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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Aug 08. 2024

꼬르륵 아닌 꾸웨엑

마음이 배고플 때 나는 소리

몇 년 전부터 나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민보다는 하나의 골칫거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배고픔을 느낄 때 배에서 꼬르륵이라는 소리가 난다. 나 역시 배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이라면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배에서는 꼬르륵과는 조금 다른 소리가 난다.




' 꾸웨엑 '




믿기지 않겠지만 내 배가 조금이라도 비어있기라도 하면 내 배는 강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내가 있는 장소가 어디던지, 나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얼마의 고민 끝에 내 배에서 나는 소리가 어떤 소리와 비슷한지 발견하게 되었다. 묘사하자면 돼지+개구리 소리의 중간쯤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비슷할 것 같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배의 소리는 종종 나를 꽤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어느 날 여름에서 가을이 넘어가는 시기쯤 나 포함 네 명이 작은 회의실에서 두 시간 정도를 업무로 보내게 되었다. 나는 이상한 배의 소리를 잘 알고 있던 터라 이 시간을 대비해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었다. 빵과 커피 그리고 과일까지 나름 푸짐하게 식사를 하고 온터라 큰 걱정 없이 업무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해야 하는 일이 많았던 탓인지 아홉 시가 조금 넘자 배에서 출출함이 느껴졌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것과는 별개로 움직임이 많아서 금방 배가 꺼진 것 같았다. 




10시부터 있을 미팅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나의 온 신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배에 집중되어 있었다. 자꾸만 배에서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른 준비를 마무리하고 그전에 간단한 무엇인가라도 먹어야만 했다. 본격적인 업무 시작 먹을 있는 다과의 위치를 스캔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빵 종류를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에 맞춰 시작하기로 했지만 다들 일찍 모이게 되었고, 예정보다 일찍 업무가 시작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다과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마음속으로 최대한 지금 무엇인가를 먹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암시를 걸었다. 아침에 내가 먹었던 빵과 과일과 커피를 다시금 떠올리며 충분히 배를 채웠으니 괜찮을 거라고 안심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거짓말을 한 듯이 조금 전까지 배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많이 움직인 탓에 잠시 일시적으로 배에서 허전함을 느낀 것 같았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오늘 나누어야 하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꾸.. 꾸웨엑 '




역시나 내 배는 자기주장이 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서 작은 비명 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그리고 배고플 때 배에서 곧 큰 소리가 날 거라고 경고를 주는 긴장감 있는 그 느낌까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테이블 위에 놓인 물을 최대한 조금씩 나눠 마시며 배가 제발 진정하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간절함을 외면하듯 배는 강력한 소리를 계속해서 내뿜었다.




'꾸... 꾸웨에에에에엑... 꾸웩'




당연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내 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는 눈치였다. 뱃속에서만 나타나는 요란한 소리라 밖으로는 들리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내 배는 지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지만 미팅룸은 고요하게 서로가 대화하는 소리로만 채워져 나갔다. 앞에 놓여 있던 생수 한 병을 최대한 조금씩 끊어 마시며 나는 얼른 이 시간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종교는 없었지만 이 시간이 빨리 끝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 그럼 여기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함께 있던 한 사람이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예정된 시간보다 약 10분 정도 일찍 마무리가 된 것이다. 나는 단 십 분이라도 일찍 배의 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나누며 재빨리 미팅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얼른 식당으로 이동해서 배고픔을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복도를 걸어갔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




옆 자리에 앉아 있었던 분이었다. 몇 달 전에 한번 만난 이후 오랜만에 업무로 다시 만나게 된 분이었다. 식사 이후에도 오후 일정이 이어져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고 웃으며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나의 온 신경은 최대한 빨리 음식물을 집어넣고 주장이 강한 배를 진정시키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저... 그런데 배가 많이 고프셨나 봐요. 배에서 소리가 많이 나시더라고요."




이럴 수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밥을 빨리 먹겠다는 생각에 식당으로 향하던 나의 귓가에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렸다. 아니, 내 배에서 난 이 엄청난 소리들을 다 들었다고? 그것도 옆 자리에서?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포효를 지르고 있었다. 나에게만 들리는 줄 알았던 배의 엄청난 소리들이 옆 사람에게도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였다니. 그 소리를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함께 공유한 꼴이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일단... 큰 소리로 최대한 길게 웃었다. 그리고는 이 상황에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 건지 머릿속을 재빠르게 회전했다. 하지만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나는... 나는... 너무나 이 상황이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아, 제가 정신없어서 아침을 못 먹고 나와서 그랬나 봐요! 제 배가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해요~."




뻔뻔함으로 밀고 나가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 여기서 내가 너무 창피해하거나 부끄러워하면 질문한 상대방도 민망할 것 같았다. 그냥 뻔뻔하게 최대한 웃으면서 내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그래서 일에 몰입이 어려웠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지만 먹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날이 상대방을 단 두 번째 보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 함께 식사한 자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분명 한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저 내 배가 오늘 나에게 안겨준 창피함과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내 배가 나에게 안겨준 가장 강력한 만행이다.




나는 자주 배고픔을 느낀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배가 유독 크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마음이 허전함을 느낄 때가 아닐까 싶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이상하게 음식을 먹어도 허전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 어김없이 배에서는 꾸웨엑 이라는 이상한 소리가 크게 울리고는 한다. 그동안은 이런 나에게 힘들어할 시간이 어딨냐고 스스로 다그치며 질책만 했다. 그래서 참고 참아온 내 배가 그런 나에게 이제는 제발 그만 하라며 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내 배가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꾸웨엑 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허전한 나의 배와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따뜻한 위로를 스스로 건네야겠다.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요즘 너무 바쁘지? 일이 많아서 고생하고 있는 거 알아.

스스로 한심하게 느끼지 마. 너는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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