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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Mar 26. 2024

부엔 카미노 Buen Camino

친구가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의 그녀가 다닌 여행과는 결이 다른 코스를 나섰다.


작년 여름인가 가을인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녀는 할 말이 있다며 집에 있는 날 불러냈다. 그녀와 나는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어 종종 이렇게 서로를 불러낸다. 집 앞 스타벅스에서 만난 그녀는 아주 당찬 포부가 담긴 목소리로 “나 내년에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걸으려고 해!”라며 선언 같은 계획을 밝혔다. 여느 스타벅스처럼 사람으로 번잡한 이곳에서 그녀 얼굴이 마치 해처럼 밝아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공간의 모든 소음을 잠재우는 듯했다. 이미 정보를 꽤 찾아본 듯 이동 루트까지 알려줬다.  


이후로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걷기 시작했다. 체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는 산을 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던 그녀는 북한산 둘레길과 인근 산은 물론 겨울 한라산까지 다녀오는 등 자신의 여행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차곡차곡 성실히 여행을 준비했다.

https://www.pexels.com/

산티아고의 어떤 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을까.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는 그녀이지만 산티아고가 여행 리스트 상위 순위는 아니었을 텐데 무엇이 그녀를 걷게 했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그저 그녀의 여행을 함께 즐거워하고 좋아해 줬다. 그녀는 나에게도 괜찮으면 같이 걸어보자고 했다. 시간을 맞춰보자고 했다. 전체 일정을 맞출 수 없다면 일부라도 같이 걸어보자고.


이후로도 친구의 여행 준비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티아고의 들판 길처럼 막힘없이 진행됐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일정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장비를 추천받아 구매하는 등 여행을 앞둔 이의 즐거움과 설렘이 모든 순간에 담긴 듯했다.  


일정을 맞춰 일부라도 걸어보자고 한 내 마음은 친구의 마음과 달리 자꾸 이탈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걷는 걸 좋아하지만, 산티아고가 날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산티아고가 날 부르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찾지 못했다. 친구가 산티아고를 걷겠다고 하기 전 남편이, 친구 이후에도 여러 명이 내게 산티아고를 같이 걷자고 했다. 인생의 한 번 산티아고가 부르는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 다들 부름을 받은 것인가!


친구의 출발 날이 가까워지도록 난 티켓팅도 못했다. 오히려 이탈한 마음은 더 많은 가지치기를 했다. ‘이왕 여행을 가는 것, 평소 내 버킷 리스트 1위인 곳을 걸으러 갈까?’ 하니 그렇게 되면 친구와의 여행은 물거품이 된다. 2순위 ‘내가 걷고 싶은 곳을 걷고 친구도 산티아고 일정을 마친 뒤 만나 여행을 할까?’ 하니 항공 값이 두 배나 늘어났다. 늘어난 비용만큼 이동 시간도 배가 됐다. 3순위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여행한 후 친구를 만나 함께 남은 여행을 할까?’ 고민의 연속이었다. 친구에게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고 함께 답을 찾는 걸로 일단락되었지만, 여행 앞두고 이렇게 고민한 건 처음이었다.

3월 26일 아침, 친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출발했고, 난 친구가 처음 재미있는 일을 계획했다며 알려준 스타벅스에 앉아 오늘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스타벅스에 앉기 전 그녀의 남편과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앞으로의 여행에서 사용하겠다며 2018년 사둔 좋은 배낭은 그동안 제주도만 다녀오다 이번에 처음 해외로 간다며 들떠있는 그녀와 달리 남편은 물가에 내놓는 아이처럼 이것저것 당부를 했다. 물론 나도 몇 가지 당부를 더 보탰다.


친구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무엇을 버리고, 어떤 것을 채울지 난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길이 부르는 순간이 있다는 데 그녀가 지금 떠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40여 일 뒤에 만나 길 위의 펼쳐진 이야기에 대해 들어볼 날을 기다려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마주할 여정에 평화가 깃들기를. 부엔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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