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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Aug 02. 2024

국회의원과 이름이 같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상대방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말의 힘

20대의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로 보냈던 나는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 하나를 꼽는다면 고객센터에서 근무했던 일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아르바이트는 몸을 사용하는 일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종종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고는 했다. 그렇게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나의 눈에 홈쇼핑 고객센터 상담원 모집글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보통 겉만 봐서는 내막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하고는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고객센터가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외부인이 겉에서 봤을 때는 쾌적한 환경에서 편하게 앉아서 전화만 받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그곳은 치열한 전쟁터와 같다. 특히 몇 년이라는 기간 동안 많은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통해 고객 응대라면 자신 있었던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어떤 일을 하든 첫 시작에는 두려움도 있지만 설렘도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고객센터에서의 근무에 가졌던 설렘은 정말 단 며칠 만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일하면서 처음 느낀 사실은 세상에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만 대화를 나누어서 그런지 소리를 지르는 일은 일상 다반사였다. 물건이 늦게 온다고 소리를 지르고, 반품을 접수해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상담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고객을 만나다 보면 소리를 지르는 고객은 괜찮은 편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 고객센터는 정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누구에게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는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고객을 만나게 되는데 실제로 내가 겪은 고객 유형만 하더라도... 오늘 착용한 양말 색상을 물어보는 양말 변태, 몇 개월 착용한 속옷을 막무가내로 반품 접수해 달라는 고객, 상담사에게 인신공격을 하는 고객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감정노동자의 업무 환경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특히, 지금도 생생한... 아니 평생을 잊지 못할 고객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고객의 목소리와 말투는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듯 나의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고객센터에 근무하면서 나는 어떤 불만을 표현하는 고객들은 어떤 이유가 있던 그 나름대로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말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고객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돕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내가 상담원으로서 하는 일의 직업의식과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전화가 연결되고 점잖은 목소리의 중년 남성이 여보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로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젠틀한 느낌까지 들 정도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어쩌면 내가 통화를 하며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경계심을 무너뜨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회사에서 정해진 스크립트대로 인사말과 함께 상담사를 소개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에 고객의 이력을 살펴봤는데 환불 기간과 조건에 맞지 않는 상품의 환불을 요청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미 이전 상담사가 업체에 직접 확인하여 환불 불가함을 안내했지만 계속해서 전화로 요청하는 듯 보였다.




" 혹시 본인 이름이 000이라고 하셨나요? "




나에게도 역시 환불을 요청하지 않을까 하던 나의 예상을 벗어나 고객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내가 상담사 소개를 하면서 말했던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정확하게 나에게 되물었다. 고객님께 네 맞습니다. 혹시 어떤 부분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나 역시 고객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되물었다.




" 본인 이름이 00 지역 국회의원이랑 같은 건 알고 계신가요? "




예상치 못한 대답, 아니 질문이었다. 이름이 엄청 흔하지도 그렇다고 특이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지역에 동명이인의 국회의원이 있는지 몰랐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고객의 질문을 아무리 곱씹어 봐도 해당 질문을 나에게 왜 하는지 이유를 파악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고객들 대부분의 본인이 가진 불만 사항이나 답답함을 상담사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교육을 받았던 터라 최대한 고객의 기분을 맞춰 대답했다.




" 아~ 그런가요? 저는 몰랐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떤 점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




" 아니, 이름은 국회의원이랑 똑같은데... 본인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요? "




그동안 서비스직에서 많은 근무를 하면서 감정노동에는 단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고객이 나에게 꺼낸 말은 욕설도 성희롱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말의 의도를 말투와 톤으로 충분히 유추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때 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말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말이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인생에 평생 씻을 수 없는 강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꽤 성실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이후 학비부터 용돈까지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수업을 듣고, 수업이 마친 다음에는 아르바이트에 가서 늦으면 새벽 한두 시까지 일을 하기도 했다. 대학 축제 한번 가보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나의 20대 초중반이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꽤 씩씩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고객의 말은 그동안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의 자존감을 바닥 끝까지 내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그 이후에도 고객은 무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에게 인신공격과도 같은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나의 탄생에 기뻐하셨을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나의 무능함과 노력 부족에 대한 대한 질책, 자신의 요구사항조차 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고객이 욕설을 쓰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상담원을 위협하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그리고 고객센터 사무실에 수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상담원은 랜덤의 고객에게 노출되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객이 먼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강제로 대화에 참여해야만 했다.




한참의 통화가 겨우 마무리되고 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애써 삼켜냈다. 전화가 밀리는 타임이라 일을 멈추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고 잠시 물 한 모금 마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나는 근무했던 고객센터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고, 이유 없이 두통이 찾아와 진통제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발버둥을 치더라도 나는 그 고객의 목소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까지도 때때로 나의 귓가에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는 한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말이라는 것이 무섭다. 생각 없이 하는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인생은 단순한 파동을 넘어 큰 지진으로 송두리째 무너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최근에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메신저를 보내거나 얼굴을 보고 대화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다음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자.




그때 나는 어떤 목소리 톤으로 말을 했는가?

그때 나는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말을 했는가?

그때 나는 상대방의 인생에 말로 어떤 파동을 남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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