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mpathizer Dec 17. 2019

이제는 정말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다.

2014년 교환학생으로 한학기 동안 머물렀던 오하이오주의 클리브랜드는 도시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는 지금까지 경험한 제일 삭막한 곳으로 남아있다. 길거리는 을씨년스러웠고 낮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터널 끝에 위치한 지하철역은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도 없었고 표 검사를 하는 곳도 없었다. 버스를 타면 온통 흑인뿐이었고 대부분은 한 눈에 봐도 저소득층이었다. 캠퍼스 주변에는 학생들이 농담삼아 'rape bridge (강간의 다리)'라고 부르던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다리가 있었고 총기사건도 빈번해서 학생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조심하라는 경고 이메일을 받았다. 지인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보이던 방치된 건물들과 버려진 집의 깨진 창문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때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지금은 쇠락한 산업도시라는 건 알았지만 오하이오주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완전히 조롱거리로 전락한 주였다. 다른 주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오하이오에서 교환학생을 했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도시 자체가 너무도 쓸쓸하고 우울했기에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은 더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곳에서 오랫동안 살기 어려울 것은 분명했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보스턴 같은 부유한 주에 갔다면 내가 상상했던 미국에 부합하는 경험을 하고 그만큼의 인식으로 미국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리브랜드라는 곳은 내게 미국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강렬한 경험 때문에 아직도 나는 미국하면 거칠고 황량한 야생의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는 클리브랜드, 디트로이트, 신시내티 같은 과거 제조업의 번영 시대를 구가했던 도시들의 몰락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이 도시들은 이제 과거의 영광은 뒤로한 채 흉물스러운 도시 외관에 더해 빠져나가는 인재들과 빈곤, 각종 범죄와 마약 중독자들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클리블랜드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내 주변 사람들과는 너무 다르지만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전문대를 나왔거나 대학교를 중퇴한 사람들,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시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가용을 사지 못해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들. 

이 책은 기술로 인해 초래될 일자리 전쟁, 그리고 더 크게는 이런 현상이 낳을 빈익빈 부익부를 논하고 있다. 자동화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는 전문 기술을 배운 사람들, 그리고 기계적이지 않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외의 대부분의 직업들이 대체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화이트 칼라도 자동화의 위험을 받고 있는 건 맞지만 이런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저소득층 등 취약 계층이다.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만큼 불균형은 더욱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좋은 어머니를 두고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는 경제적인 부분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요소들의 부익부 빈익빈을 몸소 체험했다. 클리블랜드는 가난한 도시였지만 그 안에서 내가 교환학생으로 다녔던 대학교는 1년에 학비가 약 $46,000인 부유한 사립학교였으며 자원이 넘쳐나서 매주 공짜 음식을 주는 것은 물론 밤에는 목적지까지 무료로 데려다주는 콜택시 같은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내가 20대 때 몸담았던 환경은 자기 효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대학교 때는 좋은 직업을 구하고 돈을 많이 벌 것이란 기대가 당연시 됐고, 대학교 친구들은 책을 내고 외부 행사MC를 하는 등 내가 상상도 못했던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도 그들까지는 아니지만 큰 도전을 할 수 있을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운이 좋아서 그런 환경에 몸담게 되었고 객관적인 능력에 상관없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세 번째 또는 네 번째의 거대한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불평등 문제가 찾아올 것이다. 중위권에 속한 사람들은 경제적 부분 뿐 아니라 가족관계, 건강 등 전반적인 삶의 질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저자는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방안으로 기본 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을 제시한다. 2016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투표가 실시될 때만 해도 우리나라와는 매우 먼 이야기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한국에는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은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 


솔직히 조금만 생각해보면 기본소득은 왜 아직도 도입이 되지 않았는지 그게 더 의문스럽다. 아무 노력없이 주어지는 공짜 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사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때까지 누리는 많은 것들은 노력해서 얻지 않은 것들, 혹은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가족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인프라, 각종 무료 공공 서비스까지. 하지만 이상한 이유로 유독 현금을 주는 것만은 꺼린다. 청년 수당이 해이함을 조장한다며 한창 논란이 많았던 시기, 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청년 취업 성공 패키지에 신청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서비스를 받으며 차라리 그 비용을 현금으로 주었으면 훨씬 더 효용성이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복지에도 유동성이 중요하다. 또 선별적 복지가 보편적 복지보다 훨씬 많은 행정적 비용이 드는 걸 감안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취약계층에 적은 돈을 지급하는 것과 총비용 면에선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낮은 수준의 기본 소득을 비디오 게임 등에서 기본적으로 지급하는 게임 머니 같은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템을 획득하거나 높은 레벨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기본소득이 그러한 인간 본연의 활동을 저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본소득만이 변화의 대안이 될 순 없겠지만 과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과감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이 마음에 들었고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작가의 이전글 2020년, 변화하고 싶다면 명심해야 할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