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데이터국(NDB)이 그리는 AI 패권 전략
2023년 3월, 중국이 '국가데이터국'이라는 새로운 정부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행정개편이 아닌, AI 시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적 선택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2023년 3월, 중국 전인대에서 당·국가 기관개편안이 통과되자마자 국가데이터국(国家数据局·NDB) 간판이 걸렸습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데이터 - 산력(컴퓨팅 파워) - 알고리즘의 'AI 삼각 고리'를 국가 차원에서 통제하고 조정하겠다는 강력한 선언이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1026058300083
왜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하지 않은 '데이터 전담 정부기관'을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국무원과 사이버공간판공실(CAC)이 "빅데이터 전략"을 연속으로 발표하자, 각 부처와 성(省)마다 '빅데이터국'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각자 다른 기준으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공업정보화부(MIIT)는 산업 데이터에 집중했고, 과학기술부(MOST)는 연구개발 데이터에 주력했습니다. 사이버공간판공실(CAC)은 네트워크 보안에 매진했고,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거시 정책에 집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데이터 표준도, 품질 기준도, 안보 규정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부서들이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것과 같았죠.
국가데이터국은 이런 파편화된 데이터 정책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2024년 공식 업무를 시작하면서 종합과(전체 정책 조정), 정책과(데이터 관련 법령 제정), 데이터자원과(공공·산업 데이터 통합), 디지털경제과(데이터 시장 설계), 디지털기술기반과(데이터센터·AI 인프라) 등 5개 부서를 설치했습니다.
중국 '국가국'은 한국의 '청'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중국의 행정체계를 한국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국무원 부(部)·위원회(委)는 한국의 부(部)와 비슷한 장관급이고, 국무원 직속기관은 한국의 인사혁신처 같은 차관에서 장관급까지의 총리·대통령 직속 기관입니다. 그리고 국가데이터국과 같은 부처관리 국가국(国家局)은 한국의 관세청이나 산림청 외청과 유사한 기관입니다. 그렇다면 상위 부처가 관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2023년 최신 개정된 중국 국무원 근무규칙에 따르면, "국무원 각 부, 위원회, 중국인민은행 및 국무원 국가감사원은 장관, 국장, 원장 및 감사원 책임제도를 시행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국가데이터국도 NDRC 산하에 있으면서도 국장 책임제를 통해 상당한 독립성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2023년 규칙에서 주목할 점은 부처 간 권한 분배와 협력 체계가 더욱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각 부서가 국무원에 보송하는 청시성 공문에서, 다른 부서 직권과 관련된 것은 주동적으로 관련 부서와 충분히 협상하고, 주관 부서 주요 책임자와 관련 부서 책임자가 회서하거나 연합하여 국무원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즉, 국가데이터국이 다른 부처와 관련된 정책을 추진할 때는 반드시 해당 부처와 협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중요한 제약은 "국무원의 허가 없이 국무원 부서는 성(省) 정부에 지시문서를 발행하거나 공식 문서로 성(省) 정부에 지시 요청을 할 수 없다"는 조항입니다. 이는 국가데이터국이 아무리 '국가' 명칭을 갖고 있어도, 지방정부에 직접 명령을 내릴 수는 없고 반드시 국무원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NDRC라는 상위 부처의 조정 하에서만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동수서산(東數西算)'은 "동쪽의 데이터를 서쪽에서 계산한다"는 뜻으로, 중국판 '데이터센터 대이동' 프로젝트입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데이터가 많이 생성되는 동부 대도시의 정보를 전력이 풍부하고 토지가 저렴한 서부 내륙으로 보내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국가데이터국은 京津冀(베이징-텐진-허베이), 长三角(상하이 주변), 粤港澳(광동-홍콩-마카오), 成渝(청두-충칭)의 동부 4개 지역과 内蒙古(내몽골), 甘肃(간쑤), 宁夏(닝샤), 贵州(구이저우)의 서부 4개 지역을 '계산력 허브'로 선정했습니다. 2025년 6월까지 165만 표준 랙이 가동될 예정이며, 이는 국가데이터국이 계획-투자승인-성과평가 3권을 독점하며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AI 학습용 데이터와 연산 인프라를 국가가 직접 설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 자율주행, 금융 등 14개 분야의 '골드 스탠다드 데이터세트'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A에서 D까지의 라벨링 품질 등급제를 도입하여 정부조달에는 'A·B 등급' 사용을 의무화했습니다. 또한 생성형 AI 서비스의 학습 데이터 합법성 검증도 담당하고 있어, 데이터부터 AI 서비스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국가데이터국이 다른 부처가 아닌 NDRC(국가발전개혁위원회) 소속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다른 후보 부처들이 왜 적합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공업정보화부(MIIT)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MIIT는 중국의 IT 산업을 총괄하는 부처로, 5G, 인터넷, 소프트웨어 산업 등을 관장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데이터 정책에 가장 적합해 보입니다. 하지만 MIIT의 관점은 주로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즉, "어떻게 더 좋은 기술을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데이터를 경제 전체의 생산요소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거시적 관점은 부족했습니다.
과학기술부(MOST) 역시 비슷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MOST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R&D 투자를 담당하는 부처입니다. AI 알고리즘 연구나 데이터 사이언스 기술 개발에는 전문성이 있지만, 전국 규모의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나 데이터 시장 설계 같은 '시스템 엔지니어링'에는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MOST는 주로 대학과 연구소를 상대하는 부처라, 기업이나 지방정부와의 대규모 협력 프로젝트를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이버공간판공실(CAC)은 어떨까요? CAC는 인터넷 규제와 사이버 보안을 담당하는 강력한 기관입니다. 하지만 CAC의 DNA는 '통제와 규제'에 있습니다. 데이터의 안전한 관리와 사이버 보안에는 전문성이 있지만,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발전' 업무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CAC는 다른 부처들로부터 '규제 기관'으로 인식되어, 협력보다는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NDRC만이 가진 독특한 위치와 능력
반면 NDRC는 중국에서 "小国务院(작은 국무원)"이라 불리는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거시경제 정책, 산업 정책, 투자 정책의 핵심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NDRC의 사고방식입니다. NDRC는 '개별 기술'이 아닌 '경제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데이터 정책의 특성상 이런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고, 데이터를 처리할 컴퓨팅 인프라가 있어야 하며, 그 인프라를 돌릴 전력이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할 투자와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즉, 데이터에서 투자로, 투자에서 인프라로, 인프라에서 산업으로 이어지는 전체 패키지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동수서산 프로젝트가 좋은 예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IT 사업이 아니라 저탄소 전력과 데이터센터를 결합하는 복합적 사업입니다. 서부 지역의 풍력·태양광 발전 인프라, 전력망 구축, 데이터센터 건설, 동부에서 서부로의 데이터 전송망 구축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에너지부, 공업정보화부, 교통부, 재정부 등 여러 부처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했습니다.
NDRC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시장 설계' 경험입니다. NDRC는 2000년대 초 중국의 전력 시장, 통신 시장, 석유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설계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력요금이나 통신요금을 어떻게 책정할지, 민간 기업과 국유기업 간의 경쟁을 어떻게 설계할지 등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데이터 시장도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데이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데이터 가공과 활용의 권리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 개인정보는 어떻게 보호하면서도 경제적 가치는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단순한 기술적 접근이 아닌, 제도 설계와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는 다른 부처들과의 관계입니다. 데이터 정책은 본질적으로 모든 부처의 업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육부의 교육 데이터, 보건부의 의료 데이터, 교통부의 교통 데이터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MIIT나 MOST가 이런 역할을 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른 부처들은 "왜 우리가 MIIT에 협조해야 하는가?"라고 반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NDRC는 다릅니다. NDRC는 이미 모든 부처의 예산 심의와 주요 정책 조정을 담당하고 있어, 다른 부처들도 NDRC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중국 정부는 국가데이터국을 NDRC 소속으로 두었던 것입니다. 기술 전문성보다는 시스템 조정 능력을, 개별 산업 육성보다는 경제 전체의 변화를 우선시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모델의 장점은 압도적인 실행력입니다. 데이터-산력-정책을 한 기관에서 통제하여 의사결정 속도가 크게 향상됩니다. 서부 내륙 발전, 에너지 전환, 동부 대도시 부담 완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고, 전국 단위 데이터 표준과 AI 품질 기준을 일원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도 있습니다. 차관급 기관임에도 과도한 권한을 갖게 되어 부처 충돌이나 지방 반발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데이터 국경이나 AI 라벨링 강제 규정이 글로벌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지나친 규제가 민간의 창의적 AI 개발을 제약할 우려도 있습니다.
중국의 국가데이터국은 단순한 행정개편이 아닙니다. "국가가 데이터 시장을 만들어 AI 혁신을 가속화"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실험입니다. 데이터를 생산요소로 선언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설계하며, 산력·에너지 인프라와 AI 규제를 연결하고, NDRC의 거시 조정력으로 부처·지방 칸막이를 무력화하는 삼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국·EU·미국도 디지털 주권과 개방성의 균형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시점입니다. 데이터가 곧 국력인 시대, 우리만의 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