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은 카메라를 들고 떠난 여행
나는 지금 태국 치앙마이에 있다. 4주 차에 접어들었다. 치앙마이에만 오랜 기간 머무는 건 이번이 세 번째. 오늘은 계획보다 일정을 앞당겨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머물던 숙소를 정리하고 떠나기 전, 이번 여행이 지난번과 무엇이 달랐는가 생각해 본다.
사실 이렇다 할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차이를 꼽자면 얘기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중 하나는 바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왔다는 것.
모델명은 MINOLTA SRT 303b. 검색해 보니 1970년대 중후반에 생산되던 제품이란다. 40년이 넘은 카메라이니 나보다 나이가 많다. 실제로 이 카메라는 75학번인 엄마가 취직 후에 외삼촌에게 사 준 카메라인데, 삼촌 집 어딘가에 유물처럼 묻혀 있다가 20년 전 발굴(!)해 가져왔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가 사진반 활동을 하게 됐기 때문. 그렇게 나는 필름 카메라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 카메라는 한동안 영감님으로 불렸다. 연식이 지긋했고, 기동력이 떨어졌으며(아주 무거운 탓에 친구들은 치한을 만나거든 카메라로 머리를 내리치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몸의 어딘가가 고장이 나 있었다(본격적인 사용 전 남대문 카메라 상가에서 점검 및 청소를 했는데 노출계 고장, 수리 불가 판정을 받았다). 중의적으로 어떤 영감inspiration을 받고 싶은 마음도 담은 별칭이었다.
사진반 활동은 사진에 진심이던 담당 선생님의 주도 하에 전시회 준비도 열심히 해야 했고, 인당 일정 금액을 걷어 (아마도 선생님이) 그토록 염원하던 암실도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흑백 필름 현상과 인화의 세계에까지 입문하게 된 것이다. 학교의 빈 창고에 차린 작은 암실은 조마조마하면서도 참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 나는 당시 인기를 끈 소위 보급형 dslr을 장만하면서 영감님을 멀리하게 됐고, 이후엔 미러리스를 갖게 되며 그마저도 손에서 놓았고, 그 후부터 현재까지 모든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왔다.
점차 가볍고 편리한 것을 좇다가 이번 여행에서 미러리스도, dslr도 아닌 가장 무거운 필름 카메라를 들게 된 이유는 글쎄. 새 집으로 이사를 오며 설치한 벽 선반에 장식용으로 필카를 내놨는데 자꾸 시야에 걸리다 보니 한번 만져보고 싶었을까?
10여 년 만에 다시 들고 다닌 필카는 덥고 습한 나라에서 주로 걷기 이동을 하는 내 어깨를 짓눌렀고, 그래서 때로는 숙소에 두고 다녔지만, 그러면 여지없이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곤 했다. 그럼에도 예전 같지 않은 체력 탓에 항상 들고 다니지 못했지만, 운 좋게 들고나간 날들에 촬영한 사진을 나열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