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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임팩트 Feb 16. 2021

휠체어를 타고도 마음껏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면?

홍윤희 펠로우 |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현재 펠로우가 하는 일과 변화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이야기합니다. 


홍윤희 펠로우는 2016년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 '무의'를 설립, 운영하며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휠체어에게 편하면 모두에게 편한 세상이 온다는 믿음으로, 시민들과 함께 이동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서비스화 하는 일, 그리고 이동권과 장애에 대한 인식 캠페인을 꾸준히 실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장애가 무의미한 세상, 
배리어 프리* 세상을 위하여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 사회생활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자는 의미


Q.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애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은 협동조합 무의 대표 홍윤희입니다. 


협동조합 무의를 함께 설립한 김건호 이사 ⓒ홍윤희


Q. ‘무의’하면 교통 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제 딸이 휠체어를 타거든요. 초등학교 갈 무렵 서울 상일동으로 이사했어요. 그런데 가까운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거예요. 당시에 민원을 많이 넣었어요. 해결되지는 않았지만요.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는데요. 2011년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환승을 하려는데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이 났더라고요. 역무실에 전화했더니 “어디 계세요?”라고 물어보면서 “계단 밑에 계시면 7호선에 연락해보시고 계단 위에 계시면 3호선이나 9호선으로 연락해보세요”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고속버스터미널 역이 3, 7, 9호선이 있는데 호선별로 운영하는 회사가 다 다른 거죠. 위치를 물어보는 이유가 책임 미루기 같아서 너무 화가 났어요. 그 일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제가 아는 어떤 기자 분이 그걸 신문에 굉장히 크게 다뤄주셨어요. 다음날 국토교통부에서 해명자료가 나왔죠. 그때 알았어요. 목소리를 크게 높여야만 무엇인가 바뀐다는 것을요


계단 밑에 계시면 7호선에 연락해보시고
계단 위에 계시면 3호선이나 9호선으로
연락해보세요.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휠체어를 탄 딸과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리프트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있는 수단을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는 휠체어 이동 경로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5년, 휠체어 이동 경로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어요. 처음에는 지하철 환승 구간에 휠체어 경로 안내 스티커를 붙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스티커 부착이 불법이라고 해서, 교통 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도 데이터 수집 중인 시민 자원봉사자 ⓒ협동조합 무의


Q. 지도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일도, 지도를 직접 제작하는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거 같아요. 


데이터는 수집하더라도 지도 디자인은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당시에 다니던 독서모임에서 고민을 토로했더니, 한 분이 “우리 학교(계원예대) 학생들 졸업 작품으로 프로젝트를 맡겨보자” 이렇게 제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016년 가장 환승이 어려운 역부터 총 18개 역에 대한 지도 작업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서울디자인재단을 통해 모집한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불편한 점도 기록하고 보완하면서 지도가 완성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휠체어의 눈높이에서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Q. 지하철은 세대 간, 교통약자 간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사실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지만 이제는 어르신들이 더 자주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 되었죠. 


네. 맞아요. 사실 지하철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이동 경로는 비단 장애인뿐 아니라 유아차 이용자, 목발 보행자, 어르신 등 모든 이동 약자를 위해 필요한 거죠. 


지도는 2017년 서울디자인재단 프로젝트를 통해 그 원형을 만들었고요. 2018년 정보화진흥원에서 후원하고 서울시 도심권 50 플러스센터의 50세 이상 리서처 분들을 모시고 지도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이 분들이 직접 휠체어로 타고 20개 이상의 지하철 역을 다니며 데이터를 모으셨죠. 


나중에 리서처 분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교통 약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게 되었는지' 항목에 100% 동의 답변을 주셨어요. 어떤 한 분은 추가 답변으로 본인이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며, "휠체어를 타고 휠체어의 눈높이에서 보니 그 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라고 적어 주셨더라고요. 


지하철 데이터 수집에 나선 서울시 도심권 50 플러스센터의 시니어 리서처들 ⓒ협동조합 무의


Q. 비장애인은 이동권을 절실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미 비장애인 중심으로 교통이 형성되어 있으니까요. 장애인, 교통약자에게 이동권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운전을 하는 모든 분이 첫 운전에 성공했을 때를 기억하실 거예요. '이 차를 몰고 어디에 가볼까?'라는 상상도 하게 되죠. 신체적인 이동의 자유가 확장되면 상상할 수 있는 정신의 영역도 확장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움직임, 이동이라는 것이 '자유'이자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제 아이가 가진 자유의 크기가 얼마나 작을지 휠체어를 타지 않는 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가끔 와 닿을 때가 있죠. 


예를 들면, 제 아이가 초등학교 때 소풍 가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소풍 갈 때 친구들과 떠들면서 가는 게 너무 좋은데, 이동할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다닐 수 없다는 거예요.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출구나 경로가 따로 있고 타야 할 차량이나 화장실 등도 제한되니까요.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거죠. 


첫 운전에 성공했을 때,
이 차를 몰고 어디에 가볼까
상상하게 되잖아요. 
이동이 확장되면
상상의 영역도 확장됩니다.

Q. 무의의 슬로건이 ‘장애를 섹시하게 만들기(Making disability sexier)’인데요. 관련된 캠페인이나 콘텐츠들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우리나라 장애인 비중은 전체 인구의 5% 밖에 되지 않아요. 게다가 장애인이 밖으로 나와 이동하기도 쉽지 않죠. 그러다 보니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수준이에요.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더 그렇죠. 아이들에게 친숙한 캐릭터가 장애인에 대한 경험을 대신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게 휠체어 탄 라이언 챌린지 캠페인이에요. 


처음에는 캐릭터 사진을 올리고 '#휠체어탄라이언챌린지'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었죠. 해외에는 이미 휠체어 레고나 세서미 스트리트의 자폐 아동 줄리아 등 많은 장애 반영 캐릭터가 있으니까 해시태그를 모아서 이모티콘이나 상품을 카카오에 제안하는 게 목표였어요. 


반드시 라이언일 필요도 없었는데, 대부분 휠체어 탄 라이언이나 휠체어 탄 펭수 캐릭터를 직접 그리고, 만들어서 올려주신 분이 많더라고요. 절반 정도가 손그림이에요. 캐릭터를 그리면서 이 주제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다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향상하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콘텐츠도 많이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서울 광장시장이나 광화문 같은 핫스팟을 휠체어로 가보는 영상을 만드는 거죠. 어디를 휠체어로도 갈 수 있는지, 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장애인들에게 유쾌하게 알려주는 영상입니다.


부산 무장애 여행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루들 ⓒ협동조합 무의


Q. 회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정말 많은 일을 하셨네요. 무의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없었나요?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포기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제 딸의 불편함에서 시작한 문제지만, 어떻게든 그걸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데 예상 못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막 튀어나오거든요.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한 번은 어떤 행사에서 무의 사업을 소개하는데 한 청중이 “이거를(무의 지도를) 왜 애 엄마가 만들고 있느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셨어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한다는 식으로 들려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공공기관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냐는 의도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공기관에서 이 데이터를 만들려면 데이터 수요가 많다는 걸 먼저 증명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수요를 만들려면 서비스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정보가 없으니까 이용하는 사람도 없고, 이동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죠. 없던 것을 만들기 위해서, 증명을 위해 누군가가 먼저 나서야 하는 거죠. 


협동조합 무의가 제작한 서울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맵 ⓒ협동조합 무의


딸 덕분에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더 얻었지만, 
그 후에는 더 넓은 세상과
문제 해결 방법을 알게 되었죠.


Q. 2021년에 무의에서 계획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게 있나요?


2021년에는 서울 지하철 역과 연결된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접근성 좋은 장소 정보들을 수집해 공공 데이터로 오픈할 예정입니다. 


Q. 마지막으로 활동의 출발이 되었던 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이런 일들을 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해요. 엄마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생색내지 말라고요. 


저는 무의 일을 하면서 단순히 내 딸의 문제를 넘어 굉장한 배움을 얻었어요. 처음에는 딸 덕분에 휠체어 눈높이의 눈 두 개를 더 얻었지만, 그다음에는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죠. 딸에게도 엄마가 하는 일을 통해서 더 넓은 세상과 문제 해결 방법을 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홍윤희 펠로우 인터뷰 영상



홍윤희 펠로우와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시다면,

https://www.kakaoimpact.org/fellow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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