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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Apr 24. 2022

1. 세상을 향한 첫소리

2022년 1월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우는 것이다. 

우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기 위해 유도 분만일 전 날에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을 했다.


결혼하고 5 년 만에 찾아온 우리 아이들.

난임이라는 어려움 속에 기쁨이 두 배가 되는 쌍둥이를 낳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날에는 이런저런 짐을 챙겼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입을 겉싸개, 속싸개, 물티슈 등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아내가 사용할 방석, 물컵 등을 챙겼다. 이렇게 물품을 싸는 것을 출산 가방이라고 하는 데 아직 잘 모르겠다. 아내는 여행 짐을 엄청 많이 싸는 버릇이 있다. 역시 출산 가방도 캐리어 두 개가 나왔다. 출산이 여행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여행, 또는 고난? 시련? 즐거움? 

내가 보기에는 그 정도는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오빠는 너무 모른다는 구박만 받고, 저리 가서 쌍둥이 카페에 글이나 읽어 보라는 핀잔을 들었다.

 

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는 코를 골면서 잘 자고 있지만 사실 난 너무 두려웠다. 대장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쌍둥이를 자연분만한다고 결정했다. 물론 우리를 담당하는 교수님이 자연분만을 응원하긴 했지만 난 제왕절개를 끝까지 주장했다. 

잘 자고 있는 산모와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남편. 뭔가 뒤 바뀐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랜만 푹잔 아내와 눈이 퀭한 남편은 대학 병원에 입원 수속을 했다.

아내가 다양한 검사를 받는 동안 입원실을 먼저 잡았다. 1인실을 원했지만 1인실이 없어서, 2인실에 입원을 했고 1인실이 생기길 기다렸다. 인터넷에 글을 보니 1인실이 아기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어서, 간호사 선생님께 1인실이 생기면 바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엄청난 금액이 들지만 까지것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마음에 질렀다.


어쨌든, 우리는 유도분만 전날 밤을 맞이했다. 


아내는 나에게

"오빠 내가 분만에 모든 과정을 남편이랑  한다는 것에  사인했어."라고 말했다.


모든 과정을 함께 할 생각이었지만 아내의 말을 들으니, 내가  분만 과정을 참여 안 할까 봐 손을 미리 쓴 기분이 들었다.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아기를 잘 낳기 위한 질액을 넣은 아내는 시간 단위로 몸의 변화가 있었다.


밤 12시.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근데 이 여자는 고통을 잘 참는 성격이라 참아 보겠다고 했다. 대단하다.


새벽 3시.

결국  못 참고 분만장에 갔다. 가진통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괜찮을 것 같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우리는 병실로 돌아왔다. 아내가 조금 괜찮은 것 같아서 아내의 아픈 흉내를 냈다가 혼이 났다. 남자는 아빠가 되면 철이 든다니까, 아직 철 안 든 행동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7시.

밤새 잠을 못 잔 아내는 유도 분만을 하러 분만장에 들어갔다. 진통 7시간이 지났지만 아내는 잘 참고 있었다. 우선 남편은 밖에서 대기했다가 들어오라는 말에 분만 대기실로 들어갔다.


아침 8시.

아내는 아파했다. 웃겨 보려고 노력했지만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그냥 미안했고 미안했다. 같이 호흡을 해보려고 했고,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는 말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손을 잡아 주는 것. 말없이 행동하는 순간.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다.


아내는 자궁의 입구가 열릴수록 힘들어했고, 난 옆에서 그런 아내를 지켜봐야 했다.


아침 9시.

아내가 무통주사를 맞는 동안 밖으로 나가 있었다. 무통주사를 맞은 아내는 한결 좋아졌다. 웃으면서 나를 반겨줬고, 난 웃음으로 화답했다. 농담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나중에 후회할 짓이라는 생각에 접었다.


아침 10시.

의사 선생님이 양수를 터드리고 유도 분만제의 양을 늘렸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힘을 주었다. 10초간 힘을 주고, 다시 10초간 힘을 주기. 아내는 아니 엄마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고통을 참아내는 것은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0시간 진통을 겪었는데도 아직도 이런 힘이 나다니.


아침 11시.

딜리버리.

의사 선생님 입에서 이 말이 나왔다. 이 단어는 분만장으로 이동한다는 단어이다. 진통의 마지막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마지막. 요새도 이 단어로 장난을 많이 치지만 이 당시에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었다. 난 분만장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했다.



아침 11시 5분.

아내는 최후의 힘을 내고, 나는 그 옆에서 손을 잡아 주었다. 다행히 드라마나 영화처럼 내 머리가 잡히지는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모발을 지켜준 아내가 고마웠다.


아침 11시 13분.

드디어 오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아내의 배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17분.

동산이가 태어났다.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울음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는 일이, 소리 지는 일이 우리의 첫소리이고 행동인데.. 성인이 돼서 우리는 왜 그렇게 울지 못 했을까.



난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삶을 보았다. 나의 삶에 후반부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난 눈물이 났지만 탯줄을 잘라야 한다는 말에 아기 옆으로 이동했다. 탯줄은 생각보다 이상했다. 약간 고급진 곱창을 자르는 것 같았다. 아내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물론 말한다면 혼나니까 가만히 있어야겠다.


분만실에서 정리가 끝나고 잠시 대기실로 갔다. 밖에서는 빵파레가 울렸다. 빵빠레가 울리는 화면에 아내의 이름 옆에 아기 1, 아기 2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신기하면서 눈물이 났다. 


아내는 회복실에 있고 귀여운 아기들은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수많은 전화를 했고, 우리 아이들의 태어남을 알렸다. 


2일간 잠을 못 잤지만 흥분 상태였다. 진정하고 싶어서 대학로 거리로 나가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 주변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다.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 부끄럽다. 


아이들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모아봤다. 나중에 아기들이 성인이 되면 보여주려고 모아 봤는데 보여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P.S :  백일이 되어서야 글을 올리는 이 게으름. 매주 글을 썼지만 이제부터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볼 지 모르지만 아기들 기록을 올해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려요. 매주 올려야 1년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우선 쓴 글을 매일 올려보고 다 올리면 매주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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