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라토너 Jul 19. 2019

에딩거 대신 아잉거

하자매 독일여행 넷째날 - 우리는 어쩌다 아잉거 브루어리로 갔는가

비행기와 호텔 예약을 마치고 가장 먼저 정한 일정은 바로 에딩거 브루어리 투어였다. 에딩거(Erdinger)는 에르딩(Erding)이라는 지역에서 만든 맥주다. 에르딩은 뮌헨 시내에서 4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대중교통으로 1시간 조금 더 걸려서 갈 수 있다고 했다. 에딩거라면 편의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맛있는 밀맥주가 아니던가. 인당 17유로라고 해서 비싼 게 아닌가 했지만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고 프레즐과 소시지까지 준다고 해서 여기에 갈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두명에 34유로. 4만5천원이 청구됐다.

아침 일찍 뮌헨 역으로 향했다. 뮌헨의 지하철은 승강장 하나에 여러 라인이 들어와서 전광판을 잘 보고 타야 한다. 승강장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안전요원으로 보이는 분이 다가와서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기에 에르딩으로 간다고 했더니 지금 들어오는 걸 타면 된다고 했다. 정말 독일 사람들은 친절하고 지하철도 너무 깨끗하다며 호들갑을 떨고는, 이대로 쭉 한 시간 정도 타면 되니 핸드폰에 코 박고 저녁에 뭘 먹을지를 열심히 찾았다.


뮌헨에서 40km 남짓 떨어진 에딩거 브루어리(좌)와 30km 남짓 떨어진 아잉거 브루어리(우).

탄지 40분 정도 지났는데 문득 쎄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니 다음 역이 아잉(Aying)이다. 아잉거 맥주 할 때 그 아잉? 동생과 나 둘 다 <독일에 맥주 마시러 가자> 책을 읽은 덕분에 뮌헨 근교에 바이엔슈테판, 에딩거, 아잉거 등의 맥주 브루어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가까이 있지 않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황급히 구글맵을 켰더니, 뮌헨을 기준으로 에르딩은 두시 방향으로, 아잉은 다섯시 방향으로 떨어져 있었다. 분명 열차에 에르딩이라고 써진 걸 봤고, 심지어 안내요원분이 타라고 한 걸 탄건데 이상했다. 어느 한 역에서 꽤 길게 정차를 한 뒤 갑자기 역방향으로 출발했는데 그 때 바뀐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위에 지도를 봤을 때도 뮌헨에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구간은 방향이 다. 하지만 이것은 추측일뿐, 우리가 에르딩이 아닌 아잉으로 가게 된 이유는 아직 미궁속에 빠져있다.


어쨌거나 10시까지 에르딩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돈은 날아갔고,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다시 뮌헨으로 가야 하나? 하다가, 예약도 안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잉거 브루어리에 대해서 찾아봤다. 화요일 11시, 목요일 18시, 토요일 10시에 브루어리 투어가 있었다. 예약도 필요 없었다. 마침 화요일이었고, 11시가 되기도 한참 전이었다. 브루어리로 갈 생각을 해 낸 우리에게 감탄했다. 집단 지성의 힘은 위대하다.


아이 씐나. 이때도 출구를 반대로 나와서 다시 역으로 되돌아갔다. 정신 차리자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정신줄을 놓은 듯 하하호호 웃으며 사진을 찍고 시골길을 마음껏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가는 내내 한적한 시골길의 모습이라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다. 집이 신기하게 생겼네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노인 시설인 곳들도 많았다. 나뭇가지를 쳐내거나 잡초 정리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에딩거에 못 가게 됐다는 걸 알고 처음에는 상실감이 컸지만,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보자니 그래도 아잉거라도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잉거 브루어리의 전경. 브루어리에 가까워지니 보리의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견고한 외관의 양조장

아잉거 브루어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다행히 인당 9유로를 지불하면 현장에서 브루어리 투어 접수가 가능했다. 접수하시는 분이 투어는 11시에 시작하니 호텔 카페라도 가서 있다가 오라고 했다. 근처에 아잉거 브루어리에서 운영하는 호텔이 있어서 그곳에서 팔자에도 없는 호텔 커피를 마시며 우리의 멍청함과 안이함을 안주 삼았다. 그래도 호텔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이런 곳에서 숙박해도 참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서울에 돌아와서 보니 '뮌헨 홀리데이' 책에도 이 브루어리와 호텔이 소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행 가기 전에 읽었으면 분명히 그냥 넘겼을 것이다. 주변에 특별한 관광스팟도 없고, 있는 건 오로지 브루어리뿐이니 말이다. 직접 가보고 나서야 '미리 알았으면 여기서도 1박을 할 것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호텔로 향하는 길에 발견한 연식 있어보이는 목조 건물. 가운데에 Erbaut 1583 이라고 쓰여있었다. 긴세월 버텨내기 위해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소박하고 멋진 호텔에서의 커피 한잔

아잉거 브루어리 투어를 마치고 나서는 에딩거에 낸 돈은 아깝지만 에딩거 말고 아잉거로 와서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동생과 나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낯선 곳에서 잠시 안정감이 든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 것. 핸드폰에 코 박고 있지 말 것.

작가의 이전글 인스부르크에서의 여섯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