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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듀 Mar 31. 2022

일흔셋 엄마는 여전히 일하고 싶다.


은퇴를 하고도 생계를 이어 가야만 했던 엄마가 선택한 일은 요양보호사 일이었다. 그리고 올해로 일흔셋인 엄마는 다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녀의 생계유지엔 늘 '나'라는 이유가 있었다. 늦둥이를 둔 탓에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 했던 엄마의 모습은 내가 하루빨리 성공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하고 2년 차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줄곧 이제 그만 쉬라고 말해왔었다. 물론 아직 부담이 되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내가 쓰고 싶은걸 조금 더 참는 게 엄마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 나았다. 하지만 아직 사회초년생인 딸에게 짐을 지운다는 부담감이 있었는지 엄마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았고 이후 몇 년을 더 이어가다 일흔을 앞두고 본인 몸의 한계를 느끼고 나서야 일을 관뒀다.

때론 '그지 같은 회사'를 외칠지언정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며 일했던 나와는 달리 노년기 엄마가 선택한 일은 생계 때문에 억지로 이어가는 걸로만 보였다. 젊은 사람도 힘든 요양보호사 일을 일흔이 다돼가는 엄마가 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여겼고, 엄마가 억지로라도 쉬게 된 게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때문에 비로소 쉬게 되었을 땐 엄마도 마냥 홀가분하고 좋아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날이 갈수록 엄마는 우울해했고 무기력증에 빠져들어갔다. '쓸모없이 집에서 놀고만 있다'라는 말도 자주 하기 시작했다.

거의 평생을 일하며 살아온 엄마에겐 휴식이 낯선 듯 보였다. 유일한 취미인 드라마 볼 때만 잠시 생기 있어지다가 그게 끝나면 다시 우울모드에 돌입하곤 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일했지, 뭘 더 하려 하느냐", "남들은 쉬면 좋다 하는데 그러지 말고 취미라도 가져보라"라고 달래도 엄마의 무기력함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지난 시점. 엄마는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뜬금없는 통보를 했다.

"나 내일부터 일 나가."

"응...?"


겨우 회복된 몸이 다시 안 좋아지면 어쩌려고! 일흔을 넘긴 나이에 무슨 일이냐며 한참을 싸웠지만 황소고집으로 유명한 엄마는 결국 다음날 '출근'이라는 걸 하고야 말았다. 이때만 해도 '곧 힘들다고 관두겠지.'라는 생각이 컸기에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거나 힘들다 싶으면 바로 그만둬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만족했다. 그런데 웬걸. 한 달, 두 달이 지나 벌써 반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엄마의 노동은 이상하게 엄마를 전보다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걱정은 여전해 가끔 물어보곤 한다.

"일은 할 만 해?"

"응, 전에 있던데는 나 혼자 여러 명을 봐야 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한 명만 담당하니 훨씬 수월해!"


요즘 엄마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병원에서의 일을 하나둘 이야기하곤 한다. 일 얘기를 하지 않던 과거와 다른 점이었다.

- 환자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빨라.

- 원래 누워만 있었는데 이젠 느리더라도 꽤 걸어.

- 우리 환자가 자기는 괜찮은데 언니는 천식이 있어서 코로나 걸리면 어떡하녜.

- 몸은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인지능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내가 가나다라부터 가르치고 있어.


더욱이 스스로 다시 경제적인 생산자 역할을 한다는 것에 엄만 굉장히 만족해하는 듯하다.

한 번은 배달비용이 너무 올라 이제는 배달음식을 자주 못 시켜먹겠다는 나의 말에

'내가 시켜줄게!'라고 너무 밝게 말하는 엄말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가 엄마의 무기력함을 없앤 걸까.

엄마가 이전에 근무했던 곳들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요양보다는 치매와 같은 노화로 인한 요양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노화로 인한 요양환자들은 엄마가 케어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서 환자 여러 명을 담당해야 했던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급여는 너무 소소했다. 당시 엄마에게 일은 '생계유지 수단'이었기에 이는 꽤 큰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엄마에겐 일하는 주된 목적이 생계유지에 있지 않다. 그래서 아마도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보람'이란 걸 느끼고 있는 듯했다.

- 환자가 회복되어 하루하루 변화되는 모습

-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즐거움

- 환자와의 유대감

- 경제적 역할


사실 엄마 나이쯤 되면 일에서의 보람이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무언갈 창출하는 즐거움보다는 '쉼'에서 얻는 즐거움이 압도적으로 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모습을 보니 나이와 무관하게 '생산적인 활동에서의 보람'이란 인생에서 꽤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 프로그램에서 지하철 택배원 '조용문'할아버지 편을 보았다. 은퇴 후 약 13년 동안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하셨다는 할아버지는 82세의 나이임에도 매일 2~3건 정도의 택배일을 위해 집을 나섰다. 하루 벌이에 비해 긴 대기시간으로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MC들에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 좋다. 가만히 있으면 까먹기만 하는데 2만 원이면 큰돈이다.'라는 말로 답하시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일로 인해 엄마의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진다 싶으면 뜯어말리리란 다짐은 여전하다. 하지만 자식 된 걱정으로 부모가 일하고자 하는 욕구를 무조건 꺾는 것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괴롭게 느껴지는 경우는 '오직 생계유지 수단으로만' 느껴질 때인  같다. 작던 크던  이상의 지속할 의미가 있다면 우린 버티거나 오히려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은 나이와 무관하기에 부모님의 열정 역시 함부로 꺾지 말아야겠다. 일하는 엄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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