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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Nov 07. 2022

침잠의 시기를 지나 그가 들려준 음악은

안드라스 쉬프 리사이틀 후기



2011년으로 기억한다. 안드라스 쉬프의 내한공연은 종교가 없는 내게 신성함과 거룩함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그때도 쉬프는 자신의 특기이자 트레이드 마크가 된 바흐를 연주했는데, 곡이 주는 경건함 때문일까, 그의 주변에 어떤 막이 둘러져 있고 그 안은 절대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피아니스트와 그의 피아노 (아마도 그가 열렬한 팬임을 밝힌 뵈젠도르퍼), 그가 연주하는 음악만이 존재하는 아주 고요한 세상을 내가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쉬프의 실황을 보는 건 10여년만이다 (왜 그간 보지 못했는가에 대해 얘기하자면 절대 짧지 않지만 대폭 줄여 얘기해보자면 잘츠부르크에서는 시간 계산을 잘못한 내 불찰 때문, 이후엔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 앞서 프로그램을 공지하지도 않았고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중에 연주할 것”), 공연 주관사는 렉처 형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공연 종료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전날 문자로 공지했다.


코로나는 쉬프가 이러한 공연을 기획하게 된 데에 많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는 지난 시간을 슬픈 시간이라 이야기했고 많은 고민을 한 시기였다고도 했다. 특히 유럽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락다운 때문일까. 코로나가 한 차례 잠잠해진 후 그는 10년 전 내가 본 경건한 공연과는 무척 다른, 대중에 그가 다가오는 형태의 공연을 들고 무대에 섰다. 프로그램을 미리 공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요즘 공연은 무려 2년 후의 프로그램마저도 예측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2년 후 어떤 저녁을 먹을지 계획하진 않는다”며 즉흥성의 힘과 놀라움을 강조했다. 미리 예습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관객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도 쉬프는 인터뷰와 렉처를 통해 답했다. 바흐를 즉흥적으로 듣는 것은 힘들 수 있다고, 불레즈나 슈톡하우젠을 연주하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잘 몰라도 괜찮으니 그저 잘 들어달라는 뜻으로 들린다.


1부는 무려 2시간이 지나서야 끝났고 전체 공연은 거의 4시간 동안 이뤄졌는데 이건 렉처 형식이라서만은 아니다. 그는 여섯 곡을 연주하고 20분 쉰 뒤 다시 두 곡을 연주하고 공연을 마쳤다. 하지만 박수는 계속해서 쏟아졌고 앙코르는 무려 세 곡인데 그중 하나는 전 악장 연주였으니 거의 3부까지 진행했다고 봐도 무방한 셈. 음악은 음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침묵도 함께하는 것이라던 어제의 말처럼, 코로나라는 긴 침잠 끝에 입을 연, 그리하여 그 엄숙함 끝에 대화가 더해진 새로운 스타일의 공연은 아마도 한동안 잊기 어려운 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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