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대한 실험과 AI 인프라의 미래
인공지능이 경제와 사회 전반을 재편하는 시대, 전력은 단순한 유틸리티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원으로 부상했습니다. 데이터센터와 AI 컴퓨팅이 소비하는 전력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각국 정부는 에너지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AI 인프라의 지리적 집중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불평등을 야기하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전통적 정책 과제와 맞물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동수서산(東數西算)' 정책은 AI 시대 전력 정책의 가장 야심찬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2년 전면 가동된 이 정책은 동부의 데이터를 서부에서 처리한다는 의미로, 전국을 하나의 거대한 컴퓨팅 그리드로 연결하려는 국가적 프로젝트입니다.
동수서산은 단순한 인프라 재배치를 넘어, "컴퓨팅이 전력을 따라간다"는 '산전 협동(算电协同)' 철학을 바탕으로 AI 시대의 에너지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려는 시도입니다. 더 나아가 이는 AI 인프라를 통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정책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수서산이 지역균형발전에 미친 가장 극적인 사례는 구이저우성의 변화입니다. 과거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성 중 하나였던 구이저우는 이제 중국 최초의 국가 빅데이터 종합시험구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집적지 중 하나로 탈바꿈했습니다.
구이저우의 디지털 경제 성장률은 9년 연속 중국 전체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했습니다. 2023년에는 성 GDP에서 디지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42%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농업·광업 중심 경제에서 첨단 디지털 경제로의 완전한 구조 전환을 의미합니다.
2023년 구이저우성의 소프트웨어 및 IT 서비스 산업 매출은 20.7% 증가했으며, 핵심 산업인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은 24.9%나 성장했습니다. 화웨이 구이안 데이터센터 하나만으로도 '1000억 위안급' 빅데이터 기업으로 평가받으며 지역 경제의 강력한 앵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인재 유출의 대표 지역이었던 구이저우에 이제는 전국에서 AI·빅데이터 전문가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운영, 클라우드 서비스, AI 개발 등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대거 창출되면서 지역의 인적 자본 구조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구이저우는 2025년까지 80만 개의 서버 랙과 400만 대의 서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대규모 국책 사업을 발표하고 세금 감면 등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자, 민간 기업들이 이 보장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투자를 집중했고, 그 결과 특정 지역에 특정 산업 생태계가 단기간에 형성되었습니다.
동수서산 정책의 가장 혁명적인 측면은 전력과 컴퓨팅의 관계에 대한 사고의 전환입니다. 전통적인 전력 정책은 '서전동송(西電東送)' 모델을 따랐습니다. 서부에서 생산된 전력을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동부의 수요지로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수서산은 이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전력을 옮기는 대신,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컴퓨팅 작업 자체를 전력 생산지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법의 핵심은 데이터센터의 특성에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전체 운영비용에서 전기료가 40-50%를 차지하는 '전기 먹는 하마'입니다. 특히 AI 모델 훈련과 같은 대규모 컴퓨팅 작업은 수개월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전기료 차이가 운영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합니다. 따라서 전기료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만으로도 운영비를 30-40% 절감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효율성의 극대화입니다. 장거리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은 보통 5-10%에 달합니다. 1,500km 거리의 초고압 송전망도 약 3-5%의 손실이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컴퓨팅 작업을 전력 생산지로 이동시키면 이러한 손실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 국가 전체의 에너지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동수서산의 가장 정교한 설계는 '동열서냉(東熱西冷)' 분업 체계입니다. 이는 네트워크 지연시간(latency)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역으로 활용한 혁신적 접근입니다. 빛의 속도라는 절대적 한계 때문에, 베이징-구이저우 간 1,500km 거리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10밀리초의 물리적 지연이 발생합니다. 동수서산은 이 제약을 문제가 아닌 기회로 전환했습니다.
동부 허브의 '핫 데이터' 처리
징진지, 창장삼각주, 웨강아오, 청위 등 동부 4개 허브는 엔드 투 엔드 단방향 네트워크 지연속도 20밀리초 이내의 실시간 응답이 필요한 '핫 데이터'를 담당합니다.
이 지역들은 데이터 사용자 규모가 비교적 커서 응용과 노드에 대한 수요가 방대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산업 인터넷, 금융증권, 재해경보, 원격의료, 화상통화, AI 추론(inference) 등 실시간 데이터 교환형 업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주식거래에서 1밀리초 지연이 수백만 달러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자율주행 차량의 긴급 제동 신호나 원격 수술의 실시간 제어 신호는 몇 밀리초의 지연도 생명과 직결될 수 있어, 이런 업무는 반드시 수요지 인근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도시 내부 데이터센터의 초고속 처리
더 나아가 동부 대도시 내부에는 10밀리초 이내의 초고속 응답이 필요한 '엣지 컴퓨팅' 거점들이 별도로 배치됩니다. 이들은 금융시장의 방대한 거래량, 가상현실/증강현실(VR/AR), 초고화질 동영상, 커넥티드카, 커넥티드 드론, 스마트 전력,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보안 등 극도의 실시간성이 요구되는 업무를 담당합니다.
서부 허브의 '콜드 데이터' 처리
구이저우, 네이멍구, 간쑤, 닝샤 등 서부 4개 허브는 지연시간에 덜 민감한 '콜드 데이터'를 처리합니다. 이 지역들은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기후가 적당하여 친환경형 노드의 발전 잠재력이 크다는 지리적 우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부 허브는 백그라운드 가공, 오프라인 분석, 저장용량 등 비실시간 데이터 처리 수요를 우선적으로 수용합니다. 대규모 AI 모델 훈련, 데이터 백업, 과학 연구용 시뮬레이션, 대용량 데이터 마이닝, 장기 보관용 아카이브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며칠에서 몇 주에 걸쳐 진행되므로 몇십 밀리초의 추가 지연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저렴한 전력 비용이 핵심 경쟁력이 됩니다.
3층 구조의 정교한 위계
결과적으로 동수서산은 ①도시 내부 초고속 엣지(10ms 이내) ②동부 클러스터 실시간 처리(20ms 이내) ③서부 클러스터 대용량 배치 처리(지연 무관)라는 3층 구조의 정교한 컴퓨팅 위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각 업무의 특성에 따라 최적의 위치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국가 규모의 컴퓨팅 최적화 시스템입니다.
'산전 협동(算电协同)'은 단순한 물리적 배치를 넘어서는 철학적 전환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컴퓨팅 파워를 전기와 같은 공공재로 인식하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최적 배치한다는 개념입니다. 과거 전력, 수자원, 교통 인프라를 국가가 통합 계획했듯이, 이제는 컴퓨팅 자원도 국가적 관점에서 배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최적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개별 기업들은 단기적 비용 절감에 집중하지만, 국가는 장기적 에너지 안보, 지역균형발전, 환경 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산전 협동'은 바로 이러한 거시적 최적화를 추구하는 철학입니다.
그러나 동수서산의 성과 이면에는 심각한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녹색 브랜딩'과 '탄소 현실' 사이의 괴리입니다.
동수서산은 서부 지역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녹색 데이터센터' 구축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중국 전력망의 60% 이상이 여전히 석탄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동부 데이터센터 전력의 70% 이상이 석탄에서 공급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데이터센터의 24시간 안정적 전력 수요입니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간헐적 특성으로 인해 데이터센터의 연속 운영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리드 안정성을 위해 석탄 기반 기저발전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녹색 역설'이 발생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2027년까지 두 배로 증가하여 2030년에는 최대 600TWh에 달하고 약 2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는 동수서산이 표방하는 '녹색 전환'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에너지 문제만큼 심각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것이 물 소비 문제입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냉각을 위해 막대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동수서산의 서부 허브인 네이멍구, 간쑤, 닝샤 등은 중국에서 가장 건조하고 물 스트레스가 높은 지역들입니다.
이미 베이징, 닝샤, 간쑤 등 일부 지역에서는 물과 전력 효율이 낮은 데이터센터를 퇴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 부족이 데이터센터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제약 요인임을 보여줍니다.
2024년 6월 기준 8대 허브의 서버 상가율(실제 가동 비율)은 63%에 그쳤습니다. 목표치인 65% 이상에 근접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유휴 용량이 존재합니다. 이는 '일단 지어놓으면 수요는 따라올 것'이라는 공급 위주 정책의 잠재적 위험을 시사합니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정치적으로 결정된 입지가 경제적 효율성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프라 구축 속도만큼이나 이를 채울 수 있는 실질적인 수요 창출이 향후 프로젝트 성공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동수서산은 AI 시대 전력 정책과 지역균형발전을 연결한 혁신적인 정책 실험입니다. '산전 협동' 철학을 통해 컴퓨팅과 전력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AI 인프라를 지역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구이저우성의 극적인 변화는 AI 인프라가 낙후 지역에 미칠 수 있는 변혁적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제조업 유치와는 다른 차원의 고부가가치 성장이 가능함을 입증했고, 디지털 시대의 지역정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녹색 역설'과 물 부족 문제는 이러한 정책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기술적 효율성과 지역발전 효과만으로는 진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AI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기술로 부상하는 시점에서, 동수서산의 성과와 한계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입니다. 기술 혁신과 지역균형발전, 환경 보호라는 삼중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더욱 정교하고 지속가능한 정책 모델을 설계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