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셩혜 Apr 30. 2024

"언니, 엄마가 좀 다쳐서 지금 병원에 있어"

엄마가 다쳤다고 했다. 다친 엄마는 서울에 사는 내가 걱정할까 전화를 못 했고, 소식을 알린 건 동생이었다. 급한 일 정리해 두고 당분간 일정도 조율하고 친정에 가기로 했다. 2주정도 친정에 있을 요량으로 옷가지와 노트북을 챙겼다.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니려면 차가 있는 것이 편할 거 같아 차를 운전해서 이동하는 약 4시간가량이 평소와는 달리 마치 몇 배는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운전하는 동안 다짐한 건 ‘화를 내지 말아야지!’ 단 하나였다. 엄마도 다치고 싶어서 다친 건 아니었을 테지만, 딸인 내가 다친 걸 보면 화낼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파트에 도착해 주차하려는데 엄마가 답답했던 모양인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 중이었다. 뒷모습이 누가 봐도 딱 내 엄마다. 평소와 달리 왜 이렇게 작고 축 쳐져 보이는지. 팔에 깁스를 한 모습을 마주하니 한숨이 먼저 나왔다.

엄마는 차에서 내린 나를 보자마자 쉬지 않고 말했다. 인중에 난 상처 때문에 말하다보면 피부가 당겨서 아플 텐데,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변명하는 모습 같았다. 내가 잔소리할 걸 알기 때문에 사전 차단하기 위해 사고 연유와 자신의 생각을 자꾸만 내뱉었다.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불쑥불쑥 솟구쳐 오르는 감정에 ‘욱’을 여러 번 삼켰다. 얼굴은 코를 중심으로 잔뜩 상처 투성이었고 턱과 이마는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팔에는 깁스했고 움직이지 못하게 보호대까지 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러 가는 길 인도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수목 보호판에 걸리면서 얼굴도 어깨도 팔도 모두 다치게 된 모양이다. 횡단보도가 9초 남았다고 깜빡 깜박 불이 들어온 걸 보고, 건널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뛰다가 넘어졌다는 게 설명이다. 나도 횡단보도 9초 남으면 뛰어 가지 않는다. 근데 엄마는 왜 뛰었을까? 뭐가 그리 급하다고. 평소 느긋하게 다니는 성격인데 그날따라 왜 뛰었는지 끊임없이 자책했다. 자기반성은 필요하니 그건 괜찮았다. 내가 더 걱정이 된 것은 다른 부분이다. 혹시 본인이 이제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할까봐 하는 것이다. 엄마가 언제까지 젊은 엄마는 아닐 테니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순리이지만, 그래서 본인이 다치게 되었다고 여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사고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이미 벌어진 일이라 가타부타 말하는 것 역시 의미 없다는 걸 안다. 어쩌면 이만하길 다행이기도 싶다. 코뼈와 이도 괜찮았고, 머리나 다른 부위는 다치지 않았다. 어깨뼈가 세 가닥으로 부러졌다지만, 당장 수술보다는 4~6주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의사 말로는 뼈가 붙어준다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수술해서 좋을 게 없으니 되도록 시간 내 뼈가 잘 붙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뼈에 좋은 음식은 무엇인지 검색하고 집에 없는 것은 마트에 가서 잔뜩 사 왔다. 점점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여행 아니면 아플 때 옆에서 간호하는 순간인 것 같아 마음이 참 쓸쓸해진다.

     

친구와 여행하기 위해 담아둔 항공권은 결제 시한을 넘겼다. 여행은 다음으로 미뤘다. 내 집에서도 차리지 않는 삼시세끼를 엄마를 위해 차리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 해드리는 게 몇 번이나 될까 싶은 생각에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을 먹어본다.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주는 음식, 빨리 낫겠다며 잘 드시는 걸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