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만드세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란 Feb 08. 2021

제조와 서비스의 경계를 허물다,  인라이튼

로컬리콜 시리즈 토크쇼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ep.6 (마지막 회)

인터넷 후기로 입증된 가전제품 수리 서비스 배터리뉴는 특히 무선청소기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무선 청소기 완전 부활!” “해외직구 다이슨 심폐소생 성공!” 등 진심가득한 후기의 배경에는 배터리뉴의 독보적인 강점이 있다. 수십 년 경력의 수리장인의 기술력으로 수리 품질을 보장할 뿐 아니라, 센스 있는 클리닝, 인터넷을 통한 간편한 수리 접수 등 서비스 품질까지 높였기 때문이다. 12월 22일 로컬리콜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6회에서는 매력적인 수리 서비스 배터리뉴를 만든 소셜벤처 인라이튼을 만났다. 특별히 6회는 코로나 상황을 반영하여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시리즈 마지막인 만큼 스태프 모두가 참여해 색다른 화면을 연출했다.



솔루션 관점에서 세상을 밝히는 기업, 인라이튼


ENLIGHTEN : 1. (뜻을) 밝히다 2. 빛을 비추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인라이튼은 사회적인 문제를 비즈니스로 풀어,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빛을 비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셜벤처다. 인라이튼이 풀어가고자 하는 핵심적인 문제는 에너지와 환경 문제이다. 대학원에서  제품 서비스 통합시스템(Product-Service System)을 전공하던 시절, 신기용 대표는 세계 경제 불평등이 에너지 불평등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고 에너지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처음에는 제품으로 접근했다. 아프리카에 보낼 태양광 램프를 개발해 2013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상까지 받았지만, 제품 사업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유휴 배터리를 재활용한 BETTER RE ⓒ인라이튼

이후 신기용 대표는 보다 가까운 곳의 문제로 시선을 옮겨왔다. 그의 눈에 것은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버려지는 수많은 배터리였다. 1~2년 정도밖에 안 되는 휴대전화 교체주기에 따라 버려지는 배터리에는 80% 정도의 유효전력이 남아있었다. 인라이튼은 이렇게 버려지는 배터리들을 간단히 체결해서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배터리 케이스 배터리(BETTER-RE)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킥스타터에서 약 1억 원 정도를 펀딩 받았고, 40여 개국의 언론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아마도 제품 자체보다도 환경적 메시지에
공감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요즘 코로나로 더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기후변화, 환경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5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거죠


BETTER-RENEW: 다시 쓰는 더 나은 방법


하지만 배터리(BETTER-RE) 사업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휴대폰이 배터리 일체형으로 바뀌었고, 보조배터리로는 도무지 이기기 어려운 경쟁사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배터리(BETTER-RE) 사업을 통해 환경적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절감한 신기용 대표는 이를 보다 본질적으로 풀기 위해 고심했다. 당시 그가 발견했던 문제가 바로 전자폐기물(E-WASTE) 문제였다.

인라이튼의 리페어 서비스 BETTER REnew ⓒ인라이튼

2020 The Global E-WASTE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의 연간 전자폐기물은 약 5,360만 톤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7년 당시 2019년 예측량이었던 5,230만 톤을 초과한 양으로 전자폐기물 문제가 빠르게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1인당 배출량이 약 15.8kg로 나타났는데 이는 세계 평균(7.3kg)의 2배를 훌쩍 넘는 수치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양의 전자폐기물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활용되는 양은 단 16%에 불과하다. 나머지 84%의 폐기물은 소각 혹은 매립되어 재앙과 같은 기후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전자폐기물 문제를 풀어보는 차원에서 그가 시작한 것이 리페어 서비스인 배터리뉴(BETTER-RENEW)이다. 전자제품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고쳐 쓰는 활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선택받는 ‘수리’ 비즈니스


고쳐 쓰는 게 좋다는 사실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죠.
막상 고쳐 쓰자면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수리비용이 새 제품 사는 것보다 비싸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리 과정을 믿기가 어렵죠
다시 쓰는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한다는 차원에서
서비스명을 BETTER-RENEW로 짓게 되었어요

 

서비스 개발과정에서 신기용 대표는 보조배터리 사업을 통해 얻은 교훈을 되새겼다. 바로 시장에서 선택받는 제품 혹은 서비스가 아니면 아무리 좋은 가치를 이야기하더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환경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대신, 소비자가 수리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할 때 겪는 일상적 불편부터 파악했다. 덕분에 신뢰할 수 있는 기술, 합리적 가격, 간편한 사용법의 삼박자를 갖춘 서비스 배터리뉴(BETTER-RENEW)가 탄생할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sNEonlFVg4

배터리뉴의 수리 서비스 ⓒ인라이튼 유튜브


▶ STEP1 기술장인과 함께 하는 21세기 전파사


배터리뉴 개발 첫 단계에서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수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신기용 대표는 어린 시절 동네마다 있었던 전파사를 떠올렸다. 이제는 사라진 전파사의 수리공 분들은 어디 있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용산, 세운상가, 성수동 등 기술장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을 바쁘게 찾아다녔다. 각고의 노력 끝에 3~4명의 기술장인이 인라이튼에 합류했고,  현재 믿음직한 수리 서비스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STEP2 간편한 모바일 비대면 서비스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전파사를 이용할까?” 21세기 전파사를 설계하면서 신기용 대표는 전파사가 다시 생긴다고 해도 사람들이 직접 방문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온라인 상거래 방식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택배시스템을 이용하면 전국에 서비스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 결과 모바일로 간편하게 신청한 후 배터리뉴 전용 안심박스에 담아 보내면, 다시 집에서 새것처럼 재탄생한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현재의 서비스가 완성될 수 있었다. 비대면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해둔 덕에 코로나의 습격에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STEP3 수리 양산 라인의 탄생


경쟁력 있는 배터리뉴 서비스는 빠른 속도로 입소문을 탔다. 특히 AS 서비스가 마땅히 준비되어 있지 않던 직구 가전 소비자들로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직구 가전의 경우 대체로 고가의 제품들이 많았기에 믿을 수 있는 수리 서비스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몰려드는 물량을 수리장인 한 두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 다른 문제를 직면한 신기용 대표가 내놓은 솔루션은 ‘수리 양산화’였다.


배터리뉴의 수리 양산 라인 ⓒ인라이튼

먼저는 가장 잘 고칠 수 있고, 수요도 많은 청소기, 공기청정기 등 환경가전을 주력 제품군으로 선정했다. 그다음 숙제는 기술장인과의 소통이었다. 설명하기 복잡한 수리기술을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 장인들도 수리되어야 하는 물건이 계속 쌓이다 보니 하나 둘 일을 넘겨주기 시작했다. 신기용 대표는 이렇게 하나 둘 넘겨지는 간단한 공정을 놓치지 않고 정리해 체계화했다. 그 결과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주니어 기술자들이 순서에 따라 고칠 수 있는 수리 양산라인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양산 라인을 통해 배터리뉴는 하루 100대의 청소기를 수리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STEP 4 고객의 관점에서 진화하는 서비스

배터리뉴 서비스의 진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서비스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한 예로 배터리뉴는 제품 수리에 들어가기 전과 후에 제품의 입출고 과정을 모두 촬영하여 고객에게 전송한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제품의 무사 안위를 모바일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고급 가전을 멀리 보내는 고객들의 불안함을 헤아린 것이다. 이 외에도 전용 안심택배 박스 마련, 수리 비용 투명하게 공개, CS센터 운영 등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서비스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확산되는 임팩트, 확장되는 비즈니스


신기용 대표의 생각대로 배터리뉴를 더 많은 소비자가 이용할수록 환경적인 임팩트는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다. 그가 LCA(전 과정 평가) 분석을 통해 추산한 바에 따르면, 무선 청소기 1대의 사용주기를 1주기 늘렸을 때 약 65kg의 CO2가 절감된다고 한다. 이는 소나무 10그루 정도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은 수치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인라이튼은 수리를 통해 벌써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것과 같은 임팩트를 만들었다.


배터리뉴 서비스가 만든 환경적 임팩트 ⓒ인라이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가 성장하면서 고용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3명이서 시작한 인라이튼은 현재 28명의 직원이 재직 중이다. 이중에는 기술장인과 마이스터고 출신 청년 장인도 포함되는데, 이 둘 모두 인라이튼을 통해 기술 전공의 강점을 십 분 활용해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비즈니스의 범위 또한 점차 확장되고 있다. 당초 인라이튼의 배터리뉴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 서비스로 기획되었다. 그런데 미쳐 AS를 고려하지 못한 가전제품 유통사, 신박한 제품을 만들었으나 AS 서비스까지 제공할 여력이 없는 스타트업 등 배터리뉴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기업 고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기용 대표는 이러한 요청을 놓치지 않고 유통사를 대상으로 한 인라이튼X,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AS스타트, 중고 판매를 대상으로 한 AS 세컨드 등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리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뉴의 B2B 서비스 ⓒ인라이튼


리페어 카페 할 때 수리하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또 한 번 리페어 카페에 왔던 아이들은 재차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 번은 강아지가 아끼는 인형의 발을 물어뜯어서 그 인형을 고치려고 온 아이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3d 펜을 이용해 엉성한 발을 만들어 고쳐줬는데, 그 아이가 정말 기뻐했어요. 이런 경험을 직접 한 아이가 컸을 때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 모두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bHHWEzZupeE

리페어시티, 서울 프로젝트 소개 영상 ⓒ인라이튼 유튜브


소셜 임팩트를 강화하기 위해 비즈니스 확장뿐 아니라 문화적인 활동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먼저는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물건을 고쳐볼 수 있도록 리페어 카페[1]를 도입했다. 리페어 카페는 수익성이 낮은 제품도 고쳐 쓸 수 있도록 하는 해결책이자, 더 많은 사람에게 고쳐 쓰는 경험을 확산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또 서울시의 전환도시 프로젝트와 함께 리페어맵도 개발 중에 있다. 리페어 맵은 서울시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전파사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 서비스인데, 시민 참여형으로 개발되어 부족한 정보를 하나씩 밝혀 나갈 예정이다. 인라이튼은 이처럼 고쳐 쓰는 문화 전파에 참여하는 모두를 ‘리페어 피플’이라고 부르며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제조부터 유통까지 연결된 혁신을 통한 변화


저에게 수리는 어찌 보면 응급처치입니다.
본질적으로 산업 자체가 바뀌는 것이 더 큰 목표죠.
제조부터 유통까지 연결된 혁신을 통해
보다 환경 친화적인 산업생태계가 조성되길 기대합니다

신기용 대표는 그의 사업이 발단이 됐던 PSS 모델을 한 번 더 언급하면서 제품을 만들거나, 판매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 폐기, 유통까지 제품의 생애주기 전 단계를 고려한 통합적인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자면 단순히 제품을 판매를 통해 이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서비스 중심 모델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제품의 서비스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상 현재의 산업 생태계는 제품의 사용주기를 늘려 튼튼한 제품을 생산하면, 제조사의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휴대폰의 사용주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품 말고 무엇을 팔아야 할까? 신기용 대표는 렌털 모델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어떤 기업이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렌털 해주고,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한다고 하자. 그러면 기업은 어떤 의미에서 공기청정기가 아닌 깨끗한 공기, 곧 서비스를 판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보편화된다면 제품의 사용주기가 길어지는 것이 기업의 이익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다. 또한 팬데믹이라는 재앙과 같은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생활방식의 변화를 일으키며 역설적으로 변화를 앞당기고 있다. 배터리뉴의 경우에도 비대면으로 집에서 서비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이 있었다고 밝혔다. 팬데믹은 어쩌면 구호처럼 외쳐 왔던 생산체계의 변화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함을 알리는 신호일지 모른다. 작은 혁신을 체계화해 임팩트를 확산해 나가고 있는 인라이튼의 사례에서 제조업의 변화를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리페어 카페 후 인라이튼 팀 ⓒ인라이튼


          


[1]

리페어 카페는 2009년 네덜란드의 환경운동가 마틴 포츠나에 의해 시작된 활동으로, 현재는 전 세계 200개국 80개 도시에서 1256개가 운영되고 있다


*토크쇼 6회 인라이튼 편 다시 보기

https://youtu.be/lcQg8TJByZQ 

* 포럼 웹사이트

https://forum.betacity.center/

*배터리뉴 공식 홈페이지

https://better-renew.co.kr/




※인라이튼 편을 끝으로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토크쇼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크쇼는 세운베타시티센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인, 생산도시를 만나다 : AG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