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갈 수 없다.
1월 29일 로마에서 첫 환자가 (우한에서 이탈리아로 여행 온 중국인 부부) 나온 이후 2월 21일 북부의 작은 도시인 Codogno/코도뇨 에서 첫 이탈리아인 감염자가 발생하였다.
그 뒤의 걷잡을 수 없는 이탈리아의 상황은, 앞을 다투며 보도를 하던 한국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매체들 덕분에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곳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가장 큰 축제인 Carnevale/까르네발레 기간과 겹치기도 하였고 또 이탈리아 전역에서 Settimana bianca라 불리는 스키 휴가가 시작되는 기간이었기에 접촉과 이동이 늘어나 초기에 많은 감염자가 나오게 되었다.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2월 23일, 감염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던 Lombardia/롬바르디아 와 Veneto/베네토 주를 Zona Rossa/위험 구역으로 지정하고 학교 문을 닫았지만 결국 첫 대응에 실패하여 3월 4일에 이탈리아 총리 Giuseppe Conte는 이탈리아 전 지역을 위험지역으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격리 53일째.
코비드 19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짧은 시긴에 완벽하게 바꿔버렸다.
건축가이며 고등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마리오는 8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위해 집에서 7시 반에 나가야 하고 난 초등학생 딸을 준비시켜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야 하기에, 또 각자 학교를 가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는 아이의 기타 레슨과 롤러스케이트 수업이 잡혀 있어, 요 몇 년 동안 우리에겐 느긋한 아침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사치였다.
그런데 오늘로 53일째 늦잠 자는 생활을 하고 있다.
저녁 9시면 꿈나라이던 아이는 이젠 11시에 자러 들어가며, 낮에 요리며 집안일 그리고 아이에 시달리던 나는 새벽이 다 가도록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고민과 계획 사이에서 방황하다 늦게 잠자리에 든다.
처음 며칠은 새벽 6시 알람에 벌떡 일어나서 집 안을 방황하였지만 곧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그만두었고 이제는 혹 열 시 전에 눈이 떠진다고 해도 아이가 나를 깨우러 방으로 올 때까지 침대에서 기다린다.
일을 잠시 쉬며 집에 있으면 시간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마리오는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기에 나와 함께 집안일을 할 수 없으며 7살 딸아이는 많은 일에서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한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집안일과 육아에 매진해 본 적이 있던가?
아이와 많은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그저 감사해야 하는가?
아이와의 시간을 온전히 축복으로 여기고 누리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너무나 큰 짐으로 다가온다.
난 사실 살며 별 걱정이 없는 낙관주의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에 두 달의 격리 기간 동안 매일 아침 뛰는 가슴을 안고 일어난다.
지금 이탈리아에서는 조금씩 격리 해제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5월 4일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총리령의 발표가 있었다.
다음 주부터 집 근처에서 운동도 할 수 있고 아이들과 공원에 갈 수도 있다, 학교는 예상했던 데로 9월 학기부터 연다고 하지만 많은 회사와 자영업자들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동 제한령 사유에 ‘가족 방문’이 추가된다고 하니 아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기뻐해야 하나?
조금이라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에 이 소식이 반갑지만 우리 아이들이 마스크를 속옷처럼 챙겨 입어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기에 미안하고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