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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Apr 11. 2024

13년 차에 경력 단절을 결심하다

나는 왜 대학원에 왔나


이 매거진에 글을 올리는 건 3년 만이다. ‘가장 최근 글’을 적고 한 달 후 나는 한 프로그램의 메인작가 자리를 제안받았고 2년을 일했다. 그 사이 내가 졸업한 대학교의 일반대학원에 진학했고 지금은 4학기 째, 졸업논문을 준비 중이다. 첫 학기엔 일과 학업을 병행했지만 두 번째 학기부터는 학교만 다녔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KCI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퍼블리쉬하는 값진 경험도 하며 오롯이 학생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작가든 피디든 일한 지 10년쯤 되면 일대원이든 특대원이든 유학이든,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그 많은 이들이 어떤 이유로 진학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연차에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 데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 경우엔 ‘지금에 대한 매너리즘’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누군가 진학 동기를 물으면 “그냥”이라는 말로 퉁치곤 하는데, 이건 심심해서 돈 쓰러 왔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만큼 일해봤으면 딴 거 해봐도 되지 않을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발전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뭘까, 학위를 따는 건 어떨까 등등… 여러 가지 번잡한 생각을 구구절절 늘어놓기도, 깔끔하게 정리하기도 어려워 “그냥”이란 표현 안에 욱여넣어보는 것이다.




지난번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대학원 진학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3년 전, 이 매거진의 ‘가장 최근 글’을 올릴 때에도 대학원 진학을 막연히 생각해 본 적은 있다. 그땐 국내와 해외 모두 광범위하게 열어두고 다양하게 정보를 수집했다(전공도 바꿀 거면서 유학을 생각하다니… 그만큼 아는 게 없었던 시절이다). 그러다 지금 전공하는 학문을 그나마 대중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의 메인작가가 되면서 조금 맛을 보게 됐다. 사실 나는 이 분야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것이다. 방송 제작에 참여하면 어차피 내가 접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이걸 대학원에 갈 수 있을지 시험하는 계기로 삼아보자는 마음이었다. 당시의 나는 학업엔 약간의 흥미가 생겼으나 해당 분야에 대해선 무지했으며, 어찌 됐든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영어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분야의 전공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2021년은 코로나 시국. 대학원에 진학한대도 비대면 수업을 받게 될 거라 생각하니 애매했다. 그러니 일단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찍먹’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돈을 벌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관련 인물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대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부도 할 수 있, 아니, 필수로 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무엇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형성됐다. 즉, 연구계획서에 적을 내용이 차곡차곡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주변의 여러 석사와 박사 친구들이 연구계획서는 계획서일 뿐 연구로 이어지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말이다. 진학 한 달 후,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나는 지식 없이 이상만 가득했구나, 그걸 또 추상적으로 펼쳐놨구나, 현실은 1도 몰랐구나.


첫 학기는 허둥지둥 대다 끝났다. 한 주에 한 번이지만 정기적으로 출근을 했고, 세 개의 대학원 강의와 한 개의 학부 강의를 들었다(학부 전공과 대학원 전공이 달라 보충 학점을 채워야 했기 때문). 등교도 출근도 않는 날에는 온종일 대본을 썼다. 내가 공부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방학을 맞이했다. 대학원생의 방학은 공부를 보충하는 시간이라는데, 나는 학생을 놓고 철저히 작가로 돌아갔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고, 방학이 끝날 즈음 프로그램이 종영했다. 그때 나는 작가를 놓고 철저히 학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프리랜서인 내가 아예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한다고 하자 동료들 몇이 궁금해했다. 일은 더 이상 안 할 거야? 박사도 할 거야? 불안하지 않아? 등의 질문들을 적잖게 들었다.

미래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내 생각은 이렇다. 나는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공부가 아닌 다른 일을 할 계획이며, 여태껏 박사 진학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너무나 어려울 것이 분명하고, 그걸 나의 업으로 삼는다는 건 보통 각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작가 폴 오스터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작가는 선택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 말고 어떤 일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한 바 있다. 고등학생 때 소설을 썼고, 대학에선 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방송글을 쓰고, 이후에도 무엇이든 쓰는 일을 하고 싶은 나는 글쓰기를 내 평생의 업, 즉 ‘선택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공부는 내게 그런 일이 아니다. 사실 논문도 한편으론 내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않은 장르의 글쓰기로 생각하고 있다(그래야 힘듦을 아주 극소량이라도 흥미로움으로 전환할 수 있기도 하다).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프리랜서 작가로 일할 때나 지금이나 같은 입장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 해온 노릇이 방송작가이기에, 다시 방송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면 내가 지금 연구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실무에 적용시켜보고자 하는 마음은 있다. 공부를 하고 싶었던 데에는 현장에서 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을 학문에서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학문과 실무 사이에 접점이 없다고, 뭘 모르는 소리 한다고들 하지만, 사실 현장에 학위 취득자가 적지 않은 것처럼 학계에도 현장 경험자가 적지 않다. 그들이 모두 학계와 실무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만을 체득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접점은 분명히 있을 텐데, ‘뭘 모르는 소리’라고 넘기기보다는 ‘뭘 아는 소리’일 수도 있다는 태도를 가져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른 학자들의 논문을 읽고, 내가 쓸 논문을 준비하며 오롯이 학생으로 시간을 보내려 한다. 그게 작가로서의 내 미래에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일할 때 공부한 것 좀 써먹어 보려고?‘ 라고 묻는다면, 괜히 구구절절하게 말하기가 낯 뜨거워서 또 ”그냥“ 이라는 한 마디에 나의 이런 마음을 욱여넣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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