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J인 나는 완벽주의자에 계획형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선택에 있어서도 완벽한 선택만을 하려고 애쓴다. A가 나을까. B가 나을까. 특히 그것이 나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만한 (예를 들면, '진로'와 같은) 선택일 경우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일지 더욱 과도하게 신중해지곤 한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그러한 기로에 더 자주 놓이게 되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음 프로젝트를 탐색하고 결정할 때마다 아주 괴롭다. 애초에 프리랜서로 활동할 기간을 최장 2년으로 잡고 시작했었다. 이 기간 동안 좋은 포트폴리오를 많이 쌓아 8년 차 즈음엔 내가 정말로 원하는 대기업에 이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목표로 시작하니 매번 프로젝트 선택에 더 신중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매번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만 쏟아져 나와 골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망할 코로나 덕분에 투입 확정까지 됐다가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지거나 기약 없이 미뤄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순 없으니 차선에 차선 프로젝트를 선택하다 보면 INTJ는 그건 그것대로 불안했다. 사실 차선에 차선도 괜찮은 프로젝트였음에도 처음에 생각한 가장 완벽한 선택이 아니면 어딘가 불안하고 찝찝했다.
분명 소득은 정직원이었을 때보다 두 배 이상 뛰었고, 워라벨도 충족되었음에도 불안함은 가시질 않는다. 목표인 완벽한 이직으로 가는 단계라 여기기 때문일까 매 선택마다 과도하게 신중해져 오히려 평정을 잃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선택'에 있어 '완벽'이란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누가 봐도 한쪽이 더 좋은 선택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그 길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가봐야 비로소 안다. 아니 사실 애초에 평생 모른다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행운과 불행이 거듭 찾아온다. 그 수많은 변수들을 어떻게 겪어내느냐에 따라 같은 선택에서도 결과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선택한 길을 걸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선택이 진짜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나의 선택이 최고였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내는 것.
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몇 년간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참 많이 했었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던데 괜히 에이전시로 시작해서...'라고 말이다. 일은 너무 힘들고 그것에 비해 급여는 정말 작고 작았으니깐. 그런데 프리랜서를 해보니 에이전시를 다녔던 경험이 이래저래 정말 많은 도움이 됨을 느끼고 있다. 인하우스보다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경험할 수 있었고, 업무강도가 높았던 만큼 배운 것 역시 많았다. 더군다나 지긋지긋한 에이전시를 탈출해보고자 개인 시간을 할애하여 아등바등 배우고 노력해왔던 것들까지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 역시 계속 에이전시에 남아있는 선택을 했더라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것들이다.
내가 앞서 목표로 잡은 것들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프리랜서 기간이 2년보다 짧거나 반대로 그 이상 길게 이어질 수도 있고, 대기업 이직이 아니라 아예 직업 자체가 다른 걸로 바뀔 수도 있다. 다가올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아 우릴 두렵게 하지만 그래서 바꿀 수도 있다.
결국엔 우린 무언갈 선택함으로써 무언갈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한다. 내 선택이 무엇을 잃게 하였는지 무엇을 얻게 하였는지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잃을 각오로 선택한 길이 더 큰 걸 얻게 하기도 하고 얻기 위해 선택한 길이 더 많은 걸 잃게 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내 선택이 무엇을 잃거나 얻게 만들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선택한 길이라면 결국엔 옳은 선택, 최고의 선택이었단 걸 증명해내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나의 선택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간다.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중히 고려하고 결정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이 결국 최고의 선택임을 믿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선택은 오늘도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