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메리 에이어스 <수치 어린 눈>
눈 맞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언젠가부터 사람들 사이의 눈 맞춤이 어색해졌다. 대부분이 스마트폰이나 자기 할 일에 집중할 뿐 사람들 사이의 눈 맞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는 어린 시절의 내가 인사 대장이었다고 종종 말씀해 주신다. 보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내가 아빠의 눈엔 참 흐뭇하셨던 것 같다. 그랬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낯선 이와의 눈 맞춤은 소홀해졌다. 매일 가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생과 눈을 맞추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할 법한데, 눈 맞추지 않은 채 감사하다는 말만 툭.
메리 에이어스는 <수치 어린 눈>에서 지속적으로 '눈 맞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아이에게 강렬한 감정적 현존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하면 엄마의 눈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현재 존재하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눈 맞춤은 더 이상 평범한 행동이라 볼 수 없다.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비범한 몸짓이다.
엄마와 아기의 눈 맞춤 속에서, 아기는 엄마의 눈 속에 안겨 있으며, 엄마의 마음속에 담긴다. 이 표현이 참 따스하다. 누군가와의 따스한 눈 맞춤은 내 존재가 타인에게 안기고, 담기는, 받아들여지는 감정을 느끼게 하다는 말이니까.
<수치 어린 눈>을 읽으며 내 눈 맞춤과 내가 보내고 있는 눈길에 민감해진다. 나는 가족들과 내담자들에게 어떤 눈빛을 보내고 있을지 돌아본다. 나의 눈에 그들은 안기고 있을까. 나의 마음에 그들은 담기고 있을까. 아니, 그들은 안긴다고 느끼고 있을까. 담기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누군가를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바라보고, 감탄하며, 마음으로 그를 담고 기도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는 우리 고등학생 아들을 눈으로 안아 주어야지.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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