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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Jul 27. 2022

맨발로 걷자

 3박 4일로 명상수련원에 다녀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연습이었다. 

 '쉼', '멈춤', '내려놓기', '바로보기'...

 우리는 무엇을 그렇게 많이 짊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그렇게 놓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을 그렇게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지, 아니 나는 무엇을 그렇게 많이 짊어지고 있는지...

 어떤 강사가 말했다. 

"자, 조금 있다기 제가 여러분에게 레몬을 하나씩 줄 거예요, 어때요, 바로 침이 고이지요?"

그랬다. 바로 침이 고였다.

"그런데 그건 그냥 한 말이에요."

그랬다. 레몬을 준다고 하니 레몬을 받지도 보지도 않았는데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모든 게 생각이었다. 생각만 하면 반사적으로 몸의 일부가 반응하는 것을 바로 체험했다. 그러니 우리가, 아니, 내가 짊어지고 있다는 짐이라는 것도 모두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이겠다.


 밥을 한참 먹고 있으면 종을 한 번 친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두 번 종을 친다. 종을 한 번 치면 먹던 밥을 멈추어야 한다. 두 번을 치면 그때 다시 밥을 먹어야 한다. 잠시 멈춰보라는 것.

 멈추면 보인다고 했다. 내 생각에 갇혀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멈추면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생각의 필터로 모든 것을 본다고 했다. 

 

 '쉼', '멈춤', '내려놓기', '바로보기'... 를 위해서 걷고, 듣고, 문지르고, 춤도 추고 눈을 감고... 그렇게 해보았다. 그래도 계속 출렁대는 마음, 계속 떠오르는 잡생각,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 쉬어지지 않는 마음...


 밥을 먹을 때는 밥의 맛을 느끼도록 하고, 걸을 때는 왼발 오른발 발바닥의 느낌을 느끼며, 음악을 들을 때는  소리를 따라가며, 문지를 때는 대나무의 촉감을 느끼며, 통나무가 내 몸을 누르고 지나갈 때의 통증을 느끼며, 춤을 출 때는 음악에 몸을 맡기며...

 나를 고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맡길 때 대상이 제대로 보인다. 그것을 순간순간, 언뜻언뜻, 불현듯, 난데없이 알아채고 느끼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다시 잡생각에 빠져들고 그 잡생각으로 인한 느낌에 빠져들고 만다. 

 잘 안되지만 해 보려고 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그냥 해보기로. 그러나 생각의 틀에서, 생각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또 하나의 집착이 되고 있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또 한 생각을 붙잡고 있는데, 그런 나의 생각은 끝이 없는데, 같이 온 일행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함께 온 일행은 3명. 그들은 틈만 나면 웃었다. 어쩌다 일행에 합류하게 된 나도 덩달아 자주 웃었다. 나의 습관대로라면 강의를 조용히 듣고, 강의가 끝나면 정해진 숙소에 들어와 가져온 책을 보거나 누워 있거나 그랬을 거였다. 그런데 일행을 따라다니다 보니 방에 들어갈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카페에 가고 사진을 찍고 산책을 했다. 산책을 하면서도 그냥 하지를 못하고 강의 때 배웠던 동작을 하면서 웃고 또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사진 찍은 것을 서로 보여주며 즐거워했다. 

 거기서는 나도 덩달아 재미있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들 덕분이었다. 

" 자기는 나를 만났으니 로또를 찾은 거야"

세 명 중 한 사람의 말이었다. 로또? 그녀를 만난 것이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웬 자신감? 그녀는 맨발 걷기를 전파했다. 지역의 맨발 동아리의 회장이었다. 맨발 동아리를 만들게 된 과정을 쭉 설명해주었다. 왜 맨발 걷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맨발로 걸으면 뭐가 좋은지를 신명 나게 설명했다.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건네줄 때의 기쁨을 맘껏 드러내며 같이 해보자고 했다. 강요는 아니지만 하면 진짜 좋다고 했다. 특히 내 귀가 솔깃해진 것은 3년째 불면증 약을 먹고 있는 친구가 맨발 걷기를 하면서부터 약을 끊었다는 얘기였다. 약을 끊었다고? 3년이나 먹고 있던 약을 맨발 걷기로 끊을 수 있었다고? 자기를 만난 것이 인생의 로또라고 했던 말은 자랑이나 자만심이 아니라, 맨발 걷기가 인생의 로또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럼 나도 해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불면증이 낫는다는데 못할 게 없지. 나는 5년째 지속되는 저 불면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서 수면을 돕는 건강보조제며 멜라토닌이며 우울증 약까지 섭렵한 상태였다. 물론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서 지금은 건강보조식품만 먹고 있지만, 잠을 위해서 날마다 하루에 만 보를 빠짐없이 걷고 있었다. 만약 만 보를 걷지 않으면 잠을 잘 자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만보를 채우고 있었다. 

 만 보를 맨발로 바꾸어 볼까? 그러기로 했다. 당장에 마음을 먹었다. 미루고 따지고 뭐 그럴 것이 아니었다. 같이 하자고 했다. 맨발로 걸은 것을 인증 샷으로 올리고 날짜를 세기로 했다. 당장 수련원 뒷산부터 올랐다. 산은 산책로로 다듬어져 있었지만 맨흙은 아니고 작은 자갈이 깔려 있어서 걷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막 산을 올라섰을 때의 느낌, 그것은 작은 자유였다. 생각해보지 못한 일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어쩌다 맨발로 걷는 것을 해보긴 했지만 잠깐 해보았을 뿐이고 이렇게 울퉁불퉁한 산길을 맨발로 걷게 된 건 처음이었다. 

신발이 아닌 맨 흙바닥이 발바닥에 와닿는 느낌은 묶였던 것에서 놓여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래전에 '바닥'이라는 소재로 시를 썼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잘 안되었다. 시를 읽어주던 사람도 뭔가가 있는 듯 하지만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그 시에서 나는 '교실 마룻바닥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와 바닥으로 내려앉는 그 한 조각의 환함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분명 뭔가가 있기는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와서 어렴풋이 몸으로 느껴지는 거였다.

 해방? 놓여남? 자유? 본질? 위로? 받아들임?, 그런 것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할까...

물의 바닥에 누운 수련 잎과 그 사이로 비쳐 드는 햇빛, 저 수련 잎이 참 편안해 보인다




사흘을 맨발로 산길을 걸었다. 약 한 시간 가까이. 날카로운 자갈도 있어서 발밑을 뚫어져라 보고 다녀야만 했다. 3박 4일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명상과 쉼을 연습했지만, 실은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이 더 많다. 산길을 다녔던 동료들은 에너자이저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이었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힘이 났다. 나도 남들에게 그런 사람일까? 아닌 것 같다. 나는 늘 심각한 사람이었고, 뭔가에 골똘히 빠져 있는 사람이었고,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성정을 쉽게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그런 나의 성질이 조금 거추장스럽고 지겹기도 하다. 나도 좀 밝고 환하게 가볍게 살고 싶다. 진지한 의미보다 경쾌한 발걸음이 좋다. 아니 의미가 없어도 좋다. 인생에 뭐 거창한 의미란 게 따로 없다는 말도 떠올랐다. 있지도 않은 의미를 찾아서, 아니 없는 의미를 만들어내려고 아득바득 살아왔다. 거창한 의미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 의미보다는 한 끼 밥이 더 소중하고, 의미보다는 하루의 잠이 더 소중하고, 의미보다는 내 마음의 평화가 더 소중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가 그 어떤 의미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오직 단순한 그것을 위해서 여태 몸부림치며 살아왔던가 싶기도 하다.  가볍게, 가볍게, 살자. 


 명상이 어디 있고, 쉼이 어디 있고, 멈춤이 어디 있고를 따로 찾지 말고, 그냥 경쾌하고 발랄하게 살자. 잘 안되면 은근히라도, 그렇게 해 보자. 3박 4일 동안 만났던 3명의 여자가 내 인생의 강사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매번 만나는 사람들이 인생의 쉼표이고 멈춤이고 비워냄일 수 있겠다. 


이제는 어디에 흙길이 있나, 그것만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흙길로 남아 있는 곳이 드물다. 시골길도 집이 있는 동네면 어김없이 시멘트 길이거나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등산을 할 수 있는 산도 등산길을 제외하고는 데크로 덮여 있는 곳이 많다. 평지 중에 흙으로 되어 있는 곳을 물색 중이다. 찾다 보니 인근 초등학교가 맨발로 걷게 조성이 되어 있어서 이틀째 가고 있다. 유달산과 입암산에 갈 수도 있겠다 싶다.  

 오늘은 어디에 갈까. 어제 갔던 초등학교에 갈까. 그런데 너무 땡볕이다. 그늘도 없는 운동장을 걷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럼 어떡하지? 가보지 않았던 동네 뒷산에 올랐다. 마침 해가 수굿해진다. 장마가 끝난다더니 진짜로 그런지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길은 산길. 무덤가의 풀이 무성하다. 솔잎이 떨어져 있고, 인근 밭에 거름을 뿌렸는지 큼큼한 냄새가 계속 따라온다. 중간중간에 개똥인지 짐승 똥인지가 시커멓게 놓여있었다. 그 위로 날아드는 똥파리. 사람들이 별로 오가지 않아서인지 거미줄이 머리를 헝크려 뜨린다. 나뭇가지 하나 꺾어 휘저으며 걸었다. 내려올 때쯤엔 모기가 급습해서 여섯 방이나 물렸다. 아, 참 힘들구나. 그러나 어쨌든 오늘 맨발로 만보 걷기를 완수했다. 

 

나의 해방 일지는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맨발로 만보 걷기.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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