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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Sep 03. 2019

서른엔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이번 여름은 지낼 만했다는 한줄평을 입 밖으로 내보내면서 한 계절이 막을 내린다. 하늘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더 이상 습기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는 날씨. 정오의 뙤약볕이 따가울지언정 여름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온도차로부터 가을의 기척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서 너무 좋아!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눈살을 찌푸렸던 나는 어느새 마음이 한결 넓어져 우리나라 계절 변화를 칭찬하는 여유까지 보인다.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는 정말 나이에 비례하는 걸까?


20대를 맞이하던 그때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에 날개 돋친 듯 기뻤다. 더 이상 교복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시원섭섭함을 느꼈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능력처럼 다가왔다. 대학에는 전국에서 온 친구들이 저마다의 억양을 뽐내며 재잘댔고 염색이나 파마를 해도 ‘규정’을 들먹이며 혼내는 사람이 없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봤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 어둡기만 했던 취업을 향한 나의 노력도 결국엔 결실을 맺었고, 처음으로 내 통장에 새로운 규모의 돈이 들어오던 그 설렘도 생생하다. 나의 20대는 처음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정말 2배속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30대를 맞이하는 기분은 뭔가 달라도 많이 다르다. 새로울 거라고 해봤자 미묘하게 쳐지는 것 같은 피부, 건강에 대한 관심, 무슨 말만 하면 따라다니는 ‘더 늦기 전에’라는 수식어 등이랄까.. 딱히 달라지는 상황도 떠나보낼 것도 없다. 그저 더 이상 20대의 축에 속하지 못하고 진짜 어른의 집단에 들어왔다는 무형의 책임감만이 마음 한구석을 채운다.


그리고 이내 조급하다.

왜 그런가 보니 내가 그렸던 나의 서른은 이런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30이라는 나이에 대한 감각이 없던 시절에 그려서일까, 난 이쯤이면 무언가 특별하고 진지한 연애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직장에서는 맡은 일에 두각을 나타내며, 집이나 차 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결혼은 안 했을 망정 독립은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현주소는 어딘가?

독립은커녕 운전면허도 없다. 아직도 때때로 여동생과 이것이 네 옷이니 내 옷이니 얼굴을 붉히고, 회사일이 벅차던 어느 날 아침 엄마한테 회사 가기 싫다고 엥 울어버리질 않나, 주변에 결혼을 했거나 준비 중인 친구를 만나면 이내 조급해지고, 삶의 형태와 속도는 다 다른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3배속으로 지나간다면? 그리고 이내 40대를 맞이한다면? 그때 내가 느낄 감정은 지금보다 더 심각하고 우울한 거라면? 나는 앞으로의 내가 늙을 일 밖에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나면서 조급해진다.


글에는 반전의 묘미나 통쾌한 해답을 내보일 때 독자를 끄는 매력이 있는데 이 글은 반전도 해답도 없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아직 이 감정을 벗어던질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뿐더러 30대엔 어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삶의 지평을 넓힐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이 글은 좀 더 풍부한 내용을 담을 것이고, 서른을 맞이하는 친구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냥 내가 요즘 느끼는 감정을 토해낸 감상문이다. 가을바람에 힘입어 좀 더 드라마틱한 감상들이 얹어지긴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해도 그것들이 쌓이면서 분명 ‘나다움’이 짙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런 나 스스로를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 때문에 마음도 같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30이라는 숫자를 달았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20대라는 내 인생의 한 시대를 갈무리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여간 만만한 게 아니다. 결국 나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서른을 맞이하겠지만,


나는 나에게 뭐라도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조금씩 더 나다워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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