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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듀 May 06. 2023

귀여운 네가 솔루션이 됐다.

귀여운 게 가정을 바꾼다.


우리 집에 막내둥이 몽구가 온 지 어느새 6개월이 되어간다. 그리고 몽구가 오기 전과 지금은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엄마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막내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엄마 멋대로 바꾼 '몽'이라는 이름으로 "몽아~ 몽아~ 잘 잤어~?" 라며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묻는다. 무뚝뚝하진 않지만 표현이 많거나 부드러운 스타일은 결코 아닌 엄마에게서 아마도 난 갓난쟁이였을 때조차 저런 솔 톤의 목소린 전혀 못 들어봤을 거란 알 수 없는 확신이 든다. 뭐, 전혀 서운하진 않다. 내가 바란게 바로 저것이었으니까.



몽구를 데려오기 전 넌지시 물어봤을 때 엄마는 결사반대였다. 동물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줄 아냐는 것이었다. 내 기억 속 엄만 결코 동물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어렵게 살아온 탓일까 여건이 나아져도 늘 돈 걱정이 기저에 깔려있는 엄마에게 반려동물이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덧붙이면서까지 반대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미 난 마음속으로 결심을 한 뒤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려동물은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모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데리고 온다면 부모님의 지원 없이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했기에 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했다. 내가 마지막까지 고민할 무렵 내 주위엔 이상하게도 집사님들이 유독 많았다. 덕분에 집사 로망 실현보다는 현실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부분들에 대해 많은 조언을 구할 수 있었고, 몇 년간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고 반려인이 되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실 내가 집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궁극적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버거움을 느끼는 나 때문이었을까?

불과 2년 전쯤 엄마의 급작스런 건강 악화로 엄마가 일을 관두게 되었을 때, 일생을 일만 하고 살던 엄마는 휴식을 도통 누리지 못했고 오히려 '쓸모없는 몸뚱이가 됐다'며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였었다. 드라마 보는 것 말곤 딱히 취미도 없던 엄만 오히려 뭘 하고 쉬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그런 엄마를 위해 나름 신경을 쓴다고 썼지만 무뚝뚝한 딸이 온전히 채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서로에게 서로 뿐’이란 것은 어느 순간 애틋하다기보단 더 외롭고 버겁게 만드는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어쨌든 우리 집엔 ‘웃을 일’이 절실했고, 나 역시 (알아듣든 말든) 내 감정을 터놓고 위로받고 싶은 어떤 존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흔히들 <고양이(또는 강아지) 절대 안 된다던 부모님>이라는 제목의 수많은 동영상들이 있다. 반려동물을 누구보다 반대하던 부모님이 막상 데려오고 나니 누구보다 예뻐한다는 내용의 그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화에 기대기엔 갱년기 이후로 유난히 예민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엄마였기에 나는 정말로 쫓겨날 각오까지 했어야 했다.

엄마와 성향부터 취향, 하나부터 열까지 정반대인 나로서는 어느 순간부터 집이 편한 공간은 아니었고, 그래서 쫓겨난다면 그건 그거대로 독립에 박차를 가할 좋은 기회란 생각도 들었다.


예상대로 말없이 몽구를 처음 데려왔을 때 엄마는 아주 많이 화를 냈었다. 심지어 엄만 가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 오면 강아지처럼 마중을 나와 인사하고, 움직일 때마다 졸졸 쫓아다니며, 잘 때면 곁에서 잠드는 이 아이에게 도대체 어느 누가 안 빠져들겠나.

지금은 엄마가 집을 비울 때 통화를 하면 "몽구 밥 줬냐? 몽구 심심하니깐 얼른 들어가."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일 정도로 나보다 몽구를 더 챙긴다. 또, 누가 집에 놀러 오면 엄만 자식 자랑하듯 몽구 자랑을 늘어놓는다. 몽구 덕분일까. 예전처럼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나날들임에도 엄만 우울함이나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고 있다. 몽구 때문에 청소를 더 자주 해야 한다며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요즘 엄마의 그 툴툴거림엔 어쩐지 애정이 느껴진다. 오히려 집에서 본인 손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생김에 생기를 찾는 느낌이다.


엄마와 주요 대화 주제가 몽구로 시작해 몽구로 끝나는 듯 한 요즘, 나 역시 몽구 덕분에 나에게 할애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줄어들고, 조금 더 피곤하긴 하지만 몽구 덕분에 정말 많이 웃게 되었다. 몽구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엔 웃을 일도 딱히 없고, 안 좋은 일이 있을 땐 그저 그 기분에 잠식해 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일이 있어도 집에 와 몽구를 안고 뒹굴다 몽구의 어이없는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성취욕과 인정욕구가 높아 해야할 일도, 하고싶은 일도 산더미인 내가 '다른 존재에 대해 이렇게까지 내 시간과 비용을 할애할 수 있구나. 똥도 귀여워 보일 수 있구나. 사고를 쳐도 웃어넘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매일 놀라는 중이다.

물론 전보다 조금 더 어깨가 무거워졌고, 조용하게 혼자 누렸던 시간이 문득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몽구가 없었던 때를 생각하면 몽구의 존재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귀하다. 부모 외에 나를 이렇게나 조건 없이 좋아하고 따르는 존재가 또 있을까?


사람 아기든 반려동물이든 귀여운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지 않는가. 세상까진 몰라도 가정의 분위기만큼은 확실히 바꿔주는 게 맞는 것 같다.

부디 나와 엄마가 네 덕분에 행복한 만큼, 너도 우리 집에 와서 내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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