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년 전에 처음으로 혼자 유럽여행을 갔다. 8박 10일의 스페인 여행이었다. 강제로 사진 찍고 돈을 빼앗기는 호구 같은 짓을 당하기도 했지만 혼자의 여행은 매우 자유로웠다. 혼자 여행하는 맛을 알아버렸던 것일까, 이게 그대로 내 장거리 여행 습관으로 굳어져 이태리, 뉴욕도 그렇게 혼자의 시간을 보냈고, 가까운 교토도 6박 7일을 혼자 가서 그런 식으로 여행했다.
동생과는 가까운 일본, 중국은 최대 5일까지 같이 여행을 4번 정도 했었다. 나는 일본에서, 동생은 중국에서 1년 동안 체류한 경험이 있으니 그렇게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7박 9일로 유럽, 게다가 독일이다. 찾아보려는 노력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프랑스나 스페인, 이태리에 비해 정보도 부족했다. 장거리 여행인데 누군가와 같이 다녀도 괜찮을까? 관광해야 된다며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고 한 곳에 눌러앉아 있고 싶은데 동의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만 할 뿐이었다.
도시 이동을 어떻게 할지 겨우 정하고나니 동생이 호텔 예약을 다 해줬다. 나머지는 공항 가는 길부터 생각하자며 어물쩡거리고 있으니 정말 공항 가는 날이 다가왔다. 이 안덱스 수도원에 맥주를 마시러 가기로 한 것도 뮌헨에 도착한 날에 정했다. 화요일에 맥주 양조장 투어 갈 거니까, 다음날에는 수도원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어떤 맛인지 확인하러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더니 좋다고 했다.
전날 에딩거 양조장에 가려다 실패하고 아잉거 양조장으로 간 것은 분명 만족스러웠지만, 그래도 정신 못 차린 결과니까 오늘만은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전날에 가는 방법을 몇 번이고 숙지했다. 뮌헨에서 7시 방향으로 떨어진 이 곳은 RB기차를 타고 Tutzing역에 가서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면 가는 곳이었지만, 이 버스가 한 시간에 한대 꼴이라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가야 했다. 기차에서 버스까지 환승하는 시간이 6분밖에 없어서 조금 불안했지만 정신 바짝 차리니 물 흐르듯 제시간에 맞추어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다.
수도원 입구의 맥주 마시는 소녀
버스에서 옆의 외국인이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남이냐 북이냐고 물었다. 분단국 가였어서 그런지, 코리아라고 하면 항상 물어서 이다음부터는 그냥 처음부터 south를 붙였다. 그러고선 한국에서는 대체로 어떤 종교를 많이 믿느냐고 하기에 불교 기독교를 얘기했더니 너희는 종교가 있느냐고 또 물어서 우리는 종교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에게 되물었더니 베를린에서 왔고 정말 이 수도원을 보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우리가 너무 이 수도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맥주만 마시러 온건가 싶었다. 뭐 어때! 진짜 맥주 마시러 수도원 간 거 맞는데 뭘 하며 바로 쿨하게 인정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어를 좀 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두 번째 대화였다.(앞으로 한번 더 있음)
수도원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전경
수도원을 가는 길은 정말 구불구불한 시골길이었다. 주위엔 온통 논밭뿐이었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은은한 오르막을 오르니 수도원이 나타났다. 바로 위의 사진이 수도원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이다. 정말 멋지다. 빽빽하지 않게 들어선 독일식 주택과 목초들. 남해 독일마을의 집들이 정말 이렇게 생겼다. 독일 집들이 진짜 이렇게 생긴 거 맞나 항상 의심했는데 의심이 풀렸다. 독일마을은 정말 잘 지었다.
들어가보기에 무섭게 생겨서 못 들어가봤다. 책으로 다시 보니 정말 화려하게 지어놨다. 못보고 와서 아쉽다.
수도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우리의 목적지로 향했다. 그때 시각은 11시쯤이었다. 이건 아점인가 조금 이른 점심인가. 호텔에서 일찍 아침 먹었으니까 점심이라고 하자. 아침 맥주는 좀 그래도 낮맥은 괜찮잖아?
여기도 뮌헨 시내의 야외 비어가든처럼 주문하고 이동하면서 받아가는 시스템이었다. 바이젠과 스페셜 비어(라거)에다가 안주로는 학센과 프레즐을 시켰다.
바이젠은 처음에는 향이 잘 안 느껴졌는데 끝 맛에 바나나향이 훅 올라왔다. 스페셜은 라거임에도 탄산이 많이 안 느껴졌고 단맛이 나는 느낌도 있었다. 탄산이 세지 않은 라거도 맛있구나 싶었다. 추가로 시킨 둔켈이 오히려 탄산감이 조금 더 있고 쓴맛 뒤에 단맛이 '나 여깄었지롱' 하며 나타나는 느낌이었다.
7월 초 무더운 날씨의 수요일 오전 열한 시의 모습이다.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와서 맥주를 커피처럼 놓고 홀짝홀짝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 와서 책 읽으며 맥주 마시는 분도 있었다.(북맥!) 동생이랑 나란히 앉아서 사람 구경 경치 구경하면서 찬찬히 마셨다. 동생이 사람들을 보고 '우리나라는 아저씨들끼리 잘 마시러 다니는데 여기는 부부동반으로 마시러 많이들 다니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동안 우리가 다닌 비어가든들에서도 보고 그렇게 느꼈나 보다. 나이 드신 분들 피부를 보고도 요새 사람들과의 차이를 운운하며 뭐라고 하기에, 작은 눈으로 참 이것저것 잘 관찰한다고 칭찬해줬다. 덕분에 나도 조금 더 눈과 마음을 열어서 더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수도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버스를 타고 다시 Tutzing 역으로 내려왔다. 근처에 독일에서 4번째로 큰 호수인 슈타른베르크 호수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가자고 했다. 날이 조금 무덥긴 했지만 아이스크림 먹고 드럭스토어 가서 구경하며 한숨 쉬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호수는 과연 반대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컸다. 우리가 도착한 지점은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지점은 아닌 듯해서 조용하게 벤치에 앉아서 호수의 반대편을 각자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뮌헨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날 저녁에 들었지만 자기는 호수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제일 관광 욕심 없이 한 군데 눌러앉아 있는 것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한 애가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참 다행이다, 남은 독일 여행을 넘어 앞으로도 좋은 여행 메이트가 되겠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