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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Jan 10. 2020

23. 모과나무 집

A. 23


quincetree house




모과나무 집

청송 주택


©Samganilmok



    



청송 가는 길, 부모님을 위한 집


함안 조 씨의 종택이 있는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지어진 모과나무집은 아끼던 후배의 부모님을 위한 집이다. 가까운 지인의 집을 짓는 일은 처음이라서 흔쾌히 맡아서 진행을 했지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후배와의 추억과 신뢰는 가장 큰 원동력과 가능성 그리고 보람이 되었다.

 늦가을 서울에서 약 네 시간 거리에 있는 청송은 해발고도가 높고 첩첩산중이지만 내려가는 길 내내 나는 오랜만에 자연의 풍광에 흠뻑 빠졌었다. 현장에서 후배와 만나서 함께 종택이 있는 땅을 살펴보고는 어르신들이 살고 계시는 과수원으로 갔다.

 30년 전까지는 종택에서 거주하셨고 후배도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는데. 사정상 노후화된 한옥을 뒤로하고 당시에는 사과 농사를 위해 과수원 근처에서 거주하고 계셨다. 그리고 오랜 고심 끝에 이제는 이곳을 처분하고 30년이 넘도록 방치된 종택 옆으로 새집을 짓고, 다시 예전 마을로 돌아오시기로 마음먹으셨다고 하셨다.           


©Samganilmok



“알아서 잘 지어 주시게~”     


 아들의 선배가 내려왔다고, 집에서 잡은 토종닭으로 한상 백숙을 내어 오시는 어머님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시골의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식사 후 집에 관해서 내가 준비한 그동안의 사무실 작업들 보여드리면서 후배와 후배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집을 짓 더 라도 종가라서 손님들이 자주 오고, 제사도 자주 있으니 거실이 좀 넓어야 하고,  시골이라 냄새가 많이 나는 요리와 음식도 많고 해서 독립된 주방 식당 공간이 필요한 점 그리고 장성한 아들과 딸네가 놀러 오면 지낼 수 있는 공간 정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전부셨다. 그리고 중요한 가용예산도 함께 말씀해 주셨다.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지만 합리적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위주로 집중하면서 적절히 구성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았다. 

 헤어질 때는 부모님께서는 자식과 같은 나에게 웃으시며 “알아서 잘 지어주시게~”라며 손을 잡으셨다. 급하게 따주신 사과를 한 아름 안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말씀은 그저 잘 지어 달라고, 믿고 맡기니 알아서 잘 지어달라고 하셨지만 사실 젊은 사람들과의 집 짓기와는 달리 자주 뵙고 상의드리기도 어렵고, 세세하게 말씀을 많이 하시지도 않으시기에 오히려 부담은 더욱 크다. 몇 가지 필요한 것 이외에는 튼튼하고, 따뜻하게 지어달라는 막연하지만 근본적인 이야기뿐 이시다. 그래서 좀 더 정직해지고 또 그만큼 더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Samganilmok



“우리가 보면 뭘 아나?”     


 현장을 방문한 뒤 두어 달 시간이 지나고 기본계획을 완성한 후 다시 청송으로 내려가서 어르신들을 뵈었다. 정성껏 계획한 도면과 모형을 보여 드리며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렸다. 다행히 어르신들은 기본계획안을 아주 흡족해하셨다. “우리가 보면 뭘 아나?” 하시면서도 도면과 모형을 이리저리 살펴보시고는 몇 가지 시골생활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잘 말씀해주셔서 계획안을 발전시키고 구체화해나갈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잘 모른다 말씀하시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상당히 구체적이고 집에 관한 오랜 경험과 혜안을 느낄 수 있었다.     



©Samganilmok - 현관에서 거실 쪽을 바라본 모습




전통공간의 재해석과 재구성      


 모과나무 집은 전통공간의 구성 틀을 기본으로 하였다. 설계를 시작하기 전 살펴보았던 종택의 공간과 그간 삼간일목에서 작업해왔던 작업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아파트 공간과는 달리 전체 공간이 일렬로 구성되어 있고, 그 선상에서 2층이 연결되어 있다. 안방/거실 공간, 분리된 주방/식당 공간 그리고 별채와 같이 화장실/침실/작은 거실로 구성된 2층 독립 공간으로 크게 3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공간은 독립적이면서도 수평적, 수직적으로 연계를 이룬다. 

 이는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부엌 그리고 건넛방으로 구성된 전통공간의 기본 구성과 유사하며 공간적으로는 이러한 구성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새롭게 구성하는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전통건축에서 대청의 공간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 천정으로 천정고가 높고, 앞뒤로 외부공간과 시각적, 공간적으로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모과나무 집에서 현관에서 좌측으로 연결된 거실 공간은 경사지붕을 그대로 노출하고, 2층 계단을 포함한 2층과의 연계로 높고 시원한 공간을 형성한다. 이로서 안방과 거실은 독립적인 기능이 가능한 2층 공간과 수직적 공간적으로 연결되며 현관 바로 우측에 위치한 주방과 식당은 수평적으로 연결되지만 별도의 문을 달아서 필요에 따라 독립적인 공간으로 분리가 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주방과 식당은 사실 어머님의 작은 집인 샘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열린 거실과 식당 공간이 좌우측으로 나뉘어 있고, 독립적인 오브제로 보이는 계단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동선과 기능이 구분된다. 계단의 후면에 구성된 복도는 거실과 서비스 공간을 구분하면서 회유 동선을 이루고 있어 1층 화장실과 세탁실을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하였고 이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후원의 작은 테라스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였다.     

 2층은 화장실/침실/작은 거실로 구성되어 하나의 독립된 별채의 역할을 하면서도 복도와 작은 거실에서는 1층 거실과의 시각적 연결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또한  2층 작은 거실의 아치창으로는 명당리의 마을과 산들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1F

    

2F
section
south elevation





세 개의 마당과 집의 형태      

 

세 개의 큰 영영으로 구성된 내부 공간은 세 개의 주요 외부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진입공간과 현관 그리고 거실에서 연결된 앞마당, 주방과 다용도실에서 연결된 다양한 쓰임새의 후정 그리고 1층 복도 뒤로 나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뒷산과 연결된 작은 테라스와 후원이 있다.     

이러한 공간 구성과 장소를 반영하듯 전체적인 건축의 형태는 대지의 형상과 진입 그리고 마을을 내다보는 풍광에 맞추어 마을 끝자락에서, 뒷산을 배경으로 두 개의 볼륨이 45도 각도로 접속되어 마당을 살짝 안아주듯 사람을 맞이한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뛰면서도 3개의 주요 공간이 형태적으로도 드러나 보일 수 있도록 집의 형태와 재료를 구성하였다.   


©Samganilmok - 거실에서 현관-주방 쪽을 본모습




©Samganilmok - 1층 식당-주방의 모습-1




©Samganilmok - 1층 식당-주방의 모습-2

        



©Samganilmok -  1층 계단과 복도 모습_오브제 같은 계단 공간이 거실-욕실-후정으로 이르는 동선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Samganilmok - 거실에서 마당을 바라본 모습




©Samganilmok - 1층 안방의 모습




©Samganilmok - 거실에서 2층부와 마당을 함께 본모습




©Samganilmok - 거실 모습_천창과 후정




©Samganilmok - 거실 모습_천장에서 떨어지는 빛은 벽에 그림을 그린다




©Samganilmok - 거실에서 2층부를 본모습




©Samganilmok - 계단에서 거실의 중심부를 본모습




©Samganilmok - 2층 계단 끝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Samganilmok - 2층 계단 끝에 이르면 뒷산의 녹음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Samganilmok - 2층 욕실 모습





©Samganilmok - 2층 작은방의  모습_바로 옆에 응접실과 공간이 연계된다





©Samganilmok - 2층 응접실의 모습. 마을의 전경과 거실과 통하는 창을 통해 다양한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





모과나무와 집     


수령이 300년도 훨씬 넘었다는 모과나무는 오랜 세월 이곳에서 종택과 마을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몇 해 전 수천만 원에 매입의사를 제시했었던 조경업자가 있었지만 아버님은 이 나무만은 양보하지 않으셨다 한다. 새 집을 짓고 난 후 새집과 옆집 담 사이에 놓여 있던 이 모과나무를 마당 가운데로 옮겨 심으셨다. 완공 후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집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가족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참 뒤 마당을 보니 이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의 가지가 전지 되어 이제 겨우 조금 싹이 나기 시작한 모과나무 옆에 의자 하나를 두시고 쉬고 계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하다. 그날 어르신들께 당호는 뭘 로 하면 좋을까요? 여쭤보면서 모과나무 집이 어떨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좋다.”하셨다.     


©Samganilmok


내년 봄에는 300살이 넘은 모과나무에서 모과 꽃이 마당 한가득 피어날 것이고 가지와 잎도 무성해질 것이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모과향이 은은히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줄 것이다. 늘 향기로운 집이었으면 좋겠다.     


                                                                                                                         - 권현효-




책임건축가 :  권현효

책임디자이너 : 김정명

건물위치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용 도 : 단독주택

대지면적 : 2,119 ㎡

건축면적 : 100.54 m2

연면적 : 152.7 ㎡( 46.2평)

규   모 : 지상2층

건폐율 : 27.39%

용적률 : 28.78%

구 조 : 경량목구조

외장마감재 : 세라믹 사이딩, 벽돌타일, 스터코, 로이삼중유리

완공연도 :  2019.06.



20200110


Samganilm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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