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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 Oct 29. 2021

아직도 나를 찾는 중

06. 다시 디자인 에이전시, 잊지 못할 인연들

브랜드 영역이라는 진로만 선택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 세계 안에도 다양한 형태의 분야들이 있었다.

기획자, 전략가, 디자이너 등 나는 기획과 디자인의 그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사색에 잠기는 것이 좋고 스토리를 쓰는 것도 좋아한다. 글을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이것이 그래픽이나 결과물로 표현될 때 가장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다.


공공기관을 그만두고 기업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회사의 면접을 보았다. 때로는 디자이너로, 때로는 기획자로 그럴 때마다 나는 애매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어떤 영역을 선택하지 않을 채 기획과 디자인을 넘나들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업에서 원하는 사람은 명확했고 두 영역 중 한 분야의 전문성을 원했다. 이는 큰 기업일수록 더욱 그래 왔다. 세분화되어있는 조직에 하나의 전문성을 갖은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에이전시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내 손으로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래서 지원했던 에이전시의 1호 BX디자이너로 입사를 했었다.


사실 입사한 곳은 원래 UIUX/개발 에이전시였는데

100명이 UIUX디자이너, 기획자였고 나머지 100여 명이 개발자들이었다. BX라는 팀조차 없었는데 회사의 포트폴리오와 기업소개를 보고 왠지 이곳이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메일을 쓰게 되었었다.

(인사담당자에게 쓴 줄 알았는데 디자인 센터장님께 썼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적극적인 태도가 맘에 드셨는지 없던 팀까지 만들어 브랜드 업무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강도 높은 업무에 버틸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사실 쉽진 않았다. 주 5일을 기준으로 3일은 오후 10시 ~ 12시를, 남은 하루 이틀은 새벽에 3시 이후에 퇴근하고 했었다.


하지만 이전에 다른 것이 있다면 즐거웠었다.

새벽에 야근을 할 때도, 밤을 새워서 아침 해를 볼 때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때 만났던 조직장님이 말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는데 “이왕 하는 거 재밌게 해라 스트레스받아도 즐겁게 하자!”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잘 공감하진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강도 높은 업무에 어떻게 재미를 찾으라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결과물을 높이기 위해 고쿤분투하고 그 안에서 설정한 브랜딩 방향을 처음부터 끝까지 리딩 하는 것에 엄청난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값진 것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동료애”라는 것이었다. 이전에 동료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때 만났던 동료들은 이제는 친구가 되어 서로 고민 이야기도, 사는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끈끈한 사이이다.


야근을 하면 새벽이 넘어갈 시간, 정신이 혼미해 갑자기 웃음이 나기 시작하면 미친 듯이 동료들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졸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헛소리를 해도 만담처럼 주거니 받거니 했던 동료도 있었다.

집에 못 가는 나를 보며 “도와줄게 같이하자”라며 함께 야근을 해준 동료도 있었고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고 있을 때면 곁에서 함께 울어준 동료도 있었다.


인사팀 조직장님이 당시 우리 팀을 말하기를 꽃밭에 있는 꽃 같은 존재들이라고 했었다. 서로 의지하면서 소중히 아껴주고 싶은 존재들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회사에는 일만 하는 곳이 아니구나, 이렇게 아끼고 서로를 응원해주는 동료들이 있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곳이었다. 할 수 만 있다면 이 친구들과 계속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경영악화로 인한 조직개편으로 BX팀을 없애고 나와 함께 있던 동료는 흩어져 다른 조직의 UIUX디자이너로 일을 했었다.


그리고 좋아했던 동료들의 웃고 있던 얼굴에 그림자가 생겼고 하나, 둘씩 퇴사의 조짐이 보였다.

첫 번째 퇴사자는 나였다.

퇴사 날은 그 회사를 다닌 지 3여 년 정도 된 시기였고 리프레시(3년 근속년자에게만 주어지는 1주일 휴가였다) 휴가를 며칠 남긴 날이었다.


3년의 근무 기간 동안 디자인적 스킬과 퀄리티는 빠르게 성장했다. 더욱이 기업 PT도 담당했기에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기를 수 있었다. 실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일반 기업에서 배우는 속도의 2배는 빨리 습득했다.

(하루에 기본 16시간은 일을 했기에 당연했던 것 같다)


퇴사를 고민했을때, 동료들이 소중해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의 커리어를 쌓는 게 맞을까 라는 의문은 계속 들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직이 개편됨에 따라 아끼던 동료들과 팀이 달라졌고 내가 담당하던 팀은 새로 생긴 지 3개월 남짓한 신생팀이었으며 조직 구성원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신 분들이었다.


조직장님조차 신규로 오신 분이었기에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규모가 큰 기업의 출신이라고 말씀해주시면서 본인의 작업을 보여주신 적이 많았다.


그날도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이번이 벌써 3번째였다.


그리고는 슬며시 나를 부르시고는 “네가 하는 디자인은 프리랜서를 줘도 100-200만 원이면 할 수 있는 것이다. 기획이나 운영에 대한 고민을 더해라”라고 하셨다.


그다음 날부터 이직 원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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