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있는 큰 행사였다. 유명하기도 했고. 어느 시기부터인가 여성의 성상품화, 페미니즘 등등 여러 이유로 공중파에서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명맥은 그대로 이어져서 해마다 미인들이 배출되고 그중에 발견되는 보석 같은 인재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암튼, 신기한 것은, 그렇게 이쁘다 이쁘다 하는 후보들을 모아놓았어도 누가 진, 선, 미에 뽑힐까 하고 최후 3인방이 남기 전까지 내 기준에 ‘안 예쁘다’고 걸러지는 후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맘대로.
그게 신기했다. 각 지에서 뽑힌 미인들 중에도 ‘안 예쁜’ 게 느껴지는 ‘미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대게는 내 짐작은 틀렸었고, 20년 셀프 심사경력에 고작 두 번만 내가 뽑은 미인이 3위안에 들었었다. 나의 심사기준은 눈이 낮았던가 높았던가, 남달랐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였다.
너무 잠이 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해에 나는 누가 진에 뽑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 나이 때에는 뒤늦게 신문을 찾아본다거나 할 마음도 먹지 않은 나이였다. 인터넷도 없었고.
그런데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인터뷰 내용이 있다.
사회자가 물었다.
“미스코리아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그 질문에 (미스코리아 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리 뽑은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가 엄해서 통금시간이 저녁 9시인데, 그걸 좀 늦춰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생각하니 어림도 없는 소리다. 안 그래도 이쁜 딸, 그렇잖아도 통금시간이 밤 9시인데, 그 이쁜 딸이 미스코리아에 뽑혀서 진이 되면, 통금시간이 더 앞당겨지지 않을까.
그 인터뷰가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 해에 미스코리아 진이 도대체 누가 된 걸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통금시간이 6시였다.
퇴근이 늦는 엄마 대신에, 감자도 깎아놓고, 설거지도 해놓아야 하고,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오라는 엄명에 따라서 정해진 시간이 6시였다.
그래서 바로 옆집에서 놀고 있을 때, 6시 10분 전부터 시계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째깍 들리면, 내 심장도 같이 째깍째깍째깍 뛰는 것 같았다.
친구 집 대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1분도 안 걸려도 허벌라게 뛰어들어갔다.
5시 59분 50초까지 최선을 다해서 놀았다. 6시를 넘기면 야단맞는 것은 아니었으나, 순수하고 유순했던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지켰던 것 같다.
결혼하고서 내가 스스로 정한 통금시간은 '전남편이 퇴근하기 3시간 전' 이었다.
최소 3시간 전에는 들어가야 밥하고 정리하고 대기하고 맞이하고 밥 차리고... 그 순서가 그나마 무리없이 흘러갔다.
이혼하고는 통금시간은 없다. 내 맘이다. 그렇다고 막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나, 남편 퇴근시간 3시간 전부터 들리던 째깍째깍째깍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좋다.
후련하고, 편안하고 자유롭다.
당당하고 산뜻하고 자연스럽다.
안정되고 따뜻하고 기분 좋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나가기를 싫어한다. 우리 집이 너무 좋다고 한다.
편안해서 자꾸만 웃음 짓게 되는 집.
무엇을 하든 거리낌이 없는 집.
마음에 부침이 없고 만족스러운 집.
언제 어디서든 우리 집에 돌아오면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우리만의 집'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