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희 펠로우 | 리셋 대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현재 펠로우가 하는 일과 변화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이야기합니다.
최서희(활동명) 펠로우는 다양한 활동가들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비영리단체 리셋을 설립, 운영하고 있습니다. 리셋은 디지털이라는 공간에서조차 안전할 수 없는 여성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모든 활동가가 익명으로 디지털 성범죄 수사 공조, 정책 제안,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공간의
여성 안전을 다시 세우는 'ReSET'
Q.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비영리 단체 리셋(ReSET)의 대표 최서희입니다. 디지털 공간의 여성 안전을 다시 세우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리셋'이라는 단체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리셋은 ‘텔레그램 내에서 일어나는 성 착취를 신고하자(Reporting Sexual Exploitation in Telegram)’는 문장의 약어입니다. 아울러 영어 단어 ‘ReSET(재설정하다)’을 뜻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공간 내에서 잃어버린 여성들의 안전을 다시 세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Q. 2020년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어떤 활동이 있었는지 소개해주세요.
리셋은 2019년 12월 5일 처음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그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나 트위터 등에서 텔레그램 내에 디지털 성범죄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범죄가 수사되지 않고 있는지 의문을 가진 익명의 여성들이 모여 처음에는 ‘프로젝트 리셋'으로 활동했습니다.
텔레그램 내부의 성착취 단체방들을 찾아 잠입, 모니터링하고 신고를 진행했지만 텔레그램 측에서는 아무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경찰 신고를 하거나 조직적인 움직임을 만들지 않는 이상 해결이 어려워 보였어요. 조직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단순 모니터링 팀에서 5개 팀 체제로 운영하게 되었고 2020년 6월 1일 비영리 임의단체가 되었습니다.
2020년 4월 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이 발표되었는데요. 리셋이 주장한 내용들이 반영되기도 했으나, 현실적인 대책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입니다.
리셋은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경찰과 수사 공조를 해 검거를 지원하고, 신원 확인 시 피해자 대응, 그리고 법무부와 사법연수원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에 대한 브리핑과 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디지털 성범죄 근절 운동을 위해 대중의 관심이 필수적이므로, 이슈 파이팅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 인터뷰, 관련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저지선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Q. 리셋의 활동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디지털 성범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거의 모든 곳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자행되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공중화장실에서 마주하는 벽에 뚫린 구멍들, 남성 지인들의 갤러리에 몰래 캡처되어 저장된 여러 사진들, 뉴스와 주변에서 접하는 각종 사건들. 하지만 어떤 성별에게는 그저 상상 속 도시괴담에 불과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왜 같은 세상을 살지 못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디지털 성범죄는 가장 일상적인 여성 대상 범죄입니다. 디지털 기기와 우리 생활은 이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인구의 절반이 디지털 공간에서조차 안전하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리셋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저지선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는 퇴보하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이 후퇴하지 않게끔 노력하는 거죠.
Q.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리셋 초기의 활동은 매일 특정 채널을 모니터링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었어요. 현실 속에서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는 범죄를 두 눈으로 목격하는 일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다만 활동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사람들이 여성 대상 범죄와 디지털 성범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모니터링하던 채널 중 잼까츄방이 있었는데 잼까츄가 신상공개 조차 되지 않고 고작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2020년 3월 경에 이슈화가 많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나와 같은 다른 이슈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다소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Q. 모니터링 과정에서 많은 활동가가 심리적인 어려움을 느낀다고 알고 있는데요.
대리 외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타인의 외상 경험이나 장면에 노출될 경우, 그 트라우마가 보는 것만으로도 전해지는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 저희 활동가들도 이런 대리 외상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고요. 모니터링과 증거 수집을 담당하는 분들께는 상담을 지원하고 무조건 받으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관련 일을 하는 활동가분들을 무료 상담 지원하는 분들도 계세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Q. 활동에 대한 도움이나 지원은 받지만 리셋은 금전적인 후원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비영리라고 하더라도 단체를 운영하고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금전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활동에 후원을 하는 분들은 누구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성분들일 거예요. 그리고 이들은 현재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이거나 예비 피해자인 셈이기도 하죠.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이건 국가가 나서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범죄자들의 범죄 수익을 추징해서 해결해야죠. 게다가 여성은 남성 임금의 64%밖에 받지 못하고, 여성세와 안전세 등 지출 역시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 여성 대상 범죄에 후원을 한다는 것 또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정기 후원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나 최서희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Q. '최서희'라는 활동명을 쓰고 계시는데, 익명성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요?
리셋의 모든 활동가들이 익명성을 고수하는 이유는 개인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하는 남성들은 모두 익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죠. 우리 역시 익명이 되어 그 수많은 범죄자들에게 "당신 주변에 누가 리셋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리셋의 많은 '최서희'들은 다양한 직업, 사회적 위치, 지역,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길을 걷다가 스치는 어떤 여성이 '최서희'일 수도 있고,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 그리고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최서희'이기도 하고 또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Q. N번방 사건이 크게 이슈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감수성, 제도화의 필요성 등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도 싫었어요. 2차 가해의 말,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나 사안과 무관한 말들이 들려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하지만 활동을 계속하면서 느끼는 것은, 서서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리셋의 활동가들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이 일을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거든요. 최근 이를 크게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요.
지난 2020년 말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리마인드 영상을 제작했을 때입니다. 영상 제작팀이 저희가 전달한 인건비 전액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기부하셨더라고요. 이런 마음과 행동들이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했습니다.
Q. 2021년 리셋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디지털 성범죄 근절 활동은 사실 계획할 수 없는 활동들입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범죄가 발견되기 때문에 사안별로 집중해서 그때그때 맞는 액션을 취해야 합니다. 다만,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이슈가 장기화된 사회 이슈로 자리 잡는 것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이건 기성세대가 잘못된 메시지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호기심으로 그럴 수 있다'라는 잘못된 메시지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누구든 디지털 성범죄가 해서는 안 될 범죄라고 인식할 수 있게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열 명은 작은 물결만 일으키지만,
백 명, 만 명으로 늘어난다면
큰 파도가 될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먼저 익명의 활동가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개인의 삶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여성과 이후 세대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해요.
익명의 활동가 10명은 작은 물결만 일으킬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100명이 되고, 10,000명이 된다면 우리가 공유하는 메시지는 작은 물결이 아니라 파도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 안에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최서희'가 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최서희들을 응원합니다.
최서희 펠로우와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시다면,
https://www.kakaoimpact.org/fellow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