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돌아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의 하루 Mar 06. 2024

사라진 것과 남아있는 것

대학을 졸업한지 10년이 지났다. 2년 전, 다녔던 대학 근처에서 2개월정도 거주할 기회가 생겼다. 대학시절을 새까맣게 잊고 산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같은 공간에서 길을 걷다보면 옛 생각이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 2년 전에도 대학교 근처에 살면서 참 가게들이 사라지고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코로나가 끝난 최근에 가봤을 때는 더 많은 가게들이 사라졌거나 바뀌었다. 이제는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있었던 가게보다 새롭게 생긴 가게가 더 많아졌다.


작년 중순쯤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대학 시절 내내 많은 시간을 쏟았던 밴드 동아리가 코로나19로 인해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아 폐부한다는 긴 안내 문자였다. 문자를 보낸 후배도 내가 졸업반일 때 막 신입생이었던 친구였는데, 군대를 갔다오고 나니 동아리도 후배들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20년 역사를 가지고 있던 동아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그 사이 내가 알던 홍대거리는 지형만 남아있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길을 덮고 있는 아스팔트도,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건물들도 바뀐 것이다. 대학시절에는 홍대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아는 사람을 한 명쯤 만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사라졌다. 이제 내가 아는 가게와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나마 지나갈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남아있는 곳들을 보곤 했다. 홍대 9번 출구 근처 ‘치킨뱅이’가 그 중 하나다. 홍대 치킨뱅이가 어떤 식당이냐고 하면 내 대학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곳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폐부한 동아리의 아지트였고.


최근 홍대에서 식사를 할 일이 있었는데 약속 장소를 가보니 우연히도 ‘치킨뱅이’ 위 층 새로 오픈한 식당이었다. 나도 모르게 일행들 틈에서 벗어나 치킨뱅이 안 주방을 빤히 쳐다봤다. 음식은 거의 시키지 않고 술만 계속 주문하던 대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서비스라며 맛난 걸 주던 사장님, 공연이나 축제 때면 한 번씩 양손 가득 찾아오시던 사장님, 사장님은 내가 대학시절 신입생으로 치킨뱅이 가게에 발을 들인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주방, 같은 자리에 계셨다.


세월이 지나면서 변해버린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며 서글퍼 질때가 있다.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홍대에서는 변하다 못해 사라져버린 것과 남아있는 것으로 나뉜다. 폐부된 동아리처럼 사라져버린 것들이 내 추억을 앗아갈까봐 안절부절해진다. 그러다 반가운 마음에 남아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것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변해 아련함을 남긴다.


많은 것이 달라졌고 사라졌다. 동아리는 사라졌고 치킨뱅이는 남아서 여전히 운영 중이다. 그리고 10년 전처럼 홍대 거리에는 젊었던 이들이 떠나고 다시 새롭게 젊은 사람들이 채워진다. 남은 것과 사라진 것, 무엇이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드는 걸까.


| 사진: UnsplashPro Church Media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사진 스트림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