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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Nov 15. 2024

발리의 꼬마 철학자

아이들은 꼭 자기 전에 봇물처럼 말을 쏟아낸다.

낮에 오늘 학교에서 뭐 했냐고 물으면

아이의 대답은 셋 중 하나다.

“몰라.”

“기억 안 나.”

“이거 저거 했어.”

그러다가 꼭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봤다가, 이제 제발 입 다물고 자라고 핀잔을 들은 아이는 잠깐의 침묵으로 인해 엄마가 방심한 틈을 타 어느새 미국의 사회문제까지 생각의 나래를 펼쳤다.

“엄마, 내가 미국에 대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도대체 왜 잡히면 자기도 죽을 텐데 왜 총으로 다른 사람들을 쏘는 거야?”

뜬금없어 보이지만 아이는 세계에서 제일 힘센 나라인 미국 예찬론자다.

“어차피 미국이 제일 힘세니까 다른 나라는 미국한테 덤벼도 다 지게 되었어.“라던지,

“중국도 AI가 있지만 어차피 미국한테는 져. 미국이 제일 좋은, 그거 뭐지? AI 만드는 데 들어가는 거?(반도체) 미국이 제일 좋은 걸 가져가고 중국한테는 안 좋은 것 만 주잖아.“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 아빠한테 질문해서 얻어낸 정보 조각들을 자기 나름대로 하나하나 끼워 맞추어 이같은 주장을 펼친다.

때론 제법 그럴듯할 때도 있고,

허무맹랑한 경우도 많다.

어느 사회나 명암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언젠가 한 번은 제일 부유하고 힘센 나라 미국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총기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쏘면 분명 자기도 붙잡혀 죽을 텐데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천년만년 사는 게 꿈인 아이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결국 모질게 못들은 척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입을 열고야 말았다.

“사는 게 불행한 사람들이라 그래. 너무 힘들고 불행해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마음속에 분노와 화가 너무 많아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분노를 표출하는 거야. 자기는 이렇게 죽을 만큼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게 너무 싫은가 봐. “

묻지 마 살인, 무차별적인 총기 난사를 하는 범죄자들의 심리를 내가 알 턱이 없지만,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이유를 생각해 내서 말했다.

그 다음 아이의 입에서 다소 믿기지 않는 말이 흘러나왔다.


“에이그, 불행은 행복의 역사라는 걸 모르나?”


불행이 행복의 뭐라고? 또 황당한 소리를 하나 싶어

“대체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야?”라고 물었다.


“불행 다음이 행복이잖아. 어떻게 항상 행복하겠어, 불행할 때도 있지.“

“그러네, 불행하다가도 행복한 순간이 오기도 하고.“


아이의 설명을 듣다 보니, 아이가 처음에 한 말이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직관적으로 맞는 말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 말이 계속 뇌리에 박혀 곱씹고 있는데 또 몇 분만에 아이가 말했다.


“헤헤헤헤, 난 개얌. 배 문질러주세용.“


그렇게 심오한 말을 던져놓고 갑자기 개로 빙의한 아이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났다. 한참 배를 문질러주니 스스륵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든 후에도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행은 행복의 역사다.”


이 말에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마치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를 밝혀주는

불교 경전의 어느 한 구절 같았다.

불행과 행복은 동전 뒤집기 같은 걸까?

아니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서로 연결되어

영원히 맞물리는 뫼비우스의 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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