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집숍 아이템 03] 무한동력 덕질의 기술
내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면, 단연 이 질문이 아닐까. 솔직히 나이가 들며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비 오는 날을 신통이 알아맞히는, 내 관절이여!), 나보다 훨씬 더 바쁘게 사는 분들도 많겠지만. 크게 대단한 것이 없는 나에겐, '공사다망'하다는 것. 그것도 '꾸준히 공사다망하다는 것'은 하나의 특별한 장점이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딱히 천년 묵은 산삼을 쟁여먹지 않는 내가, 이토록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핵심적 이유.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그토록 많은 행동들을 추진할 수 있는 어떤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답부터 말하면, 간단하다. 그건 바로 '좋아함'이었다.
중학교 시절까지 난 특별한 범생이는 아니었다. 일찍이 우리 집엔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는 넘사벽 친언니가 있었고, 언니의 그늘 밑에서 적당히 귀엽게 살자는 게 내 삶의 모토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수학 학원에서 만난 '한 남학생'과의 만남은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멀리서 봐도 후광이 번쩍번쩍했던 그는, <장학퀴즈>란 TV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우승을 한 굉장한 인재였다.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렸던 나는, 그날 이후 굳게 결심했다.
“그래.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서 저 아이와 만나야겠어.”
사람의 인체가 신비한 건, 단순 오장육부가 존재함을 넘어, 어떤 '엄청난 에너지 회로'가 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좋아함'이란 연료로 움직이는 엄청난 에너지 회로.
잠을 자지 않아도, 밥을 먹지 않아도 내겐 하루 종일 오직 그 아이의 얼굴만 생각났고. 가끔 멍하니 지쳐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면, 마치 그 아이가 이렇게 꾸짖는 것 같았다. “이 녀석! 넌 나를 만날 생각이 없는 것이냐!”
그렇게 완벽한 '상사병' (정말 멋대로 상상하는 병)에 걸린 나는, 그 모든 '좋아함'의 힘을 이어 그대로 '부에 쏟아버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성적이 상승했고, 고3 때는 무려 전교 1등을 찍어버렸다. 그렇게 악착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성한 나는, 드디어 그 남학생의 전화번호를 이리저리 수소문해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뭐 좋은 소식이 있었냐고?
흠! 뭐 인생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겠는가. 상황 때문이었는지, 얼굴도 모르는 광팬에게 너무 놀라서 그랬는지, 내가 그 아이에게 들은 건 딱 이 한마디뿐이었다.
“저 다음 달에 군대 가요. 지금 누군가를 만날 형편은 되지 않을 것 같네요.”
이렇듯 한 개인의 붉은 연심은 참 싱겁게 끝났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좋아함'을 무기로 삼으면, 그 근처에라도 '어떻게든 미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좋아함'이란 것은, 늘 2% 부족한 결과로 귀결된 적이 많았다.
무려 3년을 준비한 언론고시. MBC PD 면접 날엔 그토록 동경하던 유재석 님을 멀리서 뵙는 행운이 있었으나 (하필 면접 장소가 무한도전 '면접특집' 촬영 장소였지), 심사위원들에겐 별다른 임팩트를 내지 못한 채 면접에서 똑 떨어졌고.
멈추지 못한 '드라마 작가'의 꿈은, '웹소설'이란 장르로 확장되며 더 복잡한 롤러코스터를 탔다. 가령 100화를 쓰면 계약을 하겠다는 에이전시의 말에, 한 달을 박카스로 버티며 완결했으나 연락두절됐고. “3번만 더 고치겠다”는 또 다른 플랫폼의 말엔, 혼자 30번을 고치다 심각한 원형탈모가 왔다. 물론 그 양반과의 연락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일상에서 늘 '좋아함'을 불태우고 있었다. '덕질'에 비유하면, '덕질'의 대상이 쉬지 않고 바뀌는 셈인데. MBC에 가고 싶을 땐 유재석을 좋아하고, 드라마를 쓸 때는 주지훈을 좋아하고 (언젠가 남자주인공 배역을 맡기리라!) 웹소설을 쓸 때는 스트레이트키즈의 펠릭스를 좋아하는 식이었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현타가 올 때도 참 많았다. 특히 나의 '좋아함'이란 것은, 그 어떤 답이 오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러면 또 속으로 생각한다. “아, 이쯤이면 됐어. 이렇게 반응이 없는데, 더 좋아하는 것도 우습잖아?” 하지만 멈추려 할수록, 나는 그 '좋아함'을 도무지 그만둘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좋아함을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번 좋아해 버린 마음'은 성장하며 더 다채롭게 가지치기가 될 뿐. 도무지 그 마음이 줄어들지 않았다.
유재석은 떠났어도, 유재석을 연구하며 기록한 '방송 포맷'과 '질문법'은 남았고. 웹소설은 떠났어도, 내가 필사한 그 많은 드라마 대사와 캐릭터들은 노트에 빼곡히 남아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좋아할수록 나의 세계는 그 '좋아함'의 흔적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한다구!)
그래서 이 과정에서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이 '좋아함'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좋아함의 모든 과정'들은, 내 생각을 더 깊고 단단하게 다져가는 '생각의 여정'이었다.
난 '좋아함'의 과정을 통해 나와 세계를 관찰했고. 그 사람, 그 브랜드의 말투를 더 치열하게 연구했고. 나아가 그 '좋아함의 대상'과 더 가깝게 만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더 고민하고 반성하고 뛰어들었다. 그러니 이 복잡다단하고 연쇄적인 과정 속에서, 자연히 내 '생각의 구조'가 변할 수밖에.
그 무엇도 좋아하지 않았던 '처음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는데, 좋아함의 과정에서 수백 번 넘게 깨지고 넘어지며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 어떤 돈과 성공을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오직 그 '좋아함'으로 몰입한 시간들이 나를 그토록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알게 되었다.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좋은 것들' 역시 모두 똑같은 원리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걸.
파타고니아는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이키는 '도전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조니워커는 '세상 속에서 성장하는 우리의 한 걸음'을 열렬히 응원해 왔다.
한마디로 이 모든 브랜드의 뿌리는 굉장한 시장성을 노렸다기보다,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한 '좋아함'의 감정이었다. 오랜 기간 실패하고, 보답받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잘 되지 않아도, 꾸준히 '좋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노동.
좋아함은 결국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는 무한동력'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좋아하는 순간, 인간은 생각을 시작하고. 그 생각은 구조가 되고, 그 구조는 다시 내 몸 안에 근육처럼 장착이 되어, 또다시 '좋아함'의 모드에 반짝반짝함을 더해간다는 것을.
그래서 친구들이 던진 질문. “넌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하는가?”에 대한 내 대답은 이것이다.
“좋아함을 통해 내 생각을, 내 우주를 확장하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그게 내가 매일 뭔가를 만들고, 또 계속 만들게 되는 이유였다고.
결국 '좋아함'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자, 가장 찌질한 감정이자, 가장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 무한동력이다. 누군가는 덕질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사명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브랜드라 부르지만, 그 이름은 솔직히 중요하지 않다.
'좋아함' 그건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빛나는, 우리 모두의 '생각동력'이다.
그러니 오늘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길.
“나는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좋아함을 어떻게 내 언어로, 일로, 세계로 번역할 수 있는지'
[생각편집숍 아이템 03 : 무한동력 덕질의 기술]
*생각도구 : '좋아함'이란 생각불씨
*효능 : 꺼져가던 생각도 다시 살리는 인간의 동력
*사용법
1️.어떤 대상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
2️.그와 관련된 세계를 끝까지 탐험한다.
3️.그 감정을 당신만의 문장, 일, 세계로 번역한다.
좋아함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심장이자 엔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