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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화 Mar 21. 2020

좌충우돌 경매 입찰기

우리 결혼합니다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 우리는 부동산 임장 데이트를 시작했다. 앞으로 10년 정도 살 집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했다. 중요한 조건은 광화문과 강남으로 출퇴근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야 하며, 우리가 모은 돈과 주택담보대출(40%)로 해결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한다. 요 몇달 부동산 상식 사전이라는 제목의 책도 사서 읽었고 네이버부동산과 직방을 수시로 확인했으며, 매일 나오는 부동산 관련 기사 수십건을 빠짐없이 정독했다. 후보지는 몇군데로 추려졌는데 특히 마음에 드는 단지가 있었다. 직접 가서 집을 몇군데 보면서 이미 마음은 살고 있는 것과 다름 없어졌다. 예전엔 1층이라도 상관없다. 뷰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했지만, 로얄동이니 로얄층이니 하는 것도 나중에 팔고 나갈 상황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그런데 매일 매일 이 아파트 단지를 들여다보았더니 어느날 아침 네이버 메인에 '0000타운 NN동 MM호 경매' 라는 기사가 떴다. 인공지능 이놈들 똑똑한지고. 그동안 경매라는 선택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이 기사를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교통 편리한 대단지인데다, 동호수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저 매각 가격) 5.8억원이라는 숫자에 사로잡혔다. 최근 시세보다 1억원 이상 저렴한 가격이었다. 우리는 갑작스럽게도, 경매가 무엇인지 ㄱ자도 몰랐음에도, 경매에 뛰어들기로 했다. (스포: 물론 실패했음) 


7억짜리 아파트가 왜 1억 빚 때문에 넘어가는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수요일에 경매 물건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됐는데 그 다음주 월요일이 당장 입찰하는 날이었다. 우선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등기부등본을 떼보았다. 경매 무지랭이이지만 등기부 먼저 떼어봐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집주인이 누구이고, 이 집을 담보로 빚을 얼마나 졌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전입 확정일자를 신고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등기부가 예상보다 깨끗했다. 건강보험료 연체 등으로 앞서 2차례 경매에 넘어간 적이 있었지만 취하됐고, 이번이 세번째였다. 현재 설정된 근저당권은 1억4000만원 내외였고, 근저당권자는 대형 시중은행이었다. 여기서부터 의아했다. 이 아파트(전용 59)의 최근 매매가는 7억8000만원이지만 미친듯이 가격이 치솟았던 2018년 하반기 마지막 거래였고, 최근에는 7억 초반대로 호가가 내려왔다. 집을 처분하면 빚은 금방 갚을 수 있을텐데 집주인이 왜 헐값에 경매에 넘어가도록 내버려둔걸까? 숨겨진 빚이나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알아보니 일단 경매에 넘어간 다음에는 집주인이 임의대로 집을 처분할 수 없다. 이 집을 경매에 넘긴 근저당권자에게 빚을 갚든 이자 먼저 갚든 믿을 만한 상환 계획서를 제출하든 해서 경매를 취하시켜야 한다. 집주인이 경매일 이전까지 문제를 해결한다면 경매가 취소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었다. 


초인종 '띵동' 눌러보기 

다음 단계는 이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 확인하기. 등본만으로는 이 집에 세입자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신고된 확정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근저당권이 설정되기 전에 확정일자를 받아놓아야만 나중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원과 경매정보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물건명세서, 사건내역서, 현황보고서 등등 여러 서류를 확인해보니 세입자가 등록돼 있긴 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조사를 나갔을 때 집에 없었던 모양인지, '미상'이라고 나왔다. 서류상으로는 세를 든 시점이 근저당권 설정 시점보다 늦어서 세입자에게 대항력이 없다고 했다. 집을 낙찰받더라도 갑자기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것 같다'는 심증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권리가 없어도 사람이 살고 있는데 내쫓고 그 집에 들어가려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고 골치가 아플까. 경매 책도 샀는데, 여기서도 낙찰 받은 뒤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거주자에게 이사비까지 줘서 내보내고 명의를 깔끔하게 이전 받는 '명도' 가 제일 힘든 과정이라고 했다. 수수료를 받고 명도를 대신해주는 업체도 있다는데, 물론 그건 나중 문제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다름이 아니라, NN동 MM호..." 라고 운을 띄우자 마자 "네 거기 관리비 연체된 것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하도 전화를 걸어대니 동호수를 대자마자 무슨 일인지 알아채고 대답해주는 거였겠지? 경매 참여자가 아주 많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 거주자가 있나요?"했더니 담당자는 "자동이체로 들어오는 거라, 사람이 실제 사는지는 모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토요일, D-2. 직접 그 집에 가보기로 했다. 세입자로 이름은 올라와 있지만 이사를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혹시 만난다면 보증금은 얼마인지, 경매에서 낙찰되면 조용히 나갈 계획인지 이사비용은 얼마쯤 받고 싶은지 등을 물어볼 수 있을 터였다. 다른 주민 뒤를 따라 공동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해당 층에서 내려 집 앞에 섰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유모차가 4대나 서있었다. 옆에 분리수거 쓰레기가 든 비닐 봉투가 있길래 열어보았다. 빈 우윳곽 유통기한이 아직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집에 누가 살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었다. (탐정이냐...) 좋아, 벨을 눌러보자!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마치 수습 시절 환영받지 못하는 경찰서에서 형사과장 방문을 두드려야 하는 상황 같았다. 만약 내가 세입자라면,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당장 며칠뒤 어디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찾아오는 입찰자들이 반가울리 있을까. 그래도 얘기를 해보는게 좋겠지 싶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띵동' 눌렀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한번 더 초인종을 눌렀지만 역시 조용했고, 우리는 되돌아 나왔다. 나오는 길에 우편함도 열어보았다. 편지 꾸러미가 있었는데 모두 경매, 부동산 관련 회사에서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보낸 편지들이었다. 

  

나오는 길에 여러번 갔던 부동산에 인사할겸 들렀다가, 꿀 정보를 듣게 됐다. 우선 그 집에 세입자가 월세로 살고 있어서 보증금이 약 3000만원이라는 거였다. 혹시라도 낙찰을 받았는데 세입자가 안나가고 버티더라도, 최악의 경우 3000만원 물어주면 된다는 점이 제법 안심이 됐다. 전세였다면 수억원을 내줘야하는 참사가 생길수도 있어 걱정이었다. 그리고 두번째가 더 중요한 정보였는데, 집주인이 경매 전에 빚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백퍼센트 확실할 순 없겠지만, 경매가 취하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역시 부동산이 정보의 총집결지였다. 취하되면 지금까지 한 짓이 모두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긴 했지만 미리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당일날 경매계에 전화를 해보자고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1억대 빚 때문에 집이 넘어가도록 내버려둘 리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후끈후끈 경매법정 

입찰 당일은 마침 휴가 였다. 사실 경매 책은 나 대신 오빠가 꼼꼼히 공부했는데, 나 혼자 서류를 접수하러 가야해서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날 미리 입찰 서류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살펴보려고 했지만 노느라 밤이 늦었다. 경매가 취하될 것이라는 부동산 실장님의 예언 때문에 마음을 놓아버렸다.  


당일 아침 9시 00법원 경매계에 경매가 취소됐는지 확인 전화를 걸었다. 경매계 아저씨는 "왜요, 취소됐으면 좋겠어요? 취소 안됐는데~"했다. 예상이 빗나갔다. 급히 세수를 하고 미리 챙겨뒀던 서류 봉투를 챙겨 집을 나섰다. 내 신분증과 도장, 오빠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그리고 입찰 보증금을 들고 가야 한다. 입찰 보증금은 최저 매각 가격의 10%다. 현금이나 수표로 5800만원이 필요했다. 오빠가 은행에서 수표를 끊어왔다. 아날로그 끝판왕인 우리 회사에서도 몇년전부터는 성과급을 수표 대신 계좌에 꽂아준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법원 행정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잔말 않기로 한다.  


법원은 약 4년만이다. 들어가자마자 안내판에 '경매계 2층'이라고 써있어서 당당히 올라갔다. 하지만 경매계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조용했다. 입찰은 어디서 하나요? 경매 법정은 1층에 있습니다. 법원에 오면서도 경매가 법정에서 이뤄질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경매 법정에는 판사님이 있고, 집행관이 4명 정도 있었다. 법정 경위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매 참여자가 법정 안에만 100명 넘게 있었다. 밖에도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들어서기도 전에 그 후끈후끈한 열기에 밀려나는 듯했다. 이사람들이 다 우리(!) 아파트를 노리고 온 것인가, 사람들이 들고있는 누런 입찰봉투는 어디서 받는건가, 서류는 누구한테 내야 하나, 나는 점점 얼이 빠졌다. 누가 봐도 부동산에서 나오신 모피 조끼를 입은 어머님이 "저 앞에 가운데 있는 집행관한테 서류 받아서 왼쪽 책상에서 작성한 뒤 투명한 함에 넣으면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보통 영화 속에 나오는 유명한 그림 옥션...만을 상상했던 내게는 아파트 경매 현장이 생소했다. 우선 입찰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입찰가는 미리 상의해서 결정해왔다. 우리가 혹했던 최저 매각 가격을 적어 내서는 택도 없다는 사실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가장 비싼 값을 부른 사람에게 낙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세에 비해 충분히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당장 자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가격이어야 했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책상은 투표할 때 들어가는 기표소처럼 흰 천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가격을 알 수 없다. 서류는 총 4장을 적어 내야 했다. 공동명의 입찰인데 한명은 참석하지 않아 대리로 입찰하기 때문에, 단독 입찰하거나 공동명의자가 둘다 참석하는 것과는 적어 넣을 내용이 달랐다. 왜 이렇게 채워야할 빈칸은 많고 찍어야할 도장이 많은지,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다. 내가 작성한 내용이 맞는지 사진을 찍어 오빠에게 보냈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고 도장을 잔뜩 찍고 스테이플러로 누런 봉투를 봉했다. 작은 천막 안에서 호흡이 곤란해지고 땀이 났다. 판사님이 "마감 시간까지 5분 남았습니다" 했을 때 입찰함에 우리 봉투를 넣었다. 내가 마지막 서류 제출자였다. 


실수는 금물 

서류를 내고 나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와 주변을 살폈다. 이날 경매법정 101호에서 처리되는 경매건은 약 20건, 입찰자가 없는 물건이 대부분이고 1명이라도 입찰한 게 9건이었다. 아파트 말고도 상가나 자동차 경매건도 있었다. 어떤 남자가 150만원에 중고 자동차를 하나 낙찰 받아갔다.  우리가 입찰한 아파트에는 우리 말고도 20명의 입찰자가 더 있었다. 입찰 경쟁률은 21대1이었지만, 다른 경매건이 많았고, 공동입찰자나 가족, 친구가 따라오기도 하고, 경매업자와 부동산 업자들까지 몰려 법정이 꽉 찬 것이었다. 


이어진 장면들은 나름 긴장되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집행관들이 입찰함에서 서류를 다 꺼내서 사건 번호별로 분류한다. 우리(!) 아파트는 5번째 순서였다. 판사님이 근엄하게 사건번호 2018-XX-XXX  입찰하신 분들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입찰자들이 우루루 나가서 선다. 왜 나가서 서야하는가. 그러면 집행관들이 또 서류를 모두 개봉한뒤 입찰가가 높은 순서대로 나열한다. 판사님이 다시 엄정하게 말한다. "사건번호 2018-XX-XXX. 최고 입찰가를 적어내신 분은 김00씨, 6억8320만원입니다. 서류 확인하겠습니다." 이름을 불린 김00님이 들뜬 표정으로 판사님 앞으로 가서 무슨 종이를 내민다. "인감 증명서인데, 아까 봉투에 안넣었어요" 한다. 판사님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인감 증명서는 아까 서류를 제출할때 같이 입찰 봉투에 넣고 봉했어야 합니다. 서류 부적합으로 무효화됐습니다. 이의 신청하시겠습니까?"한다. 아뿔싸! 무효라니! 아 재미있다! 


김00씨의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달려나온다. "이의 신청하겠습니다. 보증금 안찾아가겠습니다!!" 김00 아주머니는 얼굴이 빨개졌다. 저러다 울면 어쩌지.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큰 소리로 말한다. "아니 이미 무효화된거 아닙니까. 서류는 기본인데...." 그러자 판사님이 받는다. "이의 신청할 권리는 있는거고요, 일단 무효가 맞습니다. 차순위로 높은 가격을 적어 내신 분은 '000부동산컨설팅'외 2명입니다. 6억 8215만원에 입찰했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 불만을 표시했던 아저씨가, 우렁차게 네! 하고 나선다. 경매를 전문으로 하는 법인이었나보다. 이 아저씨는 서류를 똑바로 냈고, 2018-XX-XXX건 경매는 마무리 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장렬히(당연히) 패찰했다. 집행관이 호명하는 순서에 따라, 입찰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다음 순서 경매가 진행된다. 보증금 봉투를 가방 안쪽에 깊숙이 넣고 법정을 나선다. 아까 1순위로 썼다가 서류를 잘못낸 아줌마가 남편한테 혼나고 있다. 아니 그렇게 중요하면 지가 잘 봤어야지? 왜 큰소리람. 오른쪽에는 2순위로 낙찰에 성공한 법인 아저씨가 싱글벙글이다. 같이 온 사람들과 앞으로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6억8000만원이면 시세에 거의 가깝다. 명도까지 남은 여러 과정과 비용을 생각하면, 이문이 남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다음 약속이 사당에서 있는데, 수표를 들고 다니는 것이 못내 불안해서 근처 은행에 가서 40분을 기다려 남자친구 계좌로 입금했다. 은행원은 "송금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제가 경매를 하려고, 이게 입찰 보증금인데, 방금 했는데 떨어져서(패찰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났다) 다시 집어넣어야 하는데요. 남자친구 계좌에서 뽑은거라서...... "네 알겠습니다. 보이스피싱이 많아서 확인차 여쭸습니다." 은행원은 사무적으로 답했다. 우씨 어쩐지 찌질하게 말한것 같다. 아침부터 괜히 쫄아가지고!


**결국 집주인은 빚 문제를 해결했고, 부동산에 집을 매매로 내놨다. 경매 잔금을 치르기 전이어서 낙찰은 취소되었다. 내가 낙찰받은 것도 아니지만, 나도 법원까지 택시타고 다녀오는 수고를 치렀기 때문인지 어쩐지 심통이 난다. 해결할거면 진작 해결하시지, 왜 헛된 기대를 품고 입찰 보증금을 뽑아 시간을 내어 입찰까지 하게 만드는 것인가. 아무튼 어서 집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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