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 정신 깃든 Clubhouse의 고객 경험 글쓰기
이렇게까지 급물살 타며 유저 수와 인게이지먼트를 단숨에 확보한 소셜 플랫폼이 있었나. 클럽하우스의 초기 행보를 보면 SNS 고목 3대장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와는 확실히 다른 양상을 띤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는 리뷰 포스팅도 이미 그득하다. 지금까지 SNS 생태계를 거쳐 학습해온 '초기 선점의 중요성'이 한몫했으리라. 새로운 플랫폼이 열릴 때마다 유저는 진보한다. K-유저는 진보를 넘어 뭐든 장악해버린다. '아 이거 뜰 것 같은데, 내가 빨리 선점해야지'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우리의 K-유저는 벌써 저만치 앞에서 더 큰 수를 두고 있다.
클럽하우스는 그간 경험한 SNS 중 가장 심플하면서도 가장 어렵다. 우선 UI 화면에 최소한의 요소만 담아 극강의 심플함을 보여준다. 딱 필요한 만큼의 아이콘, 적당히 맺고 끊는 텍스트, 엣지를 주는 몇몇의 이모지뿐이다. 유저들의 프로필 사진을 제외하면 이미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화면 구성은 심플하지만 처음 보는 기능은 이상하게 많다. 방을 운영하는 방식부터, 지인의 지인들과 겉잡을 수 없이 대화를 트게 되는 구조, 대화하면서 타인의 정보를 바로바로 살필 수 있는 독특한 소통 방식은 어느 SNS에서도 경험해본 적 없다. 구구절절 설명해줘도 가늠이 안될 판에, 텍스트마저 제한적이니 이제 막 유입된 유저는 맨땅에 헤딩하며 배울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앱푸시가 떠서 무심결에 탭 했다가 의도치 않게 그 방에 들어간다든지, 어떤 방에서 손바닥을 눌렀더니 갑자기 스피커 석으로 등단한다든지. 몇 번의 '오잉?'을 거듭한 뒤에야 클럽하우스를 실수 없이 즐기게 된다. 쫄깃한 앱이다.
또 이렇게 서두가 길어졌다. 거두절미하고, 클럽하우스에서는 어떤 보이스앤톤으로 UX Writing을 하고 있는지 아래 열두 가지 피처로 살펴본다.
클럽하우스의 처음은 아이메시지에서 시작한다. 광고판이 되어버린 지 오래된 아이메시지에 웬 지인의 이름으로 초대장이 날아온다. 첫인사부터 쿨하다. Hey OO. 클럽하우스에 수신자를 초대하고 싶고, 메시지를 받은 그 휴대폰 번호로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내가 처음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팀장님, 폰에는 쿠팡 OOO님이라 저장되어 있다. Hey 뒤에는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을 기준으로 한글 2음절까지 담기는 듯 하다. 그렇게 팀장님에게 'Hey 쿠팡'이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괜찮다. 이것은 그저 초대장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누군가를 초대하기 전, 저장된 이름부터 확인하자. 첫 음절부터 욕이면 큰일이다.
모두의 프로필에는 누군가의 얼굴과 이름이 박제된다. 우리를 클럽하우스에 초대해 준 영광스러운 인물이다. 그 인물을 이곳에서는 Nominated by {이름}으로 소개한다. 아니 노미네이트라니, 시상식에서 후보자를 소개할 때 말고는 당최 본 적 없는 표현이다. 초대장을 받거나, 기존 회원에게 수락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는 방식이 '~로부터 지명됐다(추천받았다)'는 워딩으로 풀어졌다. 참신한 컨셉이다. 공로자를 커뮤니티답게 기린다.
여기에서 UX의 변주가 일어난다. 타깃은 인싸를 꿈꾸는 준비형 인싸. '인싸를 초대하면, 그의 프로필을 본 사람들은 나를 발견할 것'이라는 무언의 가설을 가지고, 초대장이 풀릴 때마다 주변 인싸들을 초대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타깃은 인싸 프로필에 박제되어 좋고, 클럽하우스는 잠재력 높은 인싸를 모객할 수 있어 좋다. 인싸에게 초대받은 사람마저도 본인 프로필 안에 어필 포인트가 생긴다. 이 정도면 모두가 행복한 일거삼득 UX의 탄생이다.
의역: 누가 클럽하우스에 합류할 가능성이 클까?
(만약 네가 초대한 사람이 가입하면) 그들의 프로필에서 네가 초대했다는 크레딧을 얻을 수 있어!
바로 직전의 노미네이트 사례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커뮤니티 활동에 거리낌 없는 인싸를, '크레딧'은 그의 프로필에 박제되는 영광을 의미한다. 바로 아래에서는 더 어마어마한 자극을 준다.
{count} friends on Clubhouse
클럽하우스는 프라이버시의 선을 간당간당하게 넘지 않은 수준으로 인싸 순위를 보여준다. 주변에 클럽하우스 유저가 많은 사람일수록 리스트의 상단을 석권한다. 여기에서 친구 숫자는 곧 트리거다. 초대하려는 사람이 딱히 정해져있지 않다면, 이 숫자는 초대장 보내기 좋은 사람을 판단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니 친구 수를 기준으로 내림차순 정렬한 건 상당히 의도적이다. 플랫폼 내 친구가 많은 잠재 고객은 그만큼 진입 장벽이 낮고, 지인들과 어울리며 쉽게 적응할 것이라는 가설이 반영됐을 것이다.
의역: 클하는 초대장으로 커나가는 플랫폼이야. (돌려 말하기) / 지금 넌 초대장을 모두 소진했지만 (현재 상태) / 방을 호스트하고 참여하면 (행동 유도) / 무의식중에 네 계정으로 초대장이 발급될 거야. (베네핏 강조)
4번 이미지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고객은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어 초대장 아이콘을 눌렀을 것이다. 초대장을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다시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채워지게 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글에서는 속 시원하게 가이드를 주지 않고 빙 에둘러 말한다. 애매한 가이드의 기저에는 클하만의 밀당 전략이 있었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니, 굳이 호스트(모더레이터)나 스피커를 하지 않고 리스닝만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초대장이 들어온다고 한다. 어떤 헤비 유저는 10회 이상 연달아 방을 개설해 모더레이팅을 했으나 매번 채워지는 초대장 수가 달랐고, 주기 또한 들쭉날쭉했다고 한다. 심지어 30개 정도 채워진 뒤로는 더 이상 초대장을 받지 못했단다. 유저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전략이다. 어느 시점에 생기는지 종잡을 수 없는 초대장, 더 많이 해야 채워질까 하는 마음에 더 활동하게 되는 심리. 클하를 파악할수록 좀 더 플랫폼에 핏해보이는 지인를 초대하게 되는 심리. 이런 교묘한 신경전으로 한 사람으로 하여금 30명 정도 초대됐을 땐, 어지간해선 잠재력 높은 유저들이 초대됐을 것이라 판단하고 발급을 중단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원문을 읽어보면 저 긴 설명을 한 문장으로 쭉 말하고 있다. 숨찬다. 캐주얼한 보이스앤톤을 살리며 둥글게 말하려는 의도는 보이나, 문제 상황과 그에 따른 피드백은 명확하게 안내해야 한다. 특히 첫 문장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다. '초대장이 없어 아쉬우셨나요?' 하며 헤더 카피로 짚어주고, 그 아래 '몇 가지 행동만으로 초대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하며 가이드를 준다면 훨씬 직관적으로 읽히지 않을까?
연락처에 등록된 지인이 클럽하우스에 가입하면 곧바로 알림이 뜬다. 가입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줄 법도 한데, OO 님을 환영해달라는 부탁부터 한다. 왜 그들을 환영해야 하지? 이유는 바로 뒤에서 설명해 준다. 그들은 이제 막 가입했고, 우리는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단다. 행동 유도를 앞단에, 상황에 대한 설명은 뒷단에 배치했다. 역시 누구의 말대로 인생도, 메시지도 두괄식이다.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이 클럽하우스에 가입하면 승인 대기 상태가 된다. 다른 서비스라면 운영자가 승인을 하겠지만, 클하는 기존 유저에게 그 권한을 돌린다. 대기 모드가 되자마자 클하는 그의 지인들에게 모두 알림을 보낸다. '네 친구가 대기리스트에 있으니, 네가 들여보내줘'. 친구와 클하의 부탁을 무시하지 않고 'Let them in!' CTA를 누르면, 곧바로 GNB 꽉 채운 모달로 귀여운 인사를 날린다. 별 거 아닌데 기분 좋아지는 멘트다. 우! 나도 고마웡!
처음 클하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들은 말 중 하나, 방을 개설하려는데 각각 무슨 성격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유심히 보면 CTA 위에 각 방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 문구가 적혀있다. 물론 저 문구만 보고서는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우나, 대략 어떤 구조인지는 파악할 수 있다. 다만 Closed 방의 경우 내가 초대한 사람 외에는 참가할 수 없으므로, 'only' 같은 강조가 있어도 좋았을 테다. (이후 다른 모더레이터가 타인을 초대할 수 있으나, 처음 시작은 오직 내 선택으로만 이루어진다.)
Open, Social 방과 달리 Closed 방의 CTA에는 'Choose People..'이 적혀있다. Open이나 Social은 혼자 방을 개설한 후 사람을 초대하거나 기다릴 수 있기에 얼른 방부터 팔 수 있도록 렛츠고를 질러버린다. 이와 달리 Closed는 특정 대상을 지목해야만 방이 생성되기 때문에, 렛츠고 하기 전에 대화할 사람을 찾는 게 먼저다. 방마다의 우선순위에 따라 CTA를 달리 두었다니, 디테일의 발견이다.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인상 깊은 텍스트를 묻는다면 두말 없이 Leave quietly CTA다. 쿨한 에티켓을 지향한다는 서비스 아이덴티티와 인사하지 않고 나가도 된다는 클룰(클럽하우스 룰) 정신을 완벽하게 담았다. 그러면서도 직관적이다. '서비스가 조용히 떠나랬으니까..' 하면서 굳이 인사하지 않고 나가도 되는 명분을 얻는다. 그럼 저 치즈(혹은 김치 혹은 브이)는 무얼 의미할까. 이모지 사전에서 찾아보니 미국에서는 보편적으로 Victory hand, Air Quotes, Peace Sign 이 세 가지 의미로 통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가장 매칭되는 건 Peace! 떠나면서 평화를 외치는 CTA라니.. 미쳤다. 기본형 노란 이모지가 아닌 미디엄 스킨 톤을 쓴 것도 분명 어떠한 의도가 담겨있으리라. 미국판 힙스터 정신이 여기 있다. PEACE✌
어떤 방에서든 마지막 모더레이터가 방에서 나가려면,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Leave quietly'라면 현재 있는 스피커들에게 모더레이터 권한이 주어지고, 'End the room'이라면 방이 그대로 사라진다. 헤더 카피에서 현재 상태를 설명했고, 서브 카피에서 조용히 떠난 뒤 벌어지는 상황까지는 안내했는데, 방을 닫은 뒤 상황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기존 다른 서비스로 학습해왔듯이 모더레이터가 방을 닫는다는 의미는 나를 포함한 구성원이 모두 방에서의 활동을 종료한다는 의미로 통하니까. 모든 선택지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예외 케이스 하나에만 집중해 주목도를 높였다. 그래도 처음 모더레이터를 경험하는 유저라면, 조용히 떠나는 것과 방을 끝낸다는 두 갈래에서 혼선을 가질 순 있겠다.
Upcoming 목록에는 캘린더로 미리 등록해놓은 방들이 나열되어 있다.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면 바텀싯을 띄워 바로 조인할 수도, 진행 예정이라면 종 모양 아이콘을 눌러 알림을 받을 수도 있다. 클하는 알림에도 공짜란 없었다. 모더레이터를 팔로우 해야만 알림을 받을 수 있다니, 팔로우 유도 한번 제대로 한다. 'Follow All' CTA를 누르면 모더레이터를 팔로우 하는 것과 동시에 종 옆에 체크 아이콘이 붙는다. 그렇다면 이미 모더레이터를 팔로우 하고 있는 경우에는 팝업 문구도 달라져야 한다. 오른쪽 화면은 모더레이터 4인 중 한 명을 팔로우 하고 있을 때의 상황이다. 이미 알림을 받을 준비가 됐다고 안내하고 있다. 더 선택할 사항이 없으니 'Sounds good'만 누르고 방이 열리길 기다리면 된다.
현재 활동 중이거나, 최근 활동한 팔로워들을 보여주는 'Available to chat' 리스트. 상단에는 온라인 상태의 팔로워가 떠있고, 그 아래 최근 활동한 시간 순으로 쭉 나열되어 있다. 타이틀을 '최근 활동한 팔로워'라든지 다른 말로 풀 수도 있었을 텐데, '대화할 수 있는'이란 표현을 쓰면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었다. 사실 대화는 팔로워 누구와도 가능하다. 열흘 전에 활동한 팔로워라도 내가 방을 만들어 핑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클하에서는 (뇌피셜이지만) 최근 활동 목록에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를 덧대어, 리텐션이 높은 사람들의 인게이지먼트를 더 활성화시키는 듯 보였다. 활동 빈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핑 하면 바로 확인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까지 고려해 쓴 카피일까. 이쯤 되면 클하의 주요 지표는 방 생성 개수인 걸까. '채팅 가능'하다는 타이틀이 '최근 활동'보다 실제로 더 많은 방을 생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지 한번 A/B 테스트 해보고 싶다.
난 앱을 다운 받을 때 알림 설정을 켜 두는 편이다. 혜택에 대한 관심보다도, 가끔씩 어떤 카피로 유혹하나 들여다보면 재밌으니까. 주변을 보면 알림이 하루 종일 징징 울리는 데 피로도를 느끼는 케이스도 상당하다. 그런 경우 보통 앱을 설치할 때 알림을 허용하지 않고 쭉 조용히 앱을 잠재운다. 클럽하우스는 알림이 9할인 앱이다. 앱을 설치할 때 습관적으로 알림을 꺼두는 사람이라면, 클럽하우스의 묘미를 반 정도만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기본 세팅에서 알림을 꺼둔 경우, 앱 설정 화면에 들어갔을 때 위 화면과 같이 아련한 문구를 보게 된다. 저 말에 약간의 감정을 담아보면 이런 느낌이다.
"노티피케이션 없이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방이 열려도, 클하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어도 전부 알려드릴 수 없어요.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시켜줘요 당신의 명예 알림왕."
한 번도 알림을 켜둔 적이 없었다면, 며칠 동안만 살짝 켜보자. 알림 폭탄이 두렵다면 제일 낮은 빈도로 설정해두면 된다. 나 역시 가입한 지 3일차 되는 날부터 Very Infrequent로 설정해 (클하와) 나름 분리된 삶을 보내고 있다는 팁을 전한다.
클럽하우스를 한바탕 살펴보니, 기존 UX Writing 규칙에서 벗어난 카피가 꽤 많았다. 심플한 UI, 유례 없던 기능, 힙앤쿨(...) 보이스앤톤에 기인해 원칙을 따르지 않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리뷰도 점점 UX Writing보단,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분석에 더 가까운 내용을 담게 됐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클럽하우스 UX Writing 한줄평으로 마무리한다.
내게.. 클럽하우스 UX Writing이란..? (아련)
UX와 그로스해킹의 절묘한 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