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번쩍하고 띄었다. 피곤했는지 어느새 그 북새통에 졸았다. 전철에서 꾸벅 졸다가 무엇인가 반짝이는 물체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청수사(기요미즈데라)가 있는 교토에서 숙소가 있는 오사카까지 돌아오는 길, 청수사에서 나오는 길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일본 전통 건물 사이로 떨어지는 선셋은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하와이 선셋과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일상 같은 친근감이 느껴진달까.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사위가 점점 어두워졌다. 스쳐오는 풍경 속 일본 전통 가옥에서는 하나둘 불이 밝혀지고 있다. 불빛보다 어둠이 더 진하게 내린 탓인지 내 시선을 빼앗은 그곳이 더 크고 화려해 보였다. 전철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보랏빛 불빛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대관람차의 존재는 밤이 되자 더 선명하고 명확했다. 어디쯤 있는 대관람차인지 핸드폰을 열어 볼 법도 한데, 어차피 오사카에 대관람차가 흔한 것은 아니니 당장 찾지 않는다고 해서 못 찾을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냥 뒀다. 반짝거리는 그 관람차를 꽤 오래 바라봤다. 건물에 가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1.5일을 보내며 정신력은 여러 번 나갔고(나는 폐소공포증이 심하다. 눈앞의 영상이 벽처럼 짓눌리는 것 같아 죽는 줄), 갓 돌아온 정신을 붙잡고 청수사라는 절에 갔는데, 이 여행엔 초등학교 2학년과 5학년 형제 조카가 동행해 있다. 내 의지보다 형제의 의지가, 형제의 컨디션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기에 내 정신은 여전히 반쯤 멍한 상태였을 게 불 보듯 뻔하다. 관람차를 보며 감상에 젖기도 잠깐. 그 와중에 하늘 구름이 용 모양이라며 얼른 사진을 찍어보라는 둘째 조카의 성화에 마지못해 찍으면서도 도통 모르겠다. 아이들 시선은 참 알 수 없다.
오사카에 잡아둔 호텔은 벙커 스타일로 된 가족 친화적 호텔이다. 기운이 다 빠진 채 호텔로 돌아오니, 투숙객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가 열렸다. 다코야키가 오사카에서 시작된 음식이라는데, 다코야키, 맥주, 차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것도 인당 하나씩 말이다. 인원수에 맞춰 다코야키를 받았지만 내 배에 들어간 건 맛보기 하나와 맥주뿐. 조카들에게 다 양보했다. 그들도 배가 고팠을 테다. 문어로 힘을 충전했는지, 정원에서 다시 뛰어노는 조카들을 보며 내심 부럽다. 힘들지도 않나? 동생과 나는 횡단보도 하나 건너 돈키호테 갈 힘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 뭐 너희가 즐거우면 괜찮아. 편의점에서 장 봐온 것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했다. 전혀 다른 식성의 입맛을 가진 형제이지만 일본 편의점에서 산 ‘면’ ‘밥’ ‘빵’으로 모두 만족시켰다.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 다시 관람차를 떠올렸다. 내 눈을 번쩍이게 할 만큼 크고 화려한 관람차였던 것처럼 조카들에게도 오사카와 유니버설스튜디오라는 세상이 그런 곳이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여행이지만 분주했던 내 마음에 잠시나마 위안을 안겨준 그 대관람차는 오사카 여행에 잊지 못할 모멘트로 남았다.
이 호텔을 예약했을 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조카들의 분리 수면이다. 한 번 동생을 편하게 재워보고 싶었다. 엄마 곁에서 자겠다고 우기면 방법이 없을 텐데 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대성공! 엄마 껌딱지 같은 형제는 갑자기 둘이 자겠다며 선언을 해버리고 침대 하나를 차지했다. 금세 다시 ‘엄마’ 부르며 곁으로 오겠지 싶었지만, 아침에 눈 뜰 때까지 둘이 잘 자는 모습을 보니 내 계획이 성공한 것 같아 즐겁다. 아이들보다 먼저 깬 동생이 그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이제 분리 수면을 시도해 봐도 되겠다며 말이다. 동생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여행이 더 선명해지고 명확한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다르게 찾아온다.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마주하든 불쑥불쑥 선명하게 떠오르는 보랏빛 대관람차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오랫동안 잊지 못할 오사카의 귀한 한 컷이 되었다. 때로는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보다 눈으로 마음으로 기억하는 그 순간이 오래 남는 법인데,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 그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