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에 나오는 입다의 서원과 딸의 희생은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입다 이야기를 잘 이해하려면 입다가 어떤 맥락에서 서원했는지, 그의 동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장신대 배희숙 교수는 ‘입다 서원의 새로운 접근 (A new approach to Jephthah’s vow: Antanaclasis (Judges 10–11))이란 논문에서 밝힙니다.
일반적으로 입다의 서원은 어리석고 성급하며 지나치다고 해석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충실했고,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보였다고 합니다. 입다가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딸을 희생한 것은 신명기 율법을 위반한 것이며, 그가 말씀에 충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과연 일반적으로 해석하는 입다의 모습만 있을까요? 다른 모습 혹은 다른 해석은 없을까요? 길르앗 사람이자 용맹한 전사였던 입다는 기생이 낳은 사생아라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배척당하고 고향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암몬이 길르앗을 침략하자 위급함을 느낀 고향 사람들은 입다를 찾아와 전쟁 지휘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입다는 싸움보다 먼저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그는 사신을 보내 암몬이 왜 공격하는지 묻습니다. 암몬 왕은 현재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땅은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입다는 이스라엘 역사를 길게 설명하며 자신들은 암몬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의 땅을 차지한 것이고 이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Claremont University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는 Tammi Schneider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입다가 이야기하는 이스라엘의 긴 역사는 암몬 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암몬 왕은 입다의 긴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입다는 자신이 추방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지도자임을 증명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를 잘 알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으며, 자기 민족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임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Schneider, p.173).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입다를 부르기 전에 여호와 대신 바알을 선택하는 죄를 범하여 암몬 족속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삿10:10-17). 입다는 이스라엘이 버린 하나님을 다시 회복시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입다에게 자신의 영을 주십니다(삿11:29)
입다의 조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 즉 이스라엘 공동체에 다시 속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께서 전쟁에 개입하여 승리하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할 때 그는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기로 서원하였습니다. 그는 희생제사를 통해 여호와의 언약을 세우고,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화해와 자신의 회복을 원했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Ken Stone 교수는 입다의 서원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아버지의 강력한 권한을 설명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아버지는 자녀들을 희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시키려 했고(창22장), 히엘과 모압 왕은 실제로 아들을 희생하였습니다(왕상16:34, 왕하3:27). 딸을 희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갈렙은 기럇 세벨을 정복하는 자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고(삿1:12-16), 사울은 골리앗을 물리치는 용사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삼상17:25). 모두 자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권한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입다 역시 고대 사회의 다른 아버지처럼 자녀를 희생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입다의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녀는 아버지의 서원을 몰랐을까요? 그녀는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집에서 나와 꽹과리를 치고 춤을 추며 입다를 맞이합니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서원이 성취 되어 가족간의 불화(입다의 추방과 배척)로 깨어진 공동체가 회복되는데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그 희생을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에 대한 찬양과 감사로 바꾸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아버지 입다가 공동체의 지도자로 온전히 서기를 소망하였고(입다의 회복),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다시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모든 공동체에게 ‘여호와께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온 몸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후일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입다의 딸을 기억하였던 것은 이 모든 뜻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집단적 기억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입다와 그의 딸 이야기는 깨어진 공동체의 회복이며, 그 공동체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의 회복이며, 여호와 신앙의 회복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용서와 속죄, 그리고 구속을 담은 희생 제사로서 아주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Stone Ken, Animal Difference, Sexual Difference, and the Daughter of Jephthah. Biblical Interpretation 24(1): 1–16. 2016.
Schneider J. Tammi, Judges. Berit Olam: Studies in Hebrew Narrative and Poetry. Collegeville, MN: Liturgical Press, 2000
Hee-Sook Bae, A new approach to Jephthah’s vow: Antanaclasis (Judges 10–11),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Volume 48, Issue 1, September 2023, Pages 3-17
https://youtu.be/PwFe30mAVHI?si=B7rbMiWiWG9_xp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