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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Feb 19. 2020

15. 열다섯 번째 편지

건축심문 #15

L. 15


to house



열다섯 번째 편지

#15



우수(雨水)에 편지를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어느덧 겨울이 떠나려고 하네요... 입춘이 지나니, 차가운 바람결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서 왠지 모를 봄의 따뜻함을 벌써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봄의 축제가 곧 시작되겠지요? 땅 밑에서, 그리고 햇살 속에서는 한창 준비 위원회와 스텝들이 벌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겠지요? 또 새로운 한 해, 새로운 봄을 맞이할 이저우 집 식구들의 일상에도 변화가 시작되겠지요? 올봄에는 저도 좀 더 많이 느껴보고 싶습니다.  



 

“만약 효형과 가족들 살 집을 직접 설계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건축가에게 맡겨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 생각인가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반드시 건축가 1명을 선택해주시고, 그 이유도 알려주세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중히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좀 고생하셨겠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답변이어서 제 스스로는 이번 질문은 잘 되었다 싶습니다.     

 

그리고 끝에 다시 돌아온 질문에 ‘쾅~’ 하고 한 대 맞았습니다

내가 이런 질문을 받다니~~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으로 고마운 질문이 되었습니다.    

 

건축가는 늘 언젠가 자기 집을 자신의 온전한 마음으로 지어보길 꿈꾸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꿈이 많은 건축학도들의 이상일지 도 모릅니다. 

가끔씩 저도 건축가인데... 나만의 집을 지어볼까? 생각하곤 합니다. 다만 아직은 현재의 집터와 일터에서는 요원한 일이라서 나중에 도심 외곽에서 살게 된다면 이렇게 지어 보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곤 했습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은 늘 부족한 예산(재산)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던 같습니다. 사람들의 집을 설계해주는 것이 천직이나, 자신의 집은 늘 뒷전인 것도 맞고요...     

 

그러나 한 번도 내가 내손으로 설계하고, 감리할 생각을 외면해 본 일은 없었는데. 이런 질문을 받으니 ‘아차!’ 하는 생각과 ‘아... 그럴 수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아는 건축가가 집을 지었는데. 지인 건축가에게 맡겼습니다. 대단하단 생각을 했고, 또 그 지인 건축가는 참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지인 건축가는 제 친구였죠... 그런데 결과는 좋았습니다. 다만 그 집은 서로 다른 세 가족의 공동의 집이어서, 건축주의 한 사람인 건축가는 스스로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 놓이고자 했던 배경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한 번도 나의 집, 우리 가족의 집을, 내가 살아갈 집을 누군가에게 맡겨 볼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혹 그래야는 상황과, 또 내가 건축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설계비에서 좀 자유롭다는 가정하에) 누가 좋을까? 한참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선뜻 한 명의 건축가를 정하기에는 너무도 어렵고, 잘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집을 짓게 된다면 아마도 건축을 전공하고, 한때 설계 사무소에서 일했던, 아내가 맡아서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국내, 국외 제가 아는 건축가들과 작품들을 떠 올려보다가 내가 살집인데... 하고 다시 생각의 생각을 하기도 했고, 건축가보다는 잡지책이나, 작품집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또는 취향이나 방향이 묻어 있는 작품을 보고 그 작품을 설계한 건축가를 정할까? 하고 여러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건축주들, 그리고 집을 짓고 자 하는 수많은 예비건축주 들을 어떻게 건축가를 선정할까? 저 스스로 건축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참 만만치 않은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가의 건축가란?....    

 

질문을 생각하지 2주가 다 되어서야 겨우 답을 적어 봅니다.

건축가가 건축가를 선정하려면,,, 우선은 건축가의 입장이니깐, 건축에 대한 생각과 결이 맞는 건축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제가 정한 건축가는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건축가 우규승 선생님입니다. 


아마도 올해 80세쯤 되셨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의 작품은 대표적으로 환기미술관과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이 있습니다. 

이유는 늘 존경하는 건축가이기도 합니다만. 공간에 품격이 있고, 균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솔한 새로움이 있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작품과 그분의 성품과 인품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학적인이 미사여구나, 거창한 철학적인 배경으로 포장하는 일 없이도 보편적인 가치와 의미를 생생하게 구현해 내시는 뛰어난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는 아주 작은 건물이나 대규모의 공공건물이거나 저는 늘 똑같이 최선을 다하고, 똑같은 의미를 둔다 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제가 존경하는 건축가에게 저의 집을 맡기고 싶습니다만...... 그러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반전?)     


사실 그 이유는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너무나도 부족한 제가 건축주로서도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제가 그분께 설계를 의뢰하는 일이 결례 일 수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인격적으로나 사람으로서 미숙한 상태에서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건축가에게 맡기면 오히려 대등한 관계의 거리감을 잃을 수도 있고, 소통에 있어 편안함보다는 부담감이 커질 것 같아요. 

그리고 저와 저의 삶을 충분히 파악하시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요.. 결론적으로 제가 그에 맞는 준비가 덜되었기 때문 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건축가를 찾아봅니다.


과연.... 누가 나의 집을 설계해주면 좋을까? 주변의 친구들이나 친한 건축가들 그리고 요즘 좋은 작업을 많이 하는 건축가들을 떠올려보다가. 갑자기 번뜩하고 떠올랐습니다. 


정답은 저희 사무실 막내 직원입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삼간일목에 입사해서 이제 건축 실무를 시작한지 약 7개월 정도 된 신입사원입니다. 

앞으로 몇 년을 같이 일할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같이 작업을 하면서, 건축이야기도 많이 하고, 사람으로서도 충분히 마음을 나누게 된다면... 


그 직원이 때가 되어 독립을 하거나, 삼간일목 디자인 소장인 된다면 

건축가로서의 첫 프로젝트로 저의 집을 설계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때가 된다면... 필요한 공간과 중요한 방향 몇 가지만 제시하고, 전적으로 맡기고 싶습니다. 

할머니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직원, 아직 하얀 도화지에 무궁 구진 그려나갈 수 있는 새싹과 같은 직원, 같이 일하며 같이 성장하면서 건강하고 진지한 좋은 건축가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직원....

사실 얼마 전 점심 식사 중에 말을 꺼내 보았지요..ㅋㅋ 


“나중에 내 집 설계해줄래?” 

“... 하하하”

“네~ 많이 주세요~”


나름 예약을 한 샘인데.. 그러려면 지금부터 같이 좋은 작업을 하고, 많이 이야기하고, 잘 지내야겠지요? 돈도 좀 벌어야 하고..ㅋㅋ 무엇보다 좋은 건축을 함께 하고 조금이나마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저 스스로도 배우고 실천하는 마음가짐과 태도 그리고 자세가 훗 날 나의 집의 설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예비 과정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직원과 같이 작업 중 인 이천 패시브하우스


이번 질문의 답을 쓰면서  이번 질문의 답변을 저 나름대로 찾아서 기쁩니다. 그리고 건축주의 입장에서 고민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보내드릴 저의 질문은 인테리어나 실내 마감 재료에 관한 것입니다.    

 



“실내(바닥, 천정, 벽) 인테리어 마감재료 –벽지, 페인트, 타일, 내부 도어, 가구(주방 및 기타 가구), 조명 등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인테리어 마감 재료의 우선순위를 말씀해주세요~ 혹은 예산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을 줄이더라도 꼭 이것만은 하고 싶다거나, 이저우에 사시면서 가장 잘 선택한 재료를 말씀 주셔도 좋아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봄소식과 함께 돌아올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ps) 이집에서 지낸 지난 2박3일의 시간에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2020.02.19


권현효


삼간일목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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