몇 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 둘 필요가 있다. 내가 묵는 동안 만났던 투숙객들은 대부분 유럽인들이었다. 젊은 커플들도 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 커플도 있었다. 사람들이 이 숙소를 즐기는 방식은 두 가지다.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인근의 꾸따, 우붓, 누사두아, 누사페니다 등으로 일일투어를 다니거나 한적한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한 달 정도 지켜본 결과 일주일 넘게 투숙하는 사람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숙소 주인장도 예약받아놓고 좀 신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숙소 컨디션은 가격대비 괜찮은 편이다. 침실, 부엌, 욕실 모두 넓은 편이고 오래되긴 했지만 곰팡이 같은 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작기는 하지만 수영장이 하나 있고, 오후 세시쯤 되면 수영장을 둘러싼 나무 사이로 은은한 햇살이 들어오는데, 요정의 정원처럼 신비로운 느낌이다. 가운데 건물에 있는 둥근 테이블에 모여 조식을 먹는데, 가볍게 아침을 때우기에 괜찮았다. 다만 한 달 동안 몇 개 안 되는 메뉴를 돌려 먹으려니 좀 물렸다. 그래도 아이 등교할 때 굶겨서 안 보내는 게 어디야! 조식 먹을 때 다른 투숙객들을 만나 정보 교환도 하고 스몰토크도 할 수 있어서 단조로운 생활에 종종 활력소가 되었다.

물론 단점도 있는데, 제일 치명적인 건 아무래도 위치일 듯하다. 내 경우에는 아이 학교와 그리 멀지 않아서 그랩으로 등하교시킬 때 중심가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장점이 있었으나 주변에 진짜 아무것도 없어서 밥 먹기가 좀 애매했다. 점심은 주로 그랩 타고 아이콘몰에 가서 그 앞 해변을 산책하다 마음에 드는 카페 가서 먹고 들어왔다. 아이는 천만다행으로 학교에서 도시락을 주문해 먹을 수 있었는데 아이가 무척 좋아해서 따로 준비해 줄 필요가 없었다. 저녁 때는 라면도 끓여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 대부분은 고젝이나 그랩으로 배달을 시켰다. 문제는 배달 음식들이 내 입맛에 너무 안 맞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곳에 있는 동안 나의 발리 밸리와 아이 열감기에 지쳐 가장 입맛이 없을 때라 그랬을 수도 있다. 실제 그 당시 배달 음식은 물론 중심가 식당에 가서 먹은 음식도 하나같이 너무 짜고 맛이 없었다.

위치 다음으로 큰 단점은 아무래도 벌레이슈이지 않을까? 발리의 특성상 작은 개미가 몇 마리씩 돌아다니는 건 늘 있는 일이라, 그 정도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발리는 당신에게 맞지 않는 여행지일 것이다. 그래도 어떤 숙소 후기처럼 개미나 정체불명의 벌레가 바글바글 한 적은 없었다. 중심가 쪽 호텔에서 종종 보인다는 쥐도, 이곳은 외져서 잘 오지 않는 모양인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어쩌면 민박집 고양이 벨라와 아주 가끔 눈에 띄는 길고양이 친구들 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밖에서 기어들어왔는지 아침에 바퀴벌레가 죽은 채로 벌러덩 누워있는 걸 두 번 정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밤에 휴지통 비닐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불을 켜고 살충제를 미친 듯이 분사했는데 뭔가가 다다다닥 욕실로 도망갔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욕실 불을 켠 순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바퀴벌레가 아니라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벽에 찰싹 붙어있었다. 아들이 파충류에 푹 빠진 이후로 자주 봐서 그런지 도마뱀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서  조용히 욕실 문을 닫아주었다. 살충제를 너무 많이 뿌려서 혹시 아침에 사체로 발견될까 걱정이 되긴 했는데 다음 날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들과 두 차례 정도 더 방에서 도마뱀을 목격하기는 했으나,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 그냥 방을 함께 공유하기로 했다. 이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엄마가 중심가 숙소로 옮겼는데 풀액세스룸이라 베란다 문이 수영장과 연결되어 있었단다. 발리의 많은 숙소들은 문이 나무로 되어 있는데 한 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불을 켰더니 생쥐 한 마리가 문틈을 비집고 방 안으로 들어오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국 그 쥐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고 그 엄마는 잠든 아이들을 깨워 허겁지겁 방 밖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그래, 쥐의 습격에 비하면 죽어있는 바선생과 도마뱀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가끔 모기가 들어와 몇 번 잡은 적도 있고 아침에 여기저기 물린 채로 깬 적도 있다. 이상하게 발리 모기는 “엥~”소리를 내지 않아서 잡기가 어려운 반면, 보통 그 소리 때문에 모기가 들어오면 신경 쓰여서 잠을 못 자는데 여기서는 모기에게 물어 뜯기면서도 꿀잠을 잘 수 있다. 다행히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숙소 정원에 모기약을 치는 것 같았다. 그러면 한동안 모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4만 원대의 숙소에서 5성급 호텔 수준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딱 4만 원대 수준의 숙소이긴 했으나 오래 지내서 그런 건지, 사람들이 친절해서 그런 건지, 숙소가 편안해서 그런 건지 ‘집’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이 숙소에 더 애정을 갖게 된 데는 무엇보다 고양이 벨라의 존재가 컸다. 낯선 곳에서 만난 가족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가 한 번은 엉뚱한 말을 했다. 벨라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있는 우리 집을 찾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귀엽고 친절한 고양이 벨라가 첫 번째 숙소에서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Pondok Ayu를 떠난 뒤 여러 숙소에서 지내보았지만, 그곳 사람들의 친절은 쉽게 만나지 못했다. 4성급 이상의 호텔에서 마주한 친절은 따뜻했지만 좀 더 서비스화된 친절이었다면, Pondok Ayu 직원들의 친절은 좀 더 사람냄새나는 그런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외진 곳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곳에 있을 때 아팠던 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만큼 직원들은 물론 다른 투숙객들도 우리의 건강을 걱정해 주고 신경 써 주었다. 지금도 아이는 뜬금없이 말한다.

“엄마, 벨라 보고 싶어요.”

어쩌면 이 모든 여행이 끝난 후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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