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사람의 인생은 코미디 장르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간질거리고,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며,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니 말이다. 특히 연애 초기에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세상에 마치 단 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연애 초기였던 어느 날, 번화가에 위치한 유명한 닭갈비 가게에서 밥을 먹기로 약속을 잡았던 터라 급하게 집을 나섰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전날 밤부터 고민 끝에 고른 파스텔톤의 샤랄라 한 하늘색 원피스와 구두를 신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가게로 향했다. 가게 근처에 다 와가자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남자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약속한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메뉴를 주문 한 다음 입고 온 원피스에 혹시나 양념이 튀지 않을까 건네주는 빨간 앞치마를 목에 둘렀다.
역시나 이번 식사 메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매콤한 양념에 오동통한 닭다리살 그리고 그 위에 잔뜩 뿌려진 치즈까지. 완벽한 궁합의 음식이었다. 더군다나 닭갈비 양념에 버무려 나오는 라면 사리는 배부르지만 빼놓을 수 없는 단짝이었다. 사이드로 나오는 국물김치와 단무지는 매콤한 닭갈비를 더욱 감칠맛 있게 만들어 주는 비장의 무기였다.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먹고 싶었던 메뉴를 점심으로 먹다 보니 눈 깜짝할 새 철판 위의 닭갈비를 비워냈다. 그리고는 절대 빠질 수 없는 닭갈비의 정점 마무리 볶음밥까지 맛있게 해치웠다.
" 이제 나가볼까? "
맛있는 음식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가게를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입구에 위치한 카운터로 향해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벗어났다. 주말이라 길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우러져 주말의 열기를 더욱 달구었다. 전날 데이트 장소를 물색하던 나의 눈에 띄었던 카페로 이동하기 위해 십여분쯤 걸었을까... 남자친구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던 나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글쎄 빨간 무언가가 바람과 함께 나의 눈앞에 자꾸만 아른거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람이 너무 많은 터라 지나가는 사람의 옷이 나의 눈에 자꾸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계속해서 길을 걸어 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늘 분명 파스텔 하늘색의 원피스를 착용했고, 남자친구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와서 빨간색의 무언가가 보일리가 없었다. 내 눈이 이상하다고 하기에는 나는 라섹이라는 의료 기술의 도움을 받은 좋은 시력의 보유자였다. 머릿속에 많은 의문을 가지며 유명하다는 카페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눈앞에 아른거리는 무언가의 존재가 윤곽을 드러냈다.
" 악! 이게 뭐야??? "
지금도 생생하게 그날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계속해서 남자친구의 얼굴만 보고 길을 걷던 내가 고개를 아래쪽으로 내리자마자 본 것은... 눈앞에서 계속해서 펄럭이던 빨간 무엇인가의 정체는 바로... 앞치마였다. 닭갈비 집에서 닭갈비를 먹을 때 양념이 원피스에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목에 멨던 그 앞치마가 여전히 나의 목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서 바람과 함께 펄럭이던 존재는 00 주류라고 적힌 매장에서 입던 빨간색 앞치마였다.
나의 놀란 비명소리에 옆에 있던 남자친구도 내 시선에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는 나의 목에 걸려있던 앞치마를 발견하고는 두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져 버렸다. 우리는 짧은 순간 당황스러움, 신기함, 어이없음, 재밌음, 이상함 등등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번화가 거리의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황급히 목에 걸려 있던 앞치마를 벗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국물이 단 한 방울도 튀지 않게 하기 위해 목 뒷부분을 매듭으로 묶기까지 했던 앞치마가 바로 벗어질 리가 없었다.
남자친구도 정신을 차리고 내 목에 걸린 앞치마의 매듭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신기한 구경을 하듯 한 두 명씩 우리 쪽을 흘끔거리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앞치마를 벗으려고 노력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이목이 집중되어서 그런 건지 얼굴이 조금씩 빨갛게 달아올랐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겨우 목에 있던 앞치마를 벗을 수 있었다. 더 늦었더라면 웨이팅까지 있다는 유명한 카페에 앞치마를 멘 채로 들어가는 끔찍한 사태를 맞이했겠지...
앞치마를 겨우 벗겨낸 다음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흔하게 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연애 초기에 하게 된 것이다. 한참을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고, 이 추억은 우리의 연애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에피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현실로 복귀해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가져온 앞치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가게에 가져다 주기에는 너무 창피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가게가 소유한 자산이니 함부로 처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지고 간다면 도대체 뭐라고 말씀드리고 돌려드려야 하는지 막막함만 가득했다. 결국 우리는 도덕적인 선택에 따라 빨간 앞치마를 손에 들고 가게로 다시 향했다. 가게 앞에서 또다시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가게로 들어가 카운터에 계신 사장님께 앞치마를 건넸다. 나의 민망한 웃음과 함께 자조치종을 들은 사장님을 이렇게 물었다.
" 어? 앞치마를 어떻게 하고 나가셨어요? 나가실 때 누구라도 봤을 텐데? "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가게 안에 있던 사장님을 포함한 직원분들, 계속해서 함께 움직였던 남자친구, 그리고 당사자인 나까지. 그 누구도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 앞치마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상하리 만큼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 맹세코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날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단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세상에 정말 단 둘만 남겨진 것 같은 착각에 들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로맨스 코미디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죽음, 전쟁 등과 같은 극적인 요소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끼며 대리만족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로맨스에는 항상 코미디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 중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인생에는 갑자기 코미디라는 장르가 전개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미소를 짓게 되고, 사소한 장난에도 박장대소를 하게 되니 말이다.
이런 사랑에는 쥐약인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이때의 감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잊고는 한다. 상대방이 가진 단점에 집중하며 우리의 사랑이 더 이상 코미디 장르가 아니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빨간 앞치마를 떠올렸다. 이 사람과 행복했던 순간, 내가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잠긴 몽글몽글한 감정을 다시금 꺼내본다. 그러다 보면 다시금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 나는 여전히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