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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Mar 26. 2023

안녕, 깐순

지난주 일요일 아침 7시30분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어머니의 전화. 깐순이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있다고 한다. 전날 동네 개들과 밤새 싸우고 왔다고. 심장사상충 치료중이라 무리하면 안됐는데, 심한 무리를 했고 몸이 견디지 못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이라 눈물도 안났다. 몇십초 간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꿈이길 바랐다. 곧바로 안성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황망했다. 깐순이가 죽었다니...


안성에 도착해 차문을 열었는데 몽실이만 반기러 왔다. 깐순이가 나오지 않았다. 정말이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깐순이가 나와 격하게 나를 반겨주길 기대했다. 이제 그런 일은 없을것이다.


깐순이의 몸이 굳어 있었다. 다리에 피도 나 있었다. 한동안 죽은 깐순이의 몸을 붙잡고 흐느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굳은 깐순이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볕이 잘드는곳에 땅을 파고 깐순이를 묻었다. 풀잔디를 덮어주고 마침 만개한 산수유 꽃을 꺾어 올려줬다. 깐순이 생각이 나면 찾아올 곳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슬퍼본 적이 있을까.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을까. 자식이 죽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겪어 보지 못한 아픔이다. 엸심히 일을 하고 운동을 해도 그 순간 뿐. 깐순이 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후회가 밀려왔다. 내 잘못인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난 1월 뒤늦게 중성화수술을 시켰는데, 종합검사를 하다가 심장사상충 초기라는 걸 알게 됐다. 주사를 두차례 맞고 약물 치료를 하는건데, 이 기간 무리하면 안된다고 했다. 치사율이 5%라고 했지만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라고 생각했다. 안일했다.


3월초 주사를 맞추고 나서 깐순이가 힘들어했다. 잘견뎌내줄것으로 생각했다. 시골집에 풀어놓고도 알아서 안나가겠지 생각했다. 서울집으로 데려왔어야 했는데 서울집은 답답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 몸에 안좋을거라고 판단했다. 실수였다.


치료를 시작한지 2주만에 깐순이는 세상을 떠났다.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그전에 잘 관리했더라면, 서울집에 데려왔었더라면...후회가 밀려온다. 그래서 더 마음이 힘들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일상으로 100% 돌아가지 못했다. 깐순이와의 행복했던 추억과 미안한 마음이 겹쳐 마음이 아프다.


깐순이를 아끼는 마음에 비해 행동이 부족했다. 시골에서 자유롭게 사는거라고 합리화하며 서울집에 다시 데려오지 않았다. 세 달 동안 외국에 살며 못볼때도 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평소보다 훨씬 격하게 날 환영해주던 깐순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태어난지 두달을 갓 넘긴 철없는 아이를 데려왔던 날도 떠오른다. 원룸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키우던  분이 깐순이를 입양했는데 고양이를 너무 괴롭혀서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 파양했다. 티없이 맑고 해맑았던 깐순이는 나를 평생주인으로 받아들였다. 서울집에 같이 살며 사고도 많이 쳤다. 바닥에 있는 전깃줄과 신발끈을 다 뜯어먹었다. 두루마리 휴지라도 바닥에 놓고 외출했다오면 집은 그야말로 개판이 돼있었다. 안방 침대 위에 오줌을 싸고 그 위에 앉아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날도 있었다.


안성집은 깐순이의 세상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순하디 순했다. 깐순이(와 몽실이는) 깐순이네민박, 몽실이네민박의 마스코트였다. 하지만 깐순이는 개들 사이에선 깡패였다. 몽실이와의 기싸움 끝에 주도권을 가져갔고, 동네 개들은 깐순이에게 덤비지도 못했다.


너무나도 예쁜 아이. 시골집에서 산 기간 이 훨씬 긴데도 진짜 주인은 나였다. 아버지가 서운하게 느낄 정도였다. 깐순이를 보러 시골집에 더 자주가기도 했다. 집안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지만 내가 부르면 슬금슬금 아버지 눈치를 보며 들어왔다. 같이 등산했고 같이 산책하고 같이 달리기도 했다. 닭장에 가면 본능을 참으며 닭치기 개 역할을 자처했다. 나와 모든것을 함께 했다.


그런 아이가 나때문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이런 생각에 너무나도 괴로웠다. 일주일이 지났찌만 아직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내가 이상해졌다. 예민하고 불안해졌다. 슬픔과 화가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지난 일주일 간 모든 저녁약속을 취소했다. 마음의 힘이 없었다. 절망에 빠진 시간을 보냈다. 하필 3월23일은 세계강아지의날이었다. 밖에 나가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만 보인다.


세상이 날 위로해준다. 3월19일 그 날. 누나 식구들이 조문을 와줬다. 조카들은 삼촌을 위로해주려고'깐순이 생각날 때 보시오'라며 그림을 그려줬다. 내가 안돼보였는지 걱정됐는지 전화도 왔는데 눈물이 쏟아질거같아 받지 못했다.


새벽 운전하며 틀은 라디오는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소개했다.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라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나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과도한 생각이 문제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생각의 감옥에 가두고 있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도 소개했다. 나는 우울하다고 태도가 변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고 있었다.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도 고 김주혁 배우의 절친이었다는 배우의 사례가 나왔다. 공황장애를 겪고 우울증에 빠졌는데 친구가 죽은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회복이 안됐다는 것이다.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남얘기 같지 않았다. 내게 깐순이는 절친 이상의 존재였다.


한 친구는 나를 위로하며 병원에 가보길 권했다. 자신도 힘든 일을 겪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심리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에서 설명해준 해법은 자책하지 말고 '나는 강하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좋았던 추억들만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 누구보다 나를 좋아했던 깐순이. 내가 뭘 하든 언제나 내편이었던 깐순이. 깐순이도 내가 강하게 견뎌내길 바라지 않을까.


이제는 보내줄게 깐순아. 이제는 남아있는 내 사람들에게, 몽실이에게 잘해야 한다.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있을 때 잘하고 챙기자. 나도 건강해야겠다. 슬픔은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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