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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하 Jun 05. 2020

데뷰 카페(Debut Cafe)

-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 004

  대만에 온지 어느새 100일이 넘었다. 오자마자 2주간의 자가격리로 생활을 시작한데다 한국에서 채 끝마치지 못한 일들을 하며 거의 두달 넘게 지나보냈다. 게다가 할 줄 아는 중국어라도는 '니하오(你好)', '씨에씨에(谢谢)' 정도. 여기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히키코모리 같은 성향까지 겹치면 통 나갈 일이 없어진다. 한 번 나가려면, 특히 대중교통까지 이용하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한다. 내향인의 비애 아닌 비애다.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특히 강력한 것이 '욕망'이 아닐까 한다. 모처럼 홀로 외출할 큰 마음을 먹게 한 건 지름신이었다. 근래 빠진 연필 깎이의 로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눈여겨 봐둔 문구 편집샵에서 오피넬 나이프를 샀다. 그리고 나간 김에 근처에 있는 카페, '데뷰 카페(Debut Cafe)'를 찾았다.



  데뷰 카페는 평이 좋은 카페였다. 자연히 기대감을 갖게 했다. 동시에 온라인 상에 올라온 사진에선 왠지 오래된 다방 같은 느낌이 나 한편으론 의구심이 들었다. 직접 가보고 내린 결론은 '좋은 카페'라는 것. 오래됨이 결코 '낡은 느낌'으로 서린 곳이 아니었다.



  벽면에 장식된 빈티지한 커피 도구, 각종 커피 잔, 그리고 작은 서가는 고풍스런 집의 수집실 겸 서재를 연상케 했다. 카운터 앞에 가지런히 놓인 각종 원두, 카페 한 켠에서 커피콩을 고르는 직원들의 모습에선 커피에 대한 애정과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에 들른 많은 사람들이 적어둔 좋은 평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커피 원두 맛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중국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슬픈 순간이다. 서로 짧은 영어로 뜻을 맞춰보니 산미가 강한 원두와 쓴맛이 강한 원두 중 고를 수 있다는 말.



  간신히 주문을 마치고 카페를 둘러봤다. 넓고 쾌적한 공간이다. 카페 안에는 은은하게 커피 향이 난다. 도란도란한 손님들의 대화 소리는 배경음악과 더불어 거슬리지 않는 정도의 백색소음이 된다. 혼자 가도 내 할일에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다.

 


  카페 공간 여기 저기에 걸려있는 액자, 오래된 커피 용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십인십색의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 만큼이나 제각각  다른  카페의 면면들을 보는 건 미술품이나 사진 작품 감상 만큼이나 재미있다.


  대학생 시절 들었던 어느 교양 수업에서 미술품 감상 방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어렴풋하지만 몇몇 설명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를테면 전체적인 인상을 보고, 텍스쳐를 보고, 와닿는 느낌이나 작가의 의도를 보라던가. 의미 없이 성적증명서 위에 적힌 과목명과 알파벳 정도로만 남은 수업들에 비해 뭐 하나라도 건진게 있으니 다행이다.



  카페를 즐기는 방법도 일맥상통하다면 오버일까? 카페 주인이 정성을 들여 꾸민 인테리어, 취향을 담아 골라 배치해둔 소품, 머무는 시간을 함께 하는 음악의 선곡과 공간의 향기, 그리고 커피 맛, 여기에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등. 한 카페를 즐기는 방법, 특별해지는 요소는 많고도 많다. 하나씩 살펴보면 대수롭지 않은 요인들은 기가 막히게 서로 맞아들 때 느끼는 '좋은 카페다!'라는 감정은 그 곳에서 보낸 삶의 한 때를 보다 농밀하게 해준다.

 


  데뷰 카페는 제법 자신있게 추천해줄만한 곳이다. 누군가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카페는 드물다. 데뷰 카페에선 저절로 그 생각이 났다. 데뷰 카페에 들어서기 전까지만해도 '주척주척 청승맞게 내리던 비'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 홀짝이며 바라보는 순간 '운치있는 비'가 됐다. 필경 카페의 분위기에 물든 탓이리라.



  데뷰 카페의 에스프레소는 맛있었다. 내가 주문한 쓴맛이 강하다는 원두는 설명대로 묵직했다. 혀를 꾹꾹 눌러 밟으며 입안으로 들어오는 쓴맛이었다. 두툼한 고소함이 뒤를 이었고 다시 한 번 쌉싸름한 끝맛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어서 산미 위주의 에스프레소 한 잔을 더 시킬까 하다 다음에 또 오기 위한 구실로 삼기 위해 아껴둔다.



  여행이든 생활이든 머무는 곳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공통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찾아보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카페 투어다. 여행자라면 출첵하듯 돌아다니거나 아쉽지만 접어뒀을 기착지들을 한껏 즐길 수 있어 좋다. 이 즐거움을 작게나마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언젠가, 누군가 타이베이에 와서 커피 한 잔 할 때 기왕이면 좋은 카페에서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을 한 톨 더 심을 수 있도록. 데뷰 카페는 그러기에 손색없는 곳이다. 추천한다.

 


1.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 004: 데뷰 카페(Debut Cafe)

2. 주소: No. 15, Section 1, Xinsheng North Road, Zhongshan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4

3. 영업 시간: 13:00 ~ 22:00


- 실시간 타이베이 카페 여행기는 인스타그램 @109.taste 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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