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요일 저녁마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의 전반부는 작가님이 수강생들이 쓴 작품을 네 개 정도 골라와 함께 읽고 잘 쓴 부분과 개선할 점을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오늘 세 번째 만에 드디어 내 글도 뽑혀서 소개되었다. 쓴 사람을 익명 처리하는 시스템이라 읽는 것도 쓴 사람 본인이 아닌 다른 수강생이 읽는다. 내 글을 다른 사람이 읽기 시작하자 절로 긴장되었다.
이번에 제출한 글은 두 달 전에 블로그에 올려둔 글이다. 알고 지낸 지 2년이 넘었지만 차 한잔 해보지 않았던 분과 그날 점심을 먹고는 '아 이건 써야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일필휘지로 쓰듯 한방에 타이핑해서 올려놓고 잠들었었다.
작가님이 첫 문단은 마치 맛집 블로거의 음식 평을 읽는 줄 알았다고 했다. 도입부에 캐릭터가 나와줘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오히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첫 문단부터 나를 간파했다. 회사생활에서 점심 뭐 먹을래?라는 물음을 들으면 나는 항상 뭔가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점심에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음식이 어쩌니 저쩌니 구구절절 떠드는 건 당연지사다. 캐릭터 묘사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어차피 내 블로그에 올린 글이어서 나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렇게 독립된 에세이로 제출할 때는 그런 부분도 고려해야겠구나 싶었다.
함께 점심을 먹는 상대가 사적으로 잘 되어가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두 번째 문단이 되어서야 글쓴이가 함께 같이 밥 먹은 사람이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몇 문장을 더 읽고 나서야 글쓴이 역시 여자라는 것이 짐작되는 부분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자가 처음부터 얘기를 잘 안 한다고 해서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피로감이 쌓였다 - 피로감이 약간 녹았다 - 피곤해졌다 3단 콤보로 미묘하게 감정이 왔다 갔다 한다고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예민하다'는 말을 상대에게 하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싶다.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콕콕 집어주시니 나의 예민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짧은 글 하나로도 글쓴이는 처음부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쉽게 외부의 자극에 의해 감정 변화가 있는 사람이라는 게 나타났다.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쓴 글을 읽었을 때 계속 그 사람의 글을 읽고 싶다는 생이 드는데,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생각해보니 이 글 역시 나를 처음부터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나타나 있으니 이것도 솔직하게 쓴 건가 싶기도 하다.
블로그에 올리고도 크게 피드백이 없는 상황에서, 정말 나를 모르는 제삼자가 내 글을 읽은 소감을 말해주니 글쓰기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브런치에 내가 올리고 있는 글들은 나를 잘 드러내고 있는 걸까. 달리기 글과 여행 글을 위주로 올려두긴 했지만 거기에 나와 인물들이 얼마나 나타나 있을까. 내 생각이 얼마나 읽는 사람들에게 전해졌을까. 요즘 무얼 해도 재미없는 시기가 찾아와서 글쓰기도 예전만 못하고 있었는데 글쓰기와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극을 받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