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Mini Zoo Bali
메종아우렐리아에서 10시 반쯤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겼다. 호텔 식당인 CORK에서 브런치를 먹고 블루버드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다음 숙소로 이동해서 체크인하기 전까지, 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동물원을 갈 계획이었다. 크고 유명한 동물원도 몇 개 있었지만, 타란튤라나 전갈 등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이곳이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두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규모라 잠깐 다니오기에도 좋아 보였다. 책으로 보거나 과천 과학관의 곤충관 유리 상자에서 전갈과 타란튤라를 본 게 전부인 아이는 출발하기도 전부터 신나 있었다. 30분 정도 걸려서 이 작은 동물원에 도착했다. 실제 가보니, 이름을 정말 찰떡같이 잘 지었다. 통행이 적은 한적한 도로에서 내려, 다시 안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서야 이 작은 동물원을 만날 수 있었다. 티켓을 결제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다. 좁은 공간에 각종 조류와 작은 동물을 압축적으로 모아놓다 보니 동물 우리 또한 협소할 수밖에. 이곳의 하이라이트가 동물 체험이라 우리 속 동물들은 다소 방치되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동물원을 나오며 든 생각은, 좁아터진 우리지만 아무 관심도 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그 동물들이 그곳에선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좁은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이 서너 채가 나오고 거기서 동물 체험이 이루어졌다. 세네 명의 직원들이 그곳을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 분주하게 동물을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아이에게 다가온 직원은 다짜고짜 커다란 뱀을 한 마리 들고 왔다. 아이가 피하는 기색이 없자 냅다 목에 걸어주었다. 찰칵찰칵!
내가 사진을 다 찍자 재빠르게 다른 뱀을 한 마리 더 들고 왔다. 그다음엔 타란튤라, 전갈, 도마뱀, 그리고 사향고양이… 동물들은 이 사람의 손에서 저 사람의 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옮겨졌다.
고된 노동 끝에 드디어 쉬는 시간을 얻은 동물들은 작은 바구니나 통 속에 넣어졌다. 그나마 등치가 큰 뱀과 이구아나, 박쥐만 나뭇바닥,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직원이 아이에게 도마뱀인지 이구아나인지 한 마리를 들어서 보여줬는데 날카로운 발톱을 보고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바로 통 속에 집어넣었다. 그 작은 통에는 못해도 5마리 이상의 도마뱀 혹은 이구아나가 뒤엉켜 있었다.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옆 건물 테이블 위에 모든 걸 포기한 듯 눈을 감은 채 몸을 축 늘어뜨리고 누워있는 스컹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표정도, 움직임도 없이 눈만 꿈뻑이며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부엉이도, 올빼미도,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나가는 길목에 있는 우리에는 원숭이 가족이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는 계속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스트레스 때문일까?
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아이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 방문한 곳인데
과연 이곳이 교육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을까?
그날 밤, 아이와 여느 날처럼 오디오북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했다. 숙소를 옮기고 수영을 하고 씻기고 빨래를 하다 보니 동물원을 다녀오고 마음속에 생겨난 죄책감도 어느새 잊힌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요즘 아이와 읽고 있는 책이 ‘감염동물’이었다.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오디오 북에서는 인간에게 착취당한 동물들이 분노를 표현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미스터리 토킹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능 또한 인간만큼 높아졌다.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들을 살처분하려 하지만 주인공 초록이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동물 연합을 만들어 인간에 대항하려 하는데, 당연하게도 인간에게 착취당한 동물들이 가장 분개하며 앞장선다. 닭가슴살이 많이 필요해지자 유전자 변형으로 가슴만 크게 키워 제대로 서있을 수 조차 없는 닭,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일 년 내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젖소, 그리고 동물원 우리에 갇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채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동물원의 동물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착취당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와 잠시 오늘 방문했던 동물원 얘기를 했다. 아이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이와 생각보다 너무 열악한 환경에 놀랐다는 얘기, 동물들을 동물원에 가두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육식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야기에 다다랐고, 고기 소비를 줄여보자는 결론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동물원 이슈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아직 어떤 명확한 입장을 세우지 못했다. 동물을 생각하면 못할 짓 같으면서도 아이에게 분명 즐거움 경험이기에, 엄마로서의 이기심이 발동한다. 다만, 이왕이면 동물원의 동물들이 생활하는 환경만큼은, 살만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보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지고 죄책감을 느끼는 곳이 아니라, 그래도 저 정도면 살기에 나쁘지는 않겠구나 그런 곳. 이 또한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