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게니 키신 리사이틀 후기
유럽에선 여름에 클래식 공연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정기 공연 시즌이 초여름에 종료된다. 올해 초부터 공연 동선을 메모장에 차례대로 정리해 뒀는데 파리 오케스트라 시즌 마지막 공연이 6/4였나 6/5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한 공연했을 때의 그 구성 그대로(지휘 클라우스 메켈레 + 피아노 임윤찬) 파리에서 공연이 있는 걸 확인했다. 마음이 마구 설렜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럽으로의 졸업여행(+공연 직관)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바로 일을 하게 되면서 날씨만 좀 풀리면, 즉 4월쯤 떠나려던 졸업여행은 어려워졌다. 다만 기약은 있었다. 내가 들어간 팀은 일종의 ‘대선방송’이었다. 대선이 끝나면 방송도 종료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헌재 선고는 예상보다 늦어졌고, 파리에서 메켈레와 임윤찬을 보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역시 다들 알다시피 대선은 결국 6/3으로 확정되었고, 공연은 6/4였으므로, 그리고 파리 오케스트라의 시즌은 그것으로 종료될 예정이었으므로.
그래서 여름엔 유럽에서 아예 클래식 공연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일반적으론 여름 음악 축제가 있겠다. 나도 여러 번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그리고 오페라를 좋아하거나 특히 바그네리안이 환호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같은 게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런 축제는 봄부터 유명 연주자 티켓은 동이 나고 뭣보다 그 기간 숙소 가격이 미쳤다. 일전에 잘츠부르크 축제 때는 너무나 정직한 기숙사 바이브의 숙소(욕실 공용)가 하룻밤에 20만 원도 넘었다.
나는 이쯤에서 본 목적을 되짚어봤다. 나는 왜 유럽으로 공연을 보러 오려했나.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의 연주를 직관하는 것이었다. 그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 때문에 내한할 일이 없다. 즉, 그의 공연을 보려면 두말할 것 없이 유럽엘 가야 한다. 그래, 목적은 소콜로프였다! 거기에 집중하기로 하고 일단 소콜로프 공연 2회 차를 예매했다. 유명 축제는 위의 이유로 패스했고 앞뒤로 뭘 볼 수 있을지 열심히 찾은 결과, 키신과 무터, 기돈 크레머 등이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역시나 소콜로프의 공연이 있을 도시를 기점으로 이동 방법과 시간 등을 검색해 보니(이미 이 단계에서 왕대문자 P형 여행자인 나는 상당히 지쳤다), 최종적으로 키신만 남았다. 끊고 보니 모두 소도시 축제 티켓이었다. 그렇게 나는 뒤셀도르프에 왔다.
바흐와 쇼팽, 쇼스타코비치 프로그램. 바로크-낭만-현대? 다채로운 시대 구성 굿굿. 멀리까지 와서 보는데 이거 저거 다 찍먹 해서 나쁠 거 없지. 문제는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거였다. 찾아보니 올해가 서거 50주기라서 키신이 쇼스타코비치 연주에 주력한단다. 그리고 덩달아 알게 된 사실, 키신 아내가 쇼스타코비치 손녀임!
예습하려는데 이 곡을 녹음한 음반 자체가 몇 개 없는 현실. 에밀 길렐스가 남겼기에 그걸로 쭉 들었는데, 사실 길렐스는 쇼스타코비치가 이 소나타를 작곡했을 때, ‘훌륭하긴 하지만 내 맘엔 안 듦’ 태도를 시전 했다고. 그래놓고 녹음 남긴 클래스. 덕분에 예습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땡큐메흐씨셰셰). 그러나 솔직히 비전공자에 음악학 1도 모르는 내게 이런 현대곡은 화성 흐름 개낯설고 금세 흥미 잃기 마련인데… 키신 공연에선 쇼스타코비치가 제일 좋았다는 사실!
첫곡인 바흐 파르티타는 사실 막 좋은지 몰랐다. 공연장하고 낯 가리는 중이기도 하고. 내가 앉은자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2층 합창석인데 공연장이 빈야드 형식이라 소리가 멀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다만 나보다 더 높은 층까지 소리는 잘 전달될 듯한데 예쁘게 다듬어지진 않은 날것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렇지만 바흐 연주엔 그게 또 썩 어울렸던 것도 같다. 처음엔 하프시코드처럼 끊어치는 듯하더니 점차 페달링이 더해져 훨씬 친숙한 소리로 발전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리를 갖고 노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신경이 곤두선 듯도 보였다. 예술가란, 특히 세계 최정상 반열에 오른 예술가란 저토록 예민할 수밖에, 이 모든 음이 다 우연이 아닌 필연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무엇보다도 음색이 정말 또렷했는데 앞서 언급한 공연장 음향이 이를 더 배가한 것 같다. 특히 여린 음과 파워풀한 음이 명확히 구분되면서 키신이 어떻게 이 음악을 만드려고 했는지가 보이는 듯했다. 음반으로는(더구나 여행 중이라 오디오도 아닌 에어팟 청취를 하는 중) 거의 느껴지지 않던 음향과 분위기의 명징한 대비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그대로 들리는 연주였다. 쇼스타코비치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고 그마저도 교향곡이 일반적이다. 그는 소련의 많은 예술가들이 다른 나라로 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러시아에 남아있었는데, 그가 남긴 교향곡을 들어보면 소련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듯하다가도 전쟁을 비관하는 것 같기도 해 알쏭달쏭하다. 이 피아노 소나타 2번도 대피 중이던 상황에서 작곡을 했다는데 그래서일까, 1악장은 매우 불안정하고,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음들이 엮이며 더욱 불안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3악장에 이르면 억지로 맞물리게 했던 것 같던 이 소리를 다시 끌어오는데 1악장만큼 불화로 다가오지 않는다. 역시나 아리송하다. 그러나 가만히 듣고 있으면 쇼스타코비치를 들을 때마다 늘 그랬듯 ’어쨌든 정리된’ 기분이다. 개운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잔여한다.
덧) 앙코르는 무려 3곡이었는데 그중 쇼팽 스케르조는 퇴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끌어모으는 최선의 기운과도 같아서 굉장히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