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에피소드 02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회적 동물이라서 가끔 괴롭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고, 서로의 생각에 불씨를 지펴주는 좋은 관계는 생각만 해도 흥흥 웃음이 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그야말로 쥐약이니까. 내가 어떻게 저런 인간이랑 친구가 되었는지 뒤돌아 설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정말 바보 같게도 막상 그들을 만나면 난 해맑게 웃고 있다. “아유, 그러셨어요~” 하고 오버스러운 액션에 격한 호응도 가끔 곁들이며.
정민 씨는 딸아이 수영 모임으로 만난 학부모다. 그녀는 날씬한 체격에 이영애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정민 씨는 남편이 꽤 돈을 잘 벌어서 일하지 않고도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 매일 피부과와 백화점을 순회하는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늘 징징거리며 말한다. “이번에 물광이랑 윤곽 보톡스를 맞았는데 어때? 볼 쪽이 좀 꺼졌나? 그리고 이 가방! 백화점에서 10% 세일할 때 샀는데 괜히 샀다 싶어. 이번에 이태리 가면 거기서 더 싸게 살 수 있는데 말이야. 나 왜 이러지? 참 바보 같지?”
얼굴까지 살짝 찡그리는 (하지만 주름이 질까 봐 실제론 세게 찡그리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머리 한 대를 쿵 쥐어박고 싶었다. “이봐! 지금 생계형 워킹맘에게 잘난 척하고 있는 거냐?” 하지만 이런 말은 마음속에서만 웅웅 거릴 뿐이다. 나는 그녀의 피부 상태가 너무 좋다고 위로하고, 이태리에선 더 좋은 물건을 득템 하라 조언한다. 언젠가는 그녀의 집에 방문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탁자를 시켰는데 그게 그 집에 어울리는지 봐 주기 위해서. 그리고 딱 봐도 돈을 처바른 그 집에서, 그 집이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에 대한 징징거림을 또 한참 들어줘야 했다.
아 참! 소연 씨도 있다. 그녀는 어린이집에서 만난 지인인데 세상의 온갖 위기상황을 전해준다. 요즘 계란이 아이들의 성 조숙증에 얼마나 위협이 되고 있는지, 아이들 안전사고는 우리가 밥 숟가락을 뜰 때마다 발생하고 있다며 (밥 먹다 체할 뻔했다) 이 참에 대량으로 헬멧을 구매해야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이건 약과다. 아이들 교육문제에 이르면 그녀의 입은 좀체 다물어질지 모른다. “강남 아이들은 6살에 해리포터 원서를 마스터한대요. 시찌다 교육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훈련시키는 교육인데…, 아! 가베는 기본으로 하시죠? 그거 안 시키면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져서 수학 개념 자 체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이하 블라블라. 나는 언젠가 아이의 밥을 먹이며 그녀의 전화를 받았는데, 1 시간이 넘도록 끊지 않아서 (어깨에 핸드폰을 끼고 밥을 먹이느라) 고개에 담까지 왔다. 이런 날 보고 남편은 소리쳤다. “거! 당장 전화 좀 끊어!” 하지만 어떻게 하나? 그 전화를 끊기가 너~무 어려운 것을.
<인생의 똥차들과 쿨하게 이별하는 법>이란 책은 우리가 이런 인간들에게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은 보기를 통해 묻는다. (이 책은 알렉산드라 라인바르트라는 광고쟁이이자 에세이 작가가 지었는데, 그녀도 꼴 보기 싫은 인간들을 끊어내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1. 전화를 받지 않는다
2. 핑계를 지어 낸다.
3. 지난번 핑계를 기억하려 애쓴다
4. 저 멀리 꼴 보기 싫은 인간이 보이면 안 보이는 척 죽은 척한다
5. 누가 초인종을 누르면 아무도 없는 척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최소한 두 개 항목이라도 끄덕였다면? 오 축하한다! 당신도 과거의 저자만큼이나 멍청하다는 뜻이다! (솔직히 나는 모든 항목에 다 끄덕였다) 저자는 말한다. 그냥 한마디로 “싫어!”라고 거절하면 그만인데 왜 우리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느냐고. 어느 날 내 주변에서 이들이 ‘뿅’ 하고 사라진다면 슬프긴커녕 축배를 들 일일 텐데, 왜 삶에서 지워버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냐고. 그 말에 100% 공감한다. 단지 우리가 이들을 인생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놈의 지긋지긋한 사실 때문이다. 바로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 그러니 꼴 보기 싫은 그들에게조차 잘 보이고 싶은 거다!
물론 우리는 안다. 이것은 허망한 인기다. 이렇게 획득하는 플러스 1점 보다 나를 갉아먹고 있는 자존감 지수 가 마이너스 100점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갈수록 피폐해지는 정신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실제 전문가들은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이 상태를 ‘자존감 부족’이라 진단한다. 그리고 “사자는 양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는 명언까지 언급하며 우리에게 제발 사자가 되라고 호통친다.
뭐 상관없다. 사자가 되든, 호랑이가 되든 그 비유는 전혀 문제 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이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고, 이제는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실천해 보는 것이다. 정민 씨, 소연 씨, 그리고 내 친구 고은이 (연락두절이었다가 가족 기념일에만 연락하는), 수연이 (가방 좀 그만 사고 3년 전 꾸어간 400만 원부터 값아라!), 향연이까지. (난 돌아서면 네가 모두를 뒷담화 하는 것을 알고 있어) ‘오래 알았다’는 사실 외엔 딱히 지인보다 못한 이들을 이젠 그만 정리해야 함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정민 씨에게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대처를 했다. “우리 집에 책장을 들여놓았는데 한번 와서 봐 주겠어요?”하고 전화를 한 그녀에게 난 드디어 한 마디를 했다. “글쎄요. 전 장식장에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 바빠서요” (그리고 딸깍) 어떻게 낸 용기인지는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도 잠시 멍했고, 입술이 잠깐 파르르 떨릴 정도로 살짝 흥분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행히 그녀로부터 더 이상의 전화는 없었고, 수영장에서 마주하자 그녀는 나와 고개를 돌린 채 완전히 외면하고 있었다. 야호! 이런 것이었군. 의외로 세상에 별 일 일어나지 않는군!
작가 알렉산드라는 말한다. ‘사랑스러운 독특함’과 ‘참아줄 수 없는 기벽’의 차이는 그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따라 갈리는 것 같다고. 상대의 어떤 행동이 내가 눈을 좀 흘기게 되는 정도면 OK! (그럴 때는 상대가 눈치채게 대놓고 눈을 흘겨라!) 하지만 신경을 거스르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면 상대를 과감히 제거해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다. 한두 개의 단점 정도는 나도 ‘우정’이란 이름으로 용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정이 나의 정신질환까지 초래하고 있다면? (핸드폰에 이름이 뜨는 순간 갑자기 화가 난다면?) 그래 아무래도 맞다. “제발 끊으라”가 확실한 진리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에 아직도 죄책감이 살짝 느껴진다고? 그렇다면 <인생의 똥차들과 쿨하게 이별하는 법>의 이 구절을 참고해 보자.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몇만 년 전에는 부족의 일원이 되어 사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데 중요한 일이었다. 샤벨타이거를 물리치고 매머드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는 집단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오늘날에는 냉동피자가 있고 샤벨타이거를 상대할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 히 이런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혹시 샤벨타이거나 매머드가 나타난다고 할 지라도, 당신이 끊어 버리고 싶은 그 ‘꼴 보기 싫은 친구’는 샤벨타이거나 매머드를 쓰러트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다시 한번 되뇌어 보자. 사자는 양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사자는 양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사자는 양이...' 담대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심플하게! 이 꼴 보기 싫은 인간들로부터 한시바삐 벗어나는 게 정답이다.
<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