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에피소드 01
평범하다 생각한 날은 '어떤 계기'로 악몽이 되기도 한다. 내겐 그날, 그 말이 바로 그 '계기'였다. 단지 유방 검진 결과를 들으러 갔을 뿐인데 의사가 초음파 차트를 보여주며 잔잔했던 내 세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가슴 양쪽에 없었던 혹이 보이시죠? 크기나 모양으로 봤을 때 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냉정한 의사는 팩트 전달 외에 그 어떤 감성적 위로도 없었다. 정밀 검사 후에 다시 보자는 그의 말을 뒤로 하고, 진료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지금 이거 실화 맞지? 거짓말 아니지?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지?'
암과 죽음이 동의어는 아니지만, 솔직히 의사의 한마디에 죽음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두 달 전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가슴 쪽도 한번 체크해야지 싶어 '그냥 해본' 검사였는데, 예상치 못한 말에 좀 많이 놀라고 어지럼증이 돋았다. 순간 TV 속에서나 봤을 법한 이런 경험도 했다. 삼십 몇 년의 삶이 정말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줄줄이 눈앞을 스치는 경험. 쪼르르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 원무과에 추가 검진을 신청하고 거스름돈을 챙겨받는데, 10원짜리 몇 개가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떨어진 동전들을 주우려 고개를 숙이는데, 갑자기 좀 화가 치밀었다. 삶의 비극적인 순간에도 몇 십원에 연연하는 비루한 꼴이라니. 뭔가 억울해졌다. 그리고 그 억울함을 풀어낼 곳이 필요했다.
몇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고, 나는 병원 화장실 앞에서 이리저리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우선 남편에게. "내가 암일 수도 있대. 너랑 결혼하고 얼마나 속을 썩었으면 이렇게 아프겠냐. 이혼을 하네 마네 맘고생 한 것까지 합치면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 거다. 다 네 책임이야. 내 건강 돌려내." 다음은 부모님. "나 좀 아플 수도 있어. 이제 내 맘대로 살게요. 벌써 나이 삼십 줄인데 엄마 아빠 기대에 맞춰주려고 하고 싶은 거 너무 못했어. 이제 절 좀 포기하세요." 이어서 직장 상사. "부장님 저 건강이 안 좋아졌습니다. 일할 사람도 많은데 왜 새벽 한두 시까지 워킹맘이 혼자 자료 작성하게 만드시나요? 이젠 더 못하겠습니다. 부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기타 친한 친구들과의 하소연 통화가 줄줄이 이어졌다.
혹시 '음'하며 심각함에 빠지실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미리 얘기해야겠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추가 검진 결과, 나는 실제 암에 걸린 것도 아니었다. 그 거만한 의사의 대대적 오진으로 정말 암에 걸릴 뻔했지만 (속 앓이를 한 기간만 무려 한 달이다!) 다시 살아났다는 기쁨에 "선생님, 그렇게 일하시면 안 되죠" 하는 펀치만 힘껏 날려주고 나왔다. (사실은 공손했다) 그래서 내 진짜 이야기는 오히려 그 이후 시작되었다. 심장까지 벌렁거리게 한 이 해프닝을 통해 나는 내 삶에 대해 아주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반복했던 삶의 방식, 자세, 성격적 단점과 장점들을 하나씩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마치 거대한 우주처럼 충돌하며 내 마음 속에 하나의 심플한 질문을 남겼다. "내 삶의 핑계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참 일방향이다. '잘 살고 싶다'는 미래지향적인 목표에 있어, 그곳까지 힘껏 정주행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같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그곳까지 정말 잘 달려가고 있는지를 되새기는 역방향, '삶의 리뷰'에 있어서는 개인마다 반응이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바로 '핑계비용'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별 말 아니다. 그냥 내가 지었다) "이곳까지 달려온 것은 순전히 제 책임입니다"라며 핑계를 0으로 만드는 사람은 그야말로 성인 내지 주체적인 개인. "내가 더 달릴 수 있었는데, 이런저런 변수로 좀 아쉽게 되었네" 하면 그래도 무난히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개인. 하지만 "이건 제 모습이 아니죠. 다 저들 탓이라고요"라며 모든 것을 타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돌린다면 그야말로 핑계비용 100의 '껍데기 자아'만 남는 셈이라는 것이다.
특히 핑계비용이 100까지 이른 경우엔 분노지수 또한 100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주변에서 내 의지와 다른 강요를 했다든가 결정적일 때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핑계 등으로 '스스로를 향한 반성'보다'주변으로 화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화'라는 녀석이 또 재미있는 점은 화는 내면 낼수록 활활 불타오른다는 사실이다. 나중에는 내가 왜 화를 내고 있는지조차 가끔 잊게 할 때가 있다. 분노의 대상이 모호한 채 감정이 악순환되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애타게 기다리며 혼자 악만 쓰는 꼴이랄까.
병원에서 소위 '분노의 전화'를 했던 나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내 삶은 혹시 '핑계지수 100'이 아니었을까? 감정이 워낙 격했던 상태라 전화기 너머 상대들은 내 말에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런 대답들을 했어도 전혀 무방한 것이었다. 남편 왈, "나는 스트레스 안 받아? 당신 건강은 당신이 알아서 챙겨야지!" 부모님 왈, "돈 벌어서 나 주니?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상사 왈, "힘들었다니 미안하네. 근데, 누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라고 했어?" 삶이 억울해지는 것은 일상의 의미들을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때 생긴다는 사실을 이 일로 크게 깨달았다. 그 의미가 나의 '진심'과 멀어질수록 뭔가 분노하게 되고 심각하게 괴로워진다는 사실도.
때론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보다 달려온 날들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잘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삶의 모퉁이에 몰렸을 때 내 삶이 너무 억울해진 것은 실은 '잘 살지 못했다'는 허무함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인으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직장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역할과 행동들은 '사회가 기대한 역할'에 맞춰준 것'이지 '100퍼센트 내 진심에서 비롯된 것'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정작 내 본성대로 행동하지는 못하면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날 알아주지 못해?'하며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 같다. '민낯의 나'로 살아가야 하는데, 가부키 화장을 덕지덕지 떡칠하고 있었다. '상냥하게, 친절하게, 책임감 있게'란 수식 등으로, 있는 힘껏 '진짜 나'를 부수어가며.
<대화의 희열>이란 TV 토크쇼에 백종원 씨가 나와서 한 말이 있다. "내가 말이쥬. 한창 잘 나갈 때 그렇게 사람들에게 친절했어. 가게 앞을 쓸 때도, 목욕탕에서도, 사람들만 마주치면 그렇게 안녕하세요, 하며 지나치게 인사를 하는 거야. 왜 그랬게유? 저 친구 괜찮다,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근데 말에유. 그렇게 인사한 날에는 밤에 그렇게 아파. 잠을 자려고 누울 때면 막 화가 나는 거야. 너무 굽히니까 속에서 진짜 자아가 막 올라오는 거지. 그래서 인제 그렇게 안 해유. 딱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친절해."
'딱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의 생각. '딱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의 행동.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본능적인 행동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나는 '딱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일탈을 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삶을 살아갈 바엔, 나다운 생각과 행동으로 세상과 부딪혀보는 것이 낫지 않나. 그것이 '암일 수도 있었던' 나의 위기를, 결코 '암이 걸리지 않을' 기회로 바꾸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몸을 둘러싸고 있던 껍질들을 서서히 부수어본다.
[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