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라고? 시험을 10번이나 응시했다고?"
내가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의 실패 횟수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익숙한 듯 놀란 반응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자격증 하나를 취득하기 위해서 도전한 횟수가 무려 10번 정도나 되기 때문이다. 왜 정확하지 않게 열 번 정도라고 이야기를 하느냐면 그 이상의 응시 횟수를 언급하는 것은 너무도... 창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두 자릿수를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놀라울 만한 기록이었고, 이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전 세계의 많은 대학생들이 그렇듯 졸업에 가까워질수록 취업에 대한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실 취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저 좋은 기업에 취업해야겠다는 막연한 목표를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참 잘못된 목표였지만 나는 일반적인 취업 준비 코스를 밟기 위해 컴퓨터 자격증 취득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돈을 아끼기 위해서 흘러가는 시간을 낭비한다고 했다. 이 시기의 나 역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취업준비생으로 알바를 하며 겨우 버티는 내가 학원에 몇 십만 원의 돈을 내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또래들보다 한참이나 뒤쳐지는 처참한 나의 컴퓨터 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런 나의 편협한 사고가 독학이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었다. 나는 그렇게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는 실력으로 과감히 컴퓨터 활용능력 1급 '독학'이라는 도전을 시작했다.
필기시험은 기출문제를 반복하고 개념만 외우면 되는 정도라 다행히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비교적 쉽게 필기시험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실기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당시 선정한 교재가 기초부터 자세히 설명해 주는 덕분에 이것저것 실습하다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라는 거만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동안은 어렵다고 멀리했던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해낸다는 사실이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곧 큰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엑셀에서 함수와 VBA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영문 타자를 써야 하는데 나의 타자 실력은 형편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나는 그동안 제대로 컴퓨터를 배워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어릴 때에는 필수 교육이 아니기도 했고, 배우지 않더라도 나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런 나의 오만한 생각은 대학교에서 수강한 컴퓨터 교양 과목에서 C+이라는 학점을 안겨 주었다.
그 이유는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나는 타자를 치기 위해서 엄지, 검지, 중지의 세 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 자판을 외우지 못해 정말 하나하나 다 본 다음에야 겨우 누를 수 있었으니 좋은 학점을 기대한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좌절감에 자격증 취득 포기를 고민할 때쯤 미리 접수해 놓은 시험 일정이 다가왔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여러 번 실습을 해봤으니 시험에 붙을 수 있을 거라고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첫 도전은 정말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이나 버렸다. 인적사항 확인이 끝나고 본격적인 시험이 시행되었지만 나는... 시험에 사용될 실습 파일을 열 수 조차 없었다.
왜 파일을 열지 못했을까? 이름 그대로 컴퓨터 활용 능력이 제로였던 나는 바탕화면이 아닌 새로운 저장위치에서 파일을 불러오는 방법을 몰랐다. 그 탓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용 엑셀 파일을 찾지 못했고 시험이 시작되고 20여 분이 되어서야 겨우 파일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문제를 풀 시간이 매우 부족해서 제대로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시험 직전까지 비장했던 나의 다짐과는 달리 큰 허무감과 함께 첫 시험을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충격의 패배를 맛본 뒤, 다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재시험을 접수했다. 그리고는 두 번째 시험날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다. 긴장이 너무 심하게 한 탓에 마우스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고 힘을 냈지만 역시나 파일을 늦게 열게 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엑셀의 매크로 문제까지 도달했다.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려 프로시저 작성을 위해 열심히 영문 타자를 입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 타 다다다 다닥 타닥타닥 타 다다다 다닥 타닥 '
엄청난 타자 소리가 옆 자리에서 들려왔다. 나는 한 자 한 자 확인 후 영문 자판을 누르느라 타닥... 타닥 정도의 타건 소리를 냈다면 정말 오케스트라 같은 화려한 소리가 시험을 치는 내 귀에 꽂혔다. 나는 자판을 치다 말고 살짝 고개를 돌려 옆 자리의 응시자를 바라봤다.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옆 자리에서 시험을 치고 계셨다. 그것도 휘황찬란한 타자 스킬과 함께...
결국 두 번째 시험도 탈락했다. 그렇게 나의 컴퓨터 활용능력 도전은 세 번, 네 번, 다섯 번...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도전이 이어지는 동안 매번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포기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정도면 학원을 등록해서 제대로 배울 법도 했지만 이상한 오기로 계속해서 독학을 고수하며 버텨내고 있었다. 결국 웬만한 학원비 이상의 비용을 시험 응시료로 날린 끝에야 겨우 겨우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내 실력이 갑자기 상승해서 합격했다기보다는 우연히 풀었던 기출문제가 숫자만 바뀐 채 출제되는 행운을 만나서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치고 있다. 물론 이제는 빠른 속도가 추가된 독수리 타법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런 내가 때때로 사람들에게 엑셀을 교육하기도 한다. 한 번씩 엑셀을 사용할 때마다 그 당시 시험장에서 봤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떤 계기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셨는지 모르지만 그 실력을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을지는 이상하게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물론 나보다 컴퓨터 실력이 훨씬 뛰어나신 분이었지만...)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도전을 고민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그분의 열정이 자꾸만 나를 채찍질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도전에 참여한다.
내가 원하는 도전이든 그렇지 않은 도전이든
도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도전은 우리에게 항상 같은 교훈을 준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긴 인생에서 나이와 도전의 횟수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