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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Jun 29. 2023

여행이 즐거운 건 집이 있기 때문이다

feat. 존 볼비의 안전기지

애착 이론을 만든 존 볼비. 영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가인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참혹한 전쟁의 결과 런던에는 전쟁에 부모를 빼앗긴 고아들이 즐비했다. 볼비는 모성 경험이 박탈된 고아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들의 발달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 모성 경험이 박탈된 아이들은 정신적, 신체적 지체를 경험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이후 연구를 심화 발전시켜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애착 이론'을 고안해냈다.


볼비는 정신분석 이론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동물생물학, 발달심리학, 인지과학, 통제시스템 등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새로운 설명 시도했다. 그의 애착 이론은 대중화되어 알려진 내용보다 그 양이 방대하다. 그중 나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개념인 '안전기지' 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아이들 어렸을 땐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자주 갔다. 코로나와 함께,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진입하면서 자연스레 여행과 멀어진 일상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지금의 상태가 나쁘진 않다. 여행을 가기 어려운 현실을 수용하고 난 후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 보려 노력하고 있어서일까. 먹고는 살아야 하니 새로운 맛집을 발굴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매일 갈 수 있는 한강공원에서 일주일마다 달라지는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반나절 짧은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욕구가 소소하게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긴 여행에 대한 소망은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있다. 일상 속 짧은 여행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꿈꾼다. '언젠가는 산티아고를 걸어야지' 하고.


출처: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mrNvSPGBDk0?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



여행을 이토록 좋아하는 나이지만 여행이 좋은 건 집이 있어서다.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집에 돌아오고 나면 침대에 엎드러져 역시 집이 최고임을 느낀다. 호텔의 하얗고 보송보송한 시트가 우리 집의 낡은 시트보다 훨씬 훌륭하지만 그럼에도 집은 나에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볼비는 심리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아이는 기고 걷기 시작하면서 세상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위험투성이. 금세 취약해진 아이는 엄마에게 돌아온다. 아이의 안전기지로. 안전기지인 엄마의 품 안에서 충분히 쉬고 위안을 얻은 아이는 다시 세상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엄마를 떠난다. 아동기,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아이의 여행 기간은 더 길어진다. 그럼에도 그가 돌아와서 쉼과 충전을 할 수 있는 안전기지는 여전히 필요하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엄마와 안정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들은 엄마를 떠나서도 자신의 마음 안에 심리적 안전기지가 구축되어 있다. 엄마라는 내면화된 안전기지는 세상 여행 중 아이들이 불안해지고 취약해질 때 괜찮다고, 다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로. 마음 안에 그런 안전기지가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다.


볼비가 말한 안전기지는 어쩌면 '집'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호기롭게 세상과 부딪히고 깨져도 나에겐 돌아갈 home, sweet home.  볼비가 말했던 안전기지로서의 '엄마'는 대체로 육신의 엄마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엄마가 결코 안전기지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론은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그럴 땐 '엄마'는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될 수 있는 대상이면 충분하다. 때론 친구, 연인, 배우자, 조부모, 목회자, 상담자... 엄마가 될 수 없다면 신은 다른 이들을 통해 그에게 '집'을 지어 주시기도 하는 것 같다. 때론 신이 직접 키우시는 아이들이 사람 부모가 키우는 아이들보다 나을 때도 있으니까.


'엄마'에 대해... 좀 더 영적인 의미로 들어간다면 신앙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피터 로번하임 <애착 효과>에서도 애착은 신과의 관계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을 다수 인용하고 있다. 육신의 엄마보다도 더 근원적으로 나를 낳으신 분이 그 분임을 인정한다면, 하나님 이야말로 나의 심리적, 영적 안전기지이시며, 그 분이 거하시는 천국은 우리의 본향, 집이 된다.


최근 존경하는 미국의 존 켈러 목사님이 소천하셨다. 그분의 마지막 메시지가 오늘 더 마음 깊이 울린다.

"Send me home."


출처: 기록문화연구소 https://youtu.be/DZWPmZeHTic


@inside.talk_


https://insidetalk.oopy.io/


*함께 읽어보면 좋은 "애착" 관련 글 ^^


https://blog.naver.com/jeeum2021/222288120408

https://blog.naver.com/jeeum2021/222291254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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