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집숍 아이템 05] 기세 장착 컨셉 주문
개그맨 박나래는 말했다. “인생은 기세니까요!”
특히 한여름 해변가, 하늘하늘한 파라솔 아래 빨간색 수영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기세'의 상징이었다. 유연하게 다리를 꼬고, 파도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모습은 한동안 세간의 화제가 되기 충분했으니까. “이것 봐요. 이렇게 압도하는 게 기세라니까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기세'는 여기서 한 가지 요소가 더 추가된다. 바로 '확실한 컨셉'이 존재하느냐는 것!
잠시 2025년 2월로 돌아가보자. 짧은 공백기를 뒤로한 채 '레이디 가가'가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폭발적으로 강림했다. 레이디 가가의 <아브라카다브라> 뮤직비디오는 공개 24시간 만에 재생 횟수 680만 회를 가볍게 돌파했으니. 이 짧은 시간 대중을 사로잡은 그녀의 콘셉트는 참으로 심플했다.
“춤추거나, 죽거나 (Dance or Die)”
실제로 <아브라카다브라>의 스토리는 명료하다. 인생이란 싸움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망설이다 무너질 수 있는 나에게. '지금 무대 위에서의 강렬한 댄스' 혹은 '죽음'밖에 없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
Abracadabra, amor. (아브라카다브라, 사랑)
Abracadabra, morta-oo-ga-ga. (아브라카다브라, 사랑, 죽음)
Feel the best under your feet, the floor's on fire. (발밑의 뜨거운 열기와 리듬을 느껴봐)
굳이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아도, 댄스 연습영상에서조차 그 '논리적인 컨셉'이 살아 움직인다. 행과 열을 칼 같이 맞춰 선 수십 명의 댄서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이얍!” 하는 기합과 함께 시작한 그들의 춤은 그야말로 한 동작, 한 동작에서 엄청난 결기가 느껴지니까.
코레오그라피처럼 몸을 자유롭게 꺾다가, 미처 다 뿜어져 나오지 않는 에너지는, 달달 떠는 손끝으로 미세하게 연출을 하는 그들. 특히 연습 영상에서조차 단 1도의 '헐거움'을 남기지 않는 레이디가가와 댄서들의 열정은, 어느새 본능에 가까운 원주민의 춤으로 이어지는데.
이쯤이면 이건 그냥 '춤'이 아닌 '브랜드 교과서'다. 기세로만 뭉친 '쇼'를 넘은, 강력한 '컨셉'의 메시지.
“아브라카다브라, 진짜 춤 아닌 죽음을 달라고!”
업계 친구들끼리 가끔 하는 말이 있다. “기세만으론 3개월, 컨셉이 있으면 10년을 간다”고.
한때 '소고기 패션'으로 충격을 줬던 푸릇푸릇한 뮤지션 레이디 가가는, 이제 어엿한 '컨셉 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처음엔 '기세'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제대로 된 논리와 철학으로 무장한 컨셉까지 있었던 경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엔 늘 '레이디 가가' 같은 고품격 장인들만 있는 건 아니다.
SNS를 타고 호기롭게 등장했다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스르륵 사라지는 브랜드들. 한때 월천만원 붐이 불며 “일단 시작하세요!”, “누구보다 먼저 지르는 게 답입니다!” 뭐 이런 요상한 캐치 프레이즈들도 많이 등장했던 것 같은데. 일찍이 이런 데이터들을 무수히 보아 온, 마인드마이너 송길영 님은 이런 사태에 시원하게 일침을 날리셨다. “제발 그냥 하지 말고, 생각 좀 하고 움직이라고요!” (심지어 이와 관련한 책도 있다)
기세는 '시선'을 끈다. 하지만 컨셉은 '마음'을 뒤흔든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브랜드 하나가 있었다. 바로 캐나다의 초콜릿 스타트업, 미드데이 스퀘어!
이 작은 초콜릿 브랜드의 시작은 간단했다. “우리는 초콜릿 회사가 아니라, 록밴드가 될 거야!”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 세 명이 뭉친 이 브랜드는, 처음부터 '기세와 컨셉'을 영리하게 조합한 케이스다.
실제 이들은 '록밴드 초콜릿'의 스토리를 과감 없이 보여줬다. 제품 개발의 실패담, 공장을 구하느라 거절당한 이야기. 심지어 세 명의 창업자들끼리 우당탕탕 싸우는 장면까지 전부 다 SNS에 올렸다. 말 그대로 거칠 것 없는 '록밴드'처럼 날 것 그대로의 '투명함'을 실시간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더 재밌는 건 초콜릿 공룡 '허쉬'와의 일화다.
“우리가 당신들 회사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북미 최대 초콜릿 제조사가 '혹' 하는 러브콜을 보냈을 때도, 이 친구들의 대답은 굵고 명확했다. “No, Thanks” 그리고 이에 살짝 앙심을 품은 허쉬가 미드데이 스퀘어에게 '소송 경고장'을 날렸을 때도 (미드데이 스퀘어의 오렌지색 패키지가, 허쉬의 특정 제품 패키지와 비슷하다는 이유) 이들은 대처는 참으로 남다르기 그지없었다.
“젠장, 우리는 입을 다물지 않을 거라고!”
실제로 그들은 7개월 동안 7만 달러를 쏟아부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제목은 <Chocolate Gone Crazy-A Hershey's Diss Track (초콜릿이 미쳐버렸다 - 이것은 허쉬를 조롱하는 트랙)>
특히 이 영상은 에미넴의 강력한 훅이 담긴 곡 <My name is>를 패러디한 것이었는데, 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미드데이 스퀘어'가 말하려는 것은 간단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려고 할 뿐이야. 누굴 흉내 내는 게 절대 아니라고!”
그러니 어느 누가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록 밴드'를 표방했던 그들은, 그 많은 사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마이 웨이'를 외쳤고. 이 담대한 기세와 컨셉의 조합에, 인스타와 틱톡에선 영상 175만 뷰라는 놀라운 대기록과 열렬한 응원이 쏟아졌다. “멋져! 대기업에게 굴하지 않는 당당한 너희들이!”
이후, 미드데이 스퀘어는 이 사건을 NFT 프로젝트까지 만들어, 자신들의 '반항 역사'를 깨알같이 기록했고. 보란 듯이 구체적 실적으로 날아올랐다. 2023년 기준, 연매출 약 3000만 달러. 하루 6만 개의 초콜릿 바를 생산하는 '초콜릿계의 록스타'로!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회사 밖에서 일을 할 때도 나는 대략 두 부류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 같다.
1.기세만 있는 사람들
-화려하게 등장한다
-3개월간 논리와 메시지 없이 혼자 난리를 친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진다
-아무것도 남지 않거나, 타인에게 뒤처리를 남긴다
2.기세+컨셉이 있는 사람들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 화려함에, '분명한 확신과 논리'가 있다
-매번 같은 철학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열렬한 팬이 된다
차이는 명확하다. 기세는 '출발'이지만, 컨셉은 '스스로 지속가능한 논리의 결정체'니까.
실제 레이디 가가는 매 앨범마다 “나는 나를 재정의한다”라고 말한다. 미드데이 스퀘어는 매 콘텐츠마다 “우리는 록스타처럼 투명하고 감정적이다”를 말한다. 그만큼 '컨셉'이라는 것은, 내가 꼭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마치 예쁜 사탕처럼 먹기 좋은 과자처럼 보기 쉽게 전하는 포장지다.
"그래, 컨셉은 단지 포장지잖아!" 이렇게 말했다면, 그건 당신만의 착각! 실제 그 '컨셉'을 도출하기까지 논리적 스토리의 장표만 수십, 수백 장 준비할 정도로 브랜드전략가들은 치열하게 일하고 있으니까. 아니 이게 비단 브랜드전략가들만의 이야기일까? 누군가에게 '나의 컨셉'을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잘 정리된, 절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논리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 자료를 쌓고, 빌드업해서, 가지치기를 한, 그 한마디의 정수가!
그러니 이쯤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컨셉'이 있어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그 '컨셉을 만드는 치밀한 논리와 고민의 과정'이 결국 그 '컨셉'을 성공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러니 이 모든 과정을 압축해 '컨셉 =성공의 주문'이라 해석해도 좋다. 마치 <아브라카다브라>처럼 계속 반복되는 주문. 그리고 그 주문은 나의 확신적 논리와, 그 확신에서 우러난 기세의 결합으로 결국 현실이 된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의 '사과 메시지' 때문이었다. 평소 정치적 쇼맨십에 익숙한 데다, 술자리 아부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그에게, 난 표면적으로 매번 '지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지는 사람'으로 결국 퇴사를 했다.
그의 전략은 꽤 간단했다. 내가 어떤 전략기획서를 내놓아도, “제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며 상사 앞에서 기세 좋게 날 묵살했고. 가끔은 내 기획서를 어설프게 베꼈는데, 이리저리 구멍이 난 '말도 안 되는 논리'들을 대단히 '말이 되는 것'처럼 호기롭게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냥 다 베끼라고! 왜 꼭 핵심만 놓치고 베끼냐고!)
그때는 그런 일들이 못내 아쉽고 화가 났었는데, 어느 순간 시간이 흐르며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시작되는 일들은 얼마 지속하지 못하고 쉽게 스러진다는 것을. 실제, 처음엔 화려한 입담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의 프로젝트는,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논리 없음, 동력 없음'에 무너지기 일쑤였고. 그러면 나는 또 고요히 상사에게 불려 갔었다. “이거, 네가 다시 해 보지 않겠니?”
결국 실질적으로 진 것은 늘 '그'였다. 단지 서로의 자존심과 이해관계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지 못했을 뿐. 그리고 무슨 바람인진 모르겠지만, 그가 내게 문자를 보낸 것은 '단 한 번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갑작스러운 사과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좀 망설이다가, 난 사실 답을 보내진 못했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무 짧아서, 혹은 너무 길어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버릴까 봐. 그래서 차라리 답을 보내지 않는 쪽을 쿨하게 택해 버렸다.
하지만 그에게 만약 '단 한 줄의 답장'을 보내야 했다면, 내가 담고 싶었던 진정한 속말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기세만 있다고 일이 추진되는 건 아니야. 제발 논리적 컨셉을 쌓으라고!”
기세는 시선을 끈다. 하지만 컨셉은 마음을 끈다.
기세는 화제를 만든다. 하지만 컨셉은 팬을 만든다.
기세는 3개월을 번다. 하지만 컨셉은 오랜 시간을 산다.
왜냐하면 컨셉이란, 누군가 오랜 시간 촘촘히 쌓아 올린 '생각의 결정체'니까.
그러니 오늘부터 레이디가가의 <아브라카다브라>라도 틀어놓고 나만의 주문을 만들어보자. 단지 '기세'가 좋은 주문이 아닌, '기세'와 '컨셉'을 결합한 나만의 주문을 촘촘히 구성해 보자는 거다.
물론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고민의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누구보다 선명하고 색다른 '나만의 컨셉'을 만들어 낸다.
[생각편집숍 아이템 05. 기세 장착 컨셉 주문]
*생각도구 : 기세에, 논리적 이유를 심는 뇌
*효능 : '일회성 화제'를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진짜 마법은 '명확한 논리'에 기반한 자신감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모든 주문은 꾸준히 반복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