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무료 에어컨이 돌아가는 AI데이터센터의 비밀
노르웨이 북부의 작은 항구도시 나르비크. 인구 2만 명, 겨울엔 두 달간 해가 뜨지 않는 곳입니다. 북위 68도로 이미 북극권 한복판입니다. 북극권이 시작되는 북위 66.5도를 훌쩍 넘어선 이곳은 서울에서 북쪽으로 4,500km 떨어진 지구 끝자락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정도 위도면 남극 대륙과 비슷한 선상으로, 펭귄이 사는 곳과 같은 위도에서 이제 GPU 10만 개가 돌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북극점까지 거리로 따지면 절반 지점에 도달한 곳으로, 말 그대로 지구의 꼭대기 근처에서 AI 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2025년 7월, 이곳이 전 세계 AI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OpenAI가 엔비디아 GPU 10만 개 규모의 거대한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801046600091?input=1195m
답은 간단합니다. 나르비크에는 AI가 가장 필요로 하는 세 가지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넘쳐나는 친환경 전력
둘째, 낮은 온도
셋째, 유럽이면서 유럽이 아닌 절묘한 위치
OpenAI는 단순히 데이터센터를 짓는 게 아닙니다. AI 시대의 새로운 룰을 만들고 있습니다.
AI 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이터들이 기업들의 전략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ChatGPT 같은 서비스 하나를 운영하려면 연간 수 TWh의 전력이 필요하며, 이는 중소도시 하나가 1년간 사용하는 전력량과 맞먹습니다. 초거대 AI 모델 하나를 학습시키는 데도 소도시 1년치 전력이 소모됩니다.
동시에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EU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55% 감축을 약속했고, 기업들은 ESG 보고서에서 전력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Scope 2)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경쟁력의 핵심은 단순히 더 좋은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얼마나 많은 친환경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OpenAI가 나르비크에서 찾은 것이 바로 이 해답입니다.
나르비크 투자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좋은 조건들이 모여 있어서가 아닙니다. AI, 데이터센터, 친환경전력이라는 세 요소가 서로 없으면 안 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삼각형의 세 변처럼,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무너집니다.
ChatGPT가 점점 똑똑해지는 이유는 뇌에 해당하는 '파라미터'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ChatGPT-3가 1,750억 개였다면, GPT-4는 1조 개가 넘습니다. 차세대 모델은 10조 개를 목표로 합니다. 이걸 사람으로 비유하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복잡한 프로젝트를 하려면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협력해야 합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똑똑해질수록 더 많은 컴퓨터(GPU)가 필요하고, 이 컴퓨터들이 빠르게 소통하려면 같은 건물 안에 있어야 합니다. 서울에 있는 컴퓨터와 부산에 있는 컴퓨터가 협력하는 것보다, 같은 방에서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들이 수백 배 빠르게 일합니다. 그래서 AI가 발전할수록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꼭 필요해집니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려면 네 가지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첫째, 싼 전기입니다. 전기요금이 운영비의 30-40%나 차지하니까 전기가 비싸면 사업이 안 됩니다. 둘째, 끊기지 않는 전기입니다. AI 학습은 며칠간 24시간 내리 돌아가는데, 1분만 정전돼도 수십억 원이 날아갑니다. 셋째, 엄청나게 많은 전기입니다. GPU 10만 개가 동시에 돌아가면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넷째, 깨끗한 전기입니다. 유럽에서는 탄소세를 물리는데, AI 서비스 하나 돌리는 데 드는 전기로 계산하면 1년에 수백억 원을 더 내야 합니다.
놀랍게도 이 네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전기는 태양광, 풍력, 수력 같은 친환경 전력뿐입니다. 석탄은 탄소세 때문에, 원자력은 빨리 조절하기 어려워서, 가스발전은 가격이 들쭉날쭉해서 모두 탈락합니다.
지금 AI 서비스들의 성능은 비슷비슷해졌습니다. ChatGPT, Claude, Gemini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럼 뭘로 경쟁하느냐? 바로 비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벌금' 비용입니다. 친환경 전력을 안 쓰면 탄소세라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AI 서비스 하나 운영하는 데 드는 전력으로 계산하면 1년에 150억 원이나 됩니다. 이 정도면 작은 규모의 AI 스타트업 하나가 망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친환경 전력을 쓰면 이 벌금을 아예 안 내도 됩니다. 거기다가 '우리는 친환경 기업이에요'라고 어필해서 기업 가치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결국 친환경 전력을 확보했느냐 못 했느냐가 AI 기업의 생존을 결정합니다.
이 세 요소는 이제 하나의 팀이 되었습니다. 더 신기한 건 서로 서로 도와주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AI가 발전하면 → 데이터센터가 더 필요해지고 → 전력을 많이 쓰는 곳이 생기니까 →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는 게 돈이 되고 → 친환경 전력이 많아지면 → AI 기업들이 몰려들고 → 그 지역이 혁신의 중심지가 되고 → 더 좋은 AI 기술이 나옵니다 → (다시 반복)
반대로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무너집니다. AI 없는 데이터센터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해야 해서 망합니다. 데이터센터 없는 AI는 개인용 컴퓨터 수준에 머물러서 ChatGPT와 싸울 수 없습니다. 친환경 전력 없는 데이터센터는 탄소세 폭탄을 맞아서 문을 닫습니다. 나르비크는 바로 이 세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곳입니다.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OpenAI가 1조원을 투자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나르비크 주변에는 거대한 수력발전소들이 즐비합니다. 스코멘 발전소(313MW), 실드비크 발전소(63MW)를 비롯해 수십 개의 수력발전소가 1년에 1TWh가 넘는 전력을 쏟아냅니다. 서울시가 1년간 쓰는 전력량과 맞먹습니다. 문제는 이 전력을 쓸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송전선이 부족해서 남부 대도시로 보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르비크의 전력 가격은 유럽 평균의 절반 수준입니다.
OpenAI에게는 이것이 기회였습니다. 남는 전력이 많으니 값이 싸고, 100% 수력이니 탄소 배출도 0입니다. 게다가 수력발전은 1초 단위로 전력량을 조절할 수 있어서, GPU 10만 개가 동시에 돌아갈 때 생기는 급격한 전력 변동도 문제없이 흡수합니다.
나르비크의 또 다른 장점은 추위입니다. 1년 평균 기온이 4도. 여름에도 18도를 넘지 않습니다. 데이터센터에서 가장 큰 비용 중 하나가 냉각비입니다. GPU들이 엄청난 열을 내뿜기 때문에 24시간 에어컨을 돌려야 합니다. 하지만 나르비크에서는 자연이 거대한 에어컨 역할을 합니다. 전력 효율성을 1.1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보통 데이터센터가 1.5~2.0인 걸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럽경제지역(EEA) 회원국이어서 유럽연합 규제를 그대로 따릅니다. 즉, 유럽 기업들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안' 데이터센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유럽은 지금 '디지털 주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유럽도 자체적인 AI 인프라가 필요해졌습니다. 특히 2025년 8월부터 시행된 유럽 AI 규제법은 고위험 AI 모델의 데이터를 유럽 내에 보관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유럽 내 AI 컴퓨팅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고, 대부분을 미국 클라우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나르비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입니다. 더 나아가 노르웨이는 유럽연합의 까다로운 국가보조금 규제에서도 자유롭습니다. 투자 유치를 위한 세금 혜택이나 정책 지원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OpenAI의 나르비크 진출은 단순한 투자가 아닙니다. AI 시대의 새로운 경쟁 방식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더 좋은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서, 어떤 전기로 AI를 돌리느냐'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ChatGPT 같은 서비스 하나를 운영하려면 1년에 수 TWh의 전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중소도시 하나가 쓰는 전력량과 맞먹습니다. 동시에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친환경 보고서에서 전력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AI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친환경 전력을 확보하느냐'로 귀결됩니다. OpenAI는 나르비크에서 이 해답을 찾았습니다.
나르비크 사례를 보면서 한국도 몇 가지 고민해볼 지점들이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AI 경쟁력을 키우려고 한다면, 데이터센터와 친환경 전력의 연계를 한번 살펴볼 만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25%인데, 나르비크 같은 사례를 보면 단순히 비중을 늘리는 것 외에도 AI 데이터센터와의 직접 연결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몇 가지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재생에너지가 집중된 지역과 데이터센터를 직접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겠습니다. 제주의 풍력이나 서남해 해상풍력, 동해 부유식 해상풍력 같은 곳과 AI 데이터센터를 직접 연결하는 것이죠.
그 다음으로는 AI에 특화된 전력 요금 체계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재생에너지가 많이 생산되는 시간대에는 전력 요금을 낮춰주고, 그 시간에 AI 학습을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방식 말입니다.
허가 절차 부분도 개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은 부지, 전력, 세제 혜택이 각각 다른 부처 담당인데, 이를 통합해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해외 진출 쪽도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겠습니다. 나르비크처럼 친환경 전력이 풍부한 지역 - 몽골 풍력이나 호주 태양광, 캐나다 수력 같은 곳에 한국 기업들이 합작 투자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한 방안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모두 쉽게 될 일은 아니겠지만, 나르비크 사례가 보여주는 방향성은 참고할 만한 것 같습니다.
OpenAI의 나르비크 선택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AI 시대에는 전력이 곧 국력입니다.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 석탄과 철광석을 확보한 나라가 강국이 되었듯이, AI 혁명 시대에는 친환경 전력을 확보한 나라가 강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조선으로 바다를 지배했으며, K-콘텐츠로 문화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친환경 AI 컴퓨팅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때입니다.
2026년 말, 스타게이트 노르웨이에서 첫 번째 GPU가 돌아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요? AI의 미래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전력이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전력은 친환경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